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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6. 12. 2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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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흰색)




말씀: 마태복음 2:13~23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설교자: 이광유 목사

 

제목: 성탄절 선물

 

     성탄절이면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뭐니뭐니해도 연하장과 선물입니다.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하는 문지방에 이르는 성탄절이 다가오면 집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걸 본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준비해 놓은 거였습니다. 그런 걸 항상 보며 자랐기 때문인지 성탄절이 다가오면 전 연하장을 씁니다. 의무감으로 연하장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한 해를 살면서 도움을 얻거나 힘들 때 기댈 수 있었던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짧은 글로 최대한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해 잠깐 생각하여 마음속을 정리한 후 진심으로 연하장을 써 내려 갑니다. 그런 거 보면 연하장이라고 다 똑같은 연하장이 아닙니다. 어떤 연하장은 글자 한 자 쓰지 않고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이름만 적어 우표를 붙인 후 보냅니다. 어떤 연하장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짤막한 인사글은 적습니다. 어떤 연하장에는 인사글만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따로 준비한 조그만 선물을 동봉합니다. 그것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아예 따로 선물을 장만하는데, 그럴 경우에 연하장은 이 선물을 주는 이가 누구라는 걸 증명하는 하나의 영수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몇 주 전 아이들에게 왜 성탄절에는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느냐고 물어봤더니 한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 예수님한테 줬잖아요!” 제가 되물었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네. 그렇다면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은 예수님이지 너희들이 아니잖아? 그럼 왜 너희들은 성탄절이 되면 선물을 받지?” 그제야 아이들은 생각해보니 알듯 모를 듯했던지 살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시 제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성탄절은 원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날이야. 우리가 받은 선물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잖아. 정말 주기 아까운 선물이지 않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받은 후 느낀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우리가 행하는 일 중의 하나가 선물을 주고받는 거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거저 주셨으니, 성탄절에는 우리도 다른 이에게 거저 주는 법을 공부해야 해.” 아이들은 나름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듯 보였습니다.


      오늘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렇게 좋은 선물에 사심과 다양한 욕망이 덧붙여지면 얼마나 무서운 독이 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대한민국 국회를 자기들만의 공화국으로 만들어 군사정권 때 형성된 정경유착을 이용해 정말 다양한, 그래서 평범한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선물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고 갔습니다. 선물을 받은 이는 선물의 값어치에 따라 선물을 보낸 이의 자신을 향한 충성도를 확인했을 거고, 그 충성도에 따라 한 가지 선물을 택해 건네줬을 겁니다.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뇌물 금지법은 사심과 욕망이 가미된 선물 주고 받기의 폐단이 얼마만큼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은 지도의 발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도를 만들 수 있게 한 도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망원경입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한 생산시설은 너무 많은 제품을 생산하여 더는 자국에서는 생산품을 모두 소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혁명을 일찍 시작한 나라들은 힘없고 자기보다 가난한 나라를 찾아가 무력으로 상호조약을 맺은 후 그 나라를 경제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국제적인 현상을 제국주의라고 정의했습니다. 바로 이때 제국주의에 편승하여 종교 지도자들은 선교활동을 시작했고, 낯선 땅을 여행하기 좋아하는 부유한 사람들은 선교활동에 편승하여 세계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80일 간의 세계일주≫란 책이 쓰인 때가 바로 이 시기인 1873년입니다.


      1894년부터 3년간 중국과 일본, 한국을 여행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라는 여성은 ≪조선과 이웃 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rs≫이란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일제 강점 시대와 한국전쟁, 30년이 넘는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민족으로 변한 한국인의 100년 전 삶과 문화 그리고 그 속에 살아있던 민족성을 알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필독서가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에서 버드 여사는 한국 곳곳을 다니며 우리 조상이 꾸려간 삶을 낯선 외국인의 시선으로 하나하나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한국 여행기의 전반부는 한국 사람과 문화, 거주환경에 대한 경악으로 가득합니다. 어쩜 이렇게 가난할까? 어쩜 이렇게 더러운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 어쩜 이렇게 가난하면서도 천하태평일까? 어쩜 이렇게 게으를까? 하지만 한국 곳곳에서 만난, 영어를 배워 사용할 수 있는, 여행 길잡이를 통해 우리 조상이 왜 비참한 삶을 열심히 극복하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자포자기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주어진 현실에 수긍하여 만족하며 살려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 이유는 넘쳐나는 탐관오리(貪官汚吏) 때문이었습니다. 몰락하는 조선왕조 정권에 의지하여 가난한 시민의 피를 뽑아 먹는 흡혈귀가 한국 곳곳에 넘쳐났습니다.


