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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1. 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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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주일: 흰색)



설교자: 이광유 목사

 

제목: 귀 기울이기


      2017년 새해가 시작했습니다. 다시금 출발선에 섰습니다. 시간만큼 공평한 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새해 첫날 집에는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딱 12장으로 만들어진 달력이 벽에 걸립니다. 하루 더 가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죠. 12장은 너무 많다고 슬그머니 한두 장 찢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201712달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지를 생각하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건 익숙해진 걸 정리하는 일입니다. 2016년 갈무리 잘하셨는지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틈만 나면 소리 없이 밀려오는 후회(後悔)와 회한(悔恨)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염려가 됩니다. 2017년을 시작하려면 2016년에 마침표를 반드시찍어야 합니다. 아직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며 2016년에 매달릴 수도 있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저 역시 2016년을 뒤돌아보면 만족감보다는 후회감을 더 많이 느낍니다. 매년 1월 첫째 주가 되면 저는 처와 두 아들 지누, 미누랑 새해의 다짐을 작성합니다. 다짐이란 게 심사숙고(深思熟考)보다는 한순간의 충동으로 만들어질 때가 많기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뒤돌아 생각하면 다짐은 역시나 충동적인 부분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20161월 첫째 주에 전 다섯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심사만 남기고 박사과정 논문 작성을 완료하기. 블랜튼-필 정신분석학교에서 정신분석가 과정 시작하기. 테니스 기술 모두 배우기. 지누랑 같이 주짓수 배우기. 비생산적인 누리망 사용 시간 줄이기. 다섯 가지 다짐 중 두 가지를 제대로 해냈습니다. 지누랑 주짓수를 계속해서 함께 배우고 있고, 비생산적인 누리망 사용을 많이 줄였습니다. 나머지 세 가지는 못했습니다.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성적은 아니죠. 그래도 작년에 제가 해내지 못한 일은 올해로 넘기면 됩니다. 작심삼일을 무한 반복하다 보면 결국에는 작심성취가 된다는 걸 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함께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예기치 않은 일로 다른 교회로 떠나야만 했던 한 가정에 찾아가 살아온 삶 뒤에 숨겨둔 상처와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 번째 아기가 태어나 조금 더 정신없어질 삶을 준비하는 후배 집에도 찾아가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살아가게 될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우리 삶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수학 공식처럼 정확하게 제때에 계획한 일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삶을 살고 싶지만, 예기치 않은 일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일어나고 그로 인해 우리는 계속해서 계획을 수정하고 갑작스레 발생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긴장합니다. 다른 이의 아픔과 방황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순간순간 마음속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충고질과 해결책 제시를 애써 억누르기가 힘든데, 그 순간을 잘 넘어서면 묘한 위로감이 찾아옵니다. 저 자신과 어쩜 그리도 비슷한 상황에서 갈등하는지, 어쩜 그리도 비슷한 나약함으로 인해 허덕이는지, 어쩜 그리도 비슷한 문제로 힘겨워하는지. 다른 이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이의 갈등이 우리의 고민이 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이의 힘겨움이 우리 자신의 힘겨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세기 22:1)”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221절은 2017년 그루터기감리교회가 붙잡고 씨름할 목표 성경 말씀입니다. “부르심에 귀 기울이다.”는 목표입니다. 2016년에 그루터기감리교회의 목표는 결심의 마침표는 실천이다!”였습니다. 야고보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2016년 목표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는 순간 실제로 차지한 땅의 넓이는 러시아 문학가 톨스토이가 단편 소설 ≪바보 이반 Ivan the Fool≫에서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키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본 적도 없습니다. 목축업을 생업으로 삼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축의 먹거리를 찾아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는 삶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살아야 할 하나님의 명령(생명:生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국에 살았다면, 하나님은 땅을 메라고 명령하셨을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숨이 붙어있는 한 주어진 삶을 묵묵하게 살아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키만큼의 땅만을 차지하는 순간 아브라함은 자신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뒤돌아봤을 것이고 만족했을 겁니다. 의미로 충만한 삶에 관한 경험이 그의 삶에는 가득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221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는 장면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끝없는 신뢰와 믿음을 끄집어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닮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신앙이 하나님을 향한 이삭의 신앙으로 세대 교체하는 기점이 바로 이 이야기란 걸 많은 사람은 모르는 거 같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이 끝난 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신뢰하는 종을 고향 땅에 보내 외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해오도록 한 후 생을 마감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시험을 건네셨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해답은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221절의 첫 마디 그 일 후에에 숨겨져 있습니다. 창세기 21장 끝에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우물 다툼을 그만두기 위해 브엘세바란 곳에서 평화 협정을 체결합니다. 그런 후 성경책은 아브라함의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21:33~34)”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었다는 건 유목민의 삶을 버리고 농경민의 삶을 택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끝없이 여행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버리고 한 곳에 정착하여 평안하게 여생을 살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걸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 이런 순간은 지금까지 익숙한 우리 삶을 포기해야 할 때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모두 쉽게 택하는 건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하고 외치며 냅다 앞으로 달려가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시험을 치른 후 또 다른 여행길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지 않고 아브라함의 마음속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웃음이란 뜻의 이삭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대상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유달리 집착하여 그 집착함이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삭에 관한 시험을 거치면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때가 지났고 이제는 아들 이삭의 때가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삭의 삶도 자신의 삶처럼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브라함아!”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힘겨운 시련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르심에 귀 기울여 진심으로 응할 때, 우리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길을, 지금까지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사람을, 지금까지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귀 기울임에 대해 배웠습니다. 당신의 부르심에 귀 기울임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우리가 우리를 향해 외치는 소리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겁이 나서 피했던 일, 생각하기 싫어 합리화로 얼버무렸던 일, 그건 아니라고 무시했던 일, 이 모든 게 당신의 부르심일 수 있음도 배웠습니다. 당신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 한 해를 살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꾹꾹 눌러 모르척했던 우리의 마음에도 귀기울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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