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하지 못한 영화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목회 지망생 혹은 교회에서 주는 녹봉을 먹고살면서 회의감에 한 번쯤 몸서리쳐 본 사람은 꼭 한 번은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와 다소곳이 손잡고 놀라고, 웃고, 들뜰 수 있는 그런 재밌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목사'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목사"님"이라고 불리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를 사뭇 진지하게 묻고 답하려 한 감독의 용기와 신학, 철학이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은 건물 지하를 개조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홀로 기도하며" 사는 한 개척교회 목사님 태욱(박혁권)이다. 결혼했고 초등학생 두 딸이 있다. 교회가 주된 직장이지만 먹고살기 위해 밤이면 밤마다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아내 정인(류현경)와 두 딸은 장모(남기애)님 댁에서 살고, 아내는 두 딸을 돌보며 늦은 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일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주일 예배에서 설교하는 개척교회 목사님과 지하 예배당에 앉아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다섯 명 남짓의 교인이 보인다. "세상은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가 설교 요지다. 텅 빈 예배당을 가득 채운건 침묵이고, 이 침묵 속에 울려 퍼지는 목사님의 우렁찬 목소리뿐이다. 잠시 후 태욱은 아내로부터 장모님 몸상태가 좋지 않아 즉시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수술 전에 해야 할 검사를 포함하여 현재 필요한 돈은 5천만 원. 태욱과 정인은 힘을 합쳐 어떻게든 돈을 구해보기로 다짐했다.
어느 날 밤 어느 때처럼 이름도 모르는 한 남자의 차를 대신 원하는 곳까지 운전해 준 태욱은 자기가 운전한 차 주인이 신학대학원 시절 알고 지냈던 후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 대형 교회를 세습한 후배. 그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큰 목소리로 반대 운동을 펼쳤던 태욱. 이럴 때 원수는 외다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을 떠올려도 될까? 후배 동현(김준원)도 태욱이를 알아봤고 웃돈을 얹어주며 자신이 몰래 만나고 있는 여자와의 관계를 못 본 걸로 해달라고 태욱에게 부탁한다. 며칠 후 동현은 태욱을 다시 만나 5만 원짜리 지폐가 두툼하게 든 봉투를 하나 건네며 다시 한번 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은 없었던 걸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제는 돈 빌릴 친구 한 명 없는 태욱은 용기를 내어 동현에게 5천만 원을 빌려줄 수 있는지를 물었지만, 돌아온 건 비아냥과 혐오감 섞인 냉소뿐이었다. 아내 정인 역시 돈을 빌리기 위해 친구를 만났고 고등학교 시절 자기를 짝사랑했던 친구 명함을 하나 구해냈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해 남산 공원 근처에서 만났는데, 그 친구는 5천만 원을 흔쾌히 빌려주겠단다. 단 하룻밤을 자신과 함께 보내달라는 게 조건이었다.
마음을 추스리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다시 한번 결단하려고 태욱은 지하 텅 빈 예배당에 앉아 기도했다.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싶었다. 그가 들은 응답은 그 순간 교회 문을 열고 예배당으로 들어온 건물 주인이었다. 밀린 월세를 더는 참을 수 없으니 다음 주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건물을 비워달라며 말했다. "목사님, 거, 제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지는 맙시다!" 태욱은 결단했다. 동현이가 젊은 여자를 만나는 장면을 기록에 남겨 동현이를 협박해서 5천만 원과 교환하기로. 결단을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동현이는 심부름 요원을 불러 5천만 원을 든 태욱이를 납치하여 폭행했고 이런 일이 두 번 다시없기를 협박하며 알려왔다. 아내 정연도 결단했다. 하룻밤 몸을 다른 남자에게 허락한 후 어머니 수술비 5천만 원을 받기로. 결단을 실천에 옮겼다. 그때 병원에서 결려온 한 통의 전화. 임신이었다. 두 딸이 있는데, 세 번째 아이가 뱃속에 들어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는 정연이 찾은 이는 남편이 아니었다. 하나님도 아니었다. 엄마였다. 죽음을 예감하며 하루하루를 살던 엄마는 딸의 임신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이번에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며 정연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아이 둘도 어떻게 키워낼지 막막한 정연에게 셋째 아이 임신은 날벼락처럼 다가왔는데, 엄마에게는 축복으로 다가왔다. "다 하나님 뜻이라니까. 아이만 주시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니가 들어섰다. 내가 널 키우면서 얼마나 행복했는데. 난 지금도 감사하다. 죽는 게 뭐가 무섭니? 사는 게 무섭지." 엄마가 말씀하셨다.
태욱은 교회 십자가를 야산에 묻고, 교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복수했다. 자신을 찾아와 죽어가는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돈을 좀 빌려달라는 (심부름 요원으로 자기를 납치, 감금, 폭행했던) 청년에게 후배지만 대형 교회 목사 동현이가 준 천만 원을 쥐어준 후 몇 가지를 부탁했다. 같이 동현이를 납치, 감금, 폭행해주기. 장모님을 살해하기. 이 부분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태욱은 장모님이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자기가 도와준 청년이 장모님을 살해하기로 한 새벽, 장모님은 어느 때처럼 집 근처 교회로 새벽기도를 하러 가셨다. 태욱은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기도했다. 하나님께 뭐라고 응답해달라고 미친 듯이 기도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주시지 않았다. 태욱에게 응답한 이는 아내 정연이었다. 장모님 생각이 떠오른 태욱은 미친 듯이 장모님이 걸어갔을 길을 따라 달렸다. 자기가 내린 명령을 따라 장모님을 살해하러 다가가는 청년을 붙잡은 태욱은 두 번 다시 자기를 찾아오지 말라며 청년을 떠나보냈다. 장모님은 그걸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고, 길 한가운데에 서있던 장모님을 승용차 한 대가 치고 달아났다. 장모님께 다가간 태욱. 갈등하다 응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기를 꺼내는 태욱의 손을 장모님이 붙잡았다. 그렇게 장모님은 생을 마감하셨고, 사위와 딸 세 손자, 손녀에게 '돈'을 남겨주셨다.
장례식장에서 태욱이가 아내 정연에게 물었다. "장모님이 생명 보험에 가입하셨었어? 그럴리가?"
영화 마지막 장면은 다시 예배 강대상에 서서 설교하는 태욱이다. 이번엔 제법 많은 사람이 예배당에 앉아 있다. 장모님이 남기고 간 돈으로 예배당을 한 채 구입했나 보다. 지하 예배당이 아닌 건물 예배당이니 자연스레 찾아온 사람, 이전부터 다니던 사람이 있었나 보다. 두 딸이 다른 아이와 함께 힘차게 예배당 주위를 뛰어다닌다. 정연은 유모차에 누워있는 셋째 아이를 교인 두 명과 함께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모두가 다 집으로 돌아간 교회 뜰에서 태욱은 얼마 전에 문을 닫은 자기가 운영했던 개척교회 예배당 십자가를 바라보며 서있다. 갑자기 목이 메었는데, 기침이 나왔다. 멈출 수 없는 기침이 계속해서 나왔다.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응어리는 숨기려고 해도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는 법이다. '목사'로 살아간다는 거, 자본주의 사호에서,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에서 '목사'로 살아간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일까?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은 또 대체 무엇일까?
태욱이가 문을 닫은 개척교회 예배당 벽에 걸려 있던 성경구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처절하게 몸서리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태욱의 삶에는 '부족함'만큼은 부족하지 않고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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