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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wo Popes 두 교황 (2019)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0. 7. 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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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wo Popes (2019)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전복되어 침몰했을 때, 한국인은 마음속에 맺힌 집단 응어리를 누군가에게 내뱉을 수 없었다. 나라의 '수장' 대통령은 자기만의 일상 즐기기에 바빴고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한 늦장 구조는 배에 타고 있던 476명 중 299명을 '수장'했다. 그해 8월 14일에 프란체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고, 그를 만나기 위해 길거리에 서있던 수많은 한국인은 교황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오열했다. 때 맞춰 한국을 찾은 그의 모습이, 그의 존재 그 자체가 한국인의 마음속에 맺힌 집단 응어리를 잠시나마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다.

 

        두 교황 The Two Popes 영화 속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바로 한국을 찾았던 교황,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주교로 일했던 추기경 조르게 마리오 벌고글리어 Cardinal Jorge Mario Bergoglio, the Archbishop of Buenos Aires다. 신부가 될 꿈을 가지고 자라났던 청년 벌고글리어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는 애인과 조만간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다. 애인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은 날 벌고글리어는 우연성에 이끌려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게 되고, 그 순간 성직자로 살아가야겠다는 결단에 이른다.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예수회 사제가 된 그는 지식인 종교 지도자로 가난한 이를 위해 봉사하며 살았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를 군부 정권이 장악했고, 벌고글리어는 지식인답게 이익과 손해를 빠르게 계산한 후 군부 정권에 야합했다. 하지만, 그가 택한 야합이라는 길은 자기 목숨만을 보장할 수 있었음을 가르쳐주었다. 군부정권은 사랑했던 아내와 함께 일했던 친구와 동료를 살해했다. 군부정권이 몰락하자 벌고글리어는 고위급 종교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군부정권과 야합한 이력이 있는 그가 종교직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곳은 시골 중에서도 시골은 변방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벌고글리어는 삶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훈련을 시작했다. 듣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말하며 살아왔던 자기 삶을 벗어던지고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의 말에, 그 말속에 담긴 한 인간이 살아온 삶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처럼 슬그머니 땅에서 솟아오르는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곳은 연구실도, 군부정권이 내준 종교 지도자 사무실도 아니었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몸서리치며 사는 이가 빚어가는 삶이라는 현장이었다.

 

        추기경 벌고글리어가 바티칸 Vatican City에 간 이유는 교황 베네딕트 16세 조셉 래트지걸 Pope Benedict XVI Joseph Ratzinger에게 제출한 은퇴 청원서 승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교황은 단호에게 청원서에 승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벌고글리어를 자기가 머무는 공간에 며칠 머물게 해 주었다. 벌고글리어는 이를 기회 삼아 시시때때로 자기가 제출한 은퇴 청원서에 승인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막무가내로 교황은 이를 거부한다. 대신 이상하게도 거듭해서 벌고글리어에게 삶에 관해, 종교에 관해, 종교 지도자가 걸어가야 할 삶에 관해 묻기 시작한다.

 

        교황 역시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죽음 이외에는 교황을 은퇴할 수 있는게 없지만, 교황은 자기 지도력에 대한 한계를 자각했고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벌고글리어를 통해 재확인하려 했다. 벌고글리어는 교황의 은퇴를 막으려고 노력했고, 교황은 벌고글리어의 은퇴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우연성과 필연성. 이 두 단어가 영화가 끝난 후 내 마음속에 내려 앉았다. 우주만물을 하나님이 만들었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우주만물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필연성에 손을 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2020년 현재 지구에 사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공포감을 밀어 넣고 있는 코로나사태 COVID-19를 생각하면 무조건 필연성을 맹신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몰 자체가 우연성에 기반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이 또한 필연성에 기반했다면 그 이유에 관해 물어야 하는데, 이를 묻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람쥐 체바퀴 돌리는 탁상공론이란 함정에 빠진다.

 

        교황 래트지걸은 필연성에 호소하여 교황이 되었지만, 살아보니 자기가 믿었던 필연성은 우연성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추기경 벌고글리어는 이제는 은퇴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필연성을 확실하게 붙잡았지만, 교황 래트지걸이 은퇴한 후 우연히 교황 베네딕트 17세 Pope Benedict XVII가 되었다. 그리고, 교황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자기 모습을 바꾸지 않으려 애썼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교황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는 이미 상충하는 수많은 자아가 여전히 긴장감 가득하게 서로를 엎치락뒤치락하며 씨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는 두 교황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를 본 그 다음 날 첫째 아들 지누는 불현듯 교황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누야, 너 교황이 될려면 몇 가지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데."

"자질이 뭐예요?"

"리콰이어먼트Requirements."

"뭔데요?"

"먼저 축구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지?"

"축구요."

"그렇지. 그럼, 신부님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지?"

"신부를 해야지요."

"그렇지. 그럼, 신부가 된다는 건 뭘까?"

"?"

"사람과 하나님을 잇는 일을 하는 건데, 그럴려면 사람을 잘 알아야 하고 하나님도 잘 알아야 해. 특별히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 중요한 게 한 가지 있는데. 알고 싶냐?"

"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해. 