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절 제2주: 보라색)
제목: 잘살아야 할텐데
어느덧 2016년 마지막 달이 시작했습니다. 한 해를 농사에 비유하면 12월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이미 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났기 때문이죠. 12월은 내년 봄에 다시 시작할 농사를 위해 몸과 마음의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한 해를 글쓰기에 비유한다면 12월은 이제까지 써온 글을 마지막으로 차분하게 한 번 읽으며 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고 이제까지 써온 걸 지우는 미련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욕심을 버린 후 지금까지 써온 걸 마지막으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12월입니다. 그런데 한 해를 축구에 비교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경기에서 지고 있다면 12월은 최후의 순간까지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리거나 할 수 있다면 뒤집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12월이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세로 2016년 12월을 맞이하셨나요?
요즘 전 토요일 저녁 8시만 되면 갈등에 빠집니다. 500회 특집 무한도전을 처음 본 이후로 무한도전에 ‘무한히’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한국보다 14시간이 늦은 미국에 살지만, 끝없이 발달하는 누리망으로 인해 제 처와 두 아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친 후 무한도전을 봅니다. 무한도전 500회 특집에서 다섯 명의 남자에게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훈련과정 수료라는 임무가 주어졌었죠. 다른 이를 얕잡아 보고 비아냥거리면서 우리의 쓴웃음을 유발하던 한국의 웃음꽃 프로그램에서 다른 이를 높이고 그럼으로써 자기도 높이는 밝은 웃음을 대한민국에 처음 안겨줬던 유재석 씨. 뭐가 그리 불만인지 투덜거림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박명수 씨. 넉살 좋지만 손해 보곤 못살기에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기 건 꼭 챙기는 실속파 맏형 정준하 씨. 의리와 이기주의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서 싫어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묘한 매력을 풍기는 하하 씨. 촌스러움을 애써 부정하며 끝까지 교양있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치켜세우는 양세형 씨. 아양과 애교, 고집과 무기력함을 유유 적절하게 사용하며 강력한 개성으로 똘똘 무장한 형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황광희 씨. 어느 사람도 일반인 이상이 아닌, 그러니까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다섯 명의, 연예인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겪게 되는 좌충우돌 이야기가 무한도전의 핵심입니다. 닮고 싶어서 우러러보게 되는 게 아니라 ‘어라! 저 사람도 하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라는 우리 자신에 대해 기대와 희망을 품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라고 할까요?
어쨌거나 이 주 전 토요일에는 북극곰과 교감하는 임무를 완료하기 위해 정준하 씨와 박명수 씨가 캐나다 처질 지역을 방문하는 과정이 방영되었습니다. 처질 지역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호수는 겨울에는 꽁꽁 얼어 북극곰이 북극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하지만 12월이 다 되었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처질 지역 호수는 얼지 않았습니다. 호수가 얼기만을 기다리는 북극곰의 수는 해가 갈수록 줄어든답니다. 야생 북극곰 보호구역을 탐사하던 중 탐사 인도자로부터 북극으로 넘어가지 못해 굶어 죽는 북극곰의 수가 해마다 늘어난다는 말을 들은 정준하 씨가 물었습니다. “그럼, 호수가 얼 때까지만이라도 북극곰에게 먹을 걸 좀 주면 안돼나요?” 인도자는 단호하게 “안됩니다! 인간이 건네는 음식은 북극곰이 살아가는 양식에 변화를 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정준하 씨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내버려 두면 다 죽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그게 북극곰이 자연스럽게 삶을 꾸려가는 방법이라면 그럴 수 있도록 해줘야죠.”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는 말이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여 문명을 만든 후 자연 속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현상의 주범이 인간이라면 캐나다 처칠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북극곰을 굶어 죽게 만든 이는 인간입니다. 문명이란 이름 아래 인간은 북극곰에게 부자연스러워진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죽으라고, 더는 자연스러운 동물로 살아갈 수 없는 자연 속에서 동물로서의 체면을 지키며 죽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닐까요?
구약성서에는 이사야서를 시작으로 말라기서까지 17권의 예언서가 정경으로 선택되어 담겨있습니다. 예언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환상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책입니다. 새 하늘이 열리고 새 땅은 바닥에서 솟아나고,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물줄기가 다시 트여 예루살렘 성전 주변을 따라 흐르고, 천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찬양하면 새 다윗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온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린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언서를 읽을 때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이 마음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건 예언서가 예언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새 삶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삶의 환경이 아무리 화려하게 바뀐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갈 일상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똑같습니다. 쫓겨난 땅을 되찾아 예전처럼 곡식을 기르고 가축을 치며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기. 완전히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쌓아 잃어버린 예배를 참되도록 회복하기. 먹거리와 행실에 주의하기. 가난한 사람과 과부, 고아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를 잘보살피기.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분별력을 회복하기. 그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새 세상에서의 삶은 한 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란 기초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얼마 전 예배 중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건넸습니다. “얘들아! 너희 모두 오늘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교회 앞뜰에서 신나게 놀고 나서 집으로 갈 거지? 그런데, 오늘 밤에 잠을 자고 나면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없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오늘 밤 잠이 들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너희는 모두 죽는다고 가정해보자. 10시에 잠자리에 든다고 가정할 때, 지금부터 너희에게 남겨진 삶의 시간은 정확하게 10시간 30분이란 말야.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을테니 딱 세 가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죽기 전, 오늘, 너희는 세 가지, 무엇을 하고 싶니?” 아이들이 한 대답을 듣기 전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세 가지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아이들의 대답은 단순하고 소박했습니다. 삶의 경험이 아직은 집 밖을 넘어서지 않았기에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신선했습니다. 한 아이는 교회에서 놀 때 신나게 놀고,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맛있는 저녁을 해달라고 하고, 가족들과 모여 앉아 이야기를 실컷 한 후에 잠자리에 들 거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아이는 죽기 전에 꼭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싶기에 번지점프에 도전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한 아이는 그레이트울프라는 물놀이 공원에 갈 거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아이는 학교에 편지를 쓸 거라고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지 않을 거니 학교와의 인연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지막 때에 만들어가야 할 삶을 간략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스가랴 7:9~13)
마지막 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 있습니다. 며칠 전 12장의 달력 중 마지막 한 장을 남기고 11장을 모두 뜯어 쓰레기통에 넣을 때, 우리는 모두 마지막 때에 대해 아주 잠깐일지라도 진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일구어왔던 삶의 터전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할 때, 앞에 놓인 미래보다는 뒤에 버리고 가야 할 과거가 우리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꾸려온 삶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죠.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천지개벽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걸 무모하게 도전함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왔지만 제대로 잘하지 못했던 거, 그걸 제대로 잘해보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상에서의 기본을, 일상에 대한 충실함을 진솔함을 망각했을 때가 종말의 순간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몰아오는 조급함에 밀려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다 아무것도 갈무리하지 못한 채 2016년을 떠나보내지 말고, 마지막이기에 우리 삶에서 더욱 근본적인 일들에 집중하는 이번 한 달 특별히 이번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예언자 스가랴를 통해 당신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마지막 때의 삶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았습니다. 2016년. 잘살아냈는가? 이제 2016년 마지막 달에 들어와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당신은 삶에서 근본적인 요소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번 한 주 무엇이 우리 각자의 삶에서 근본인지를 헤아리고 그것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며 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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