      아랫사람에게는 탐관오리로 윗사람에게는 충실한 부하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바로 선물입니다. 만 원짜리 선물을 윗사람에게 바치며 약간의 양해를 구한 후에는 아랫사람을 불러 십만 원짜리 선물을 만들어 오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럼, 아랫사람은 자신의 아랫사람을 위협해 이십 만 원짜리 선물을 만들어 오게 하죠. 자기도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결국 사회적 위계질서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만 죽어납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짓고 물품을 만들어도 늘어나는 건 빚뿐입니다. 왜요? 탐관오리에게 갖다 바쳐야 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열심히 뼈가 으스러지도록 노력하는 것보다는 몸이라도 안전하게 보전하는 게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버드 여사가 우리 조상의 눈에서 읽은 무기력은 실은 삶을 버텨내기 위한 생존수단이었습니다. 버드 여사가 만주 지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우선 그곳에 사는 한국 사람은 탐관오리로 가득한 한국을 벗어났습니다. 만주에서는 노력하면 한만큼 순식간은 아니지만, 삶이 조금씩 풀리는 걸 경험했습니다. 만주 지역에 사는 한국들은 근면했고, 성실했고, 현실감 있으면서 낙천적이고, 쾌활하면서도 당당했다고 버드 여사는 기록했습니다.


한국과 주변국을 여행한 버드 여사는 한국은 한국 사람의 눈으로 바라봐야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만난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이방인에게 따뜻하고 친근한 민족이 한국 사람이며, 작지만 온 나라가 아름다운 천연 자연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가는 곳마다 절경에 절경이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일제식민지시대가 지난 후에 태어난 오늘의 한국인은 옛날이야기처럼 들리는 한국의 모습입니다.   


       선물. 예수님은 선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꼭 좋은 선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시지는 않았습니다. 출생부터 그러했습니다. 동방박사에게는 한평생 밤하늘을 바라보며 연구해 온 우주의 신비가 드디어 한 인간 속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겠죠. 늦은 밤 가축을 지키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들판에서 쪽잠을 자던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나은 삶이 조만간에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아기 예수의 부모, 특별히 요셉은 하나님이 건넨 선물이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헤롯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내아이 중 두 살 미만은 모두 죽이겠다는 선언을 들은 요셉은 서둘러 짐을 꾸려 이집트로 도망갑니다.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헤롯 왕이 죽자 하나님의 천사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두려웠습니다. 결국, 그는 고향이 아닌 낯선 땅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란 동네로 도망갑니다.


      성탄절. 크리스마스. 모두에게 축복과 행복이 가득하길 빌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 날이죠. 하지만 우리의 기쁨은 누군가의 슬픔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오늘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선물은 누군가가 흘린 땀과 피의 결실이라는 사실도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뻐하지 말고 슬퍼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쁨은 언제나 슬픔과 함께 찾아온다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길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선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기계가 만든 기계적인 선물이 아니라 세월의 때가 자욱하게 묻어 있는 삶이 만들어낸, 기쁨과 슬픔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그런 선물이 되길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성탄절에는 웃어야 합니다. 성탄절에는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이 즐거움에 대한 강박관념은 우리가 웃는 웃음은 우리가 우는 눈물 때문에 가능하다는 걸 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즐거울 때, 누군가는 슬프다는 걸 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 누군가는 불행하다는 걸 망각하게 합니다. 좋은 선물은 이 둘이 어우러진 선물이란 걸 오늘 함께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의 삶이 그랬습니다. 희망을 위해 오셨지만, 그 희망을 위해 예수님은 절망을 택하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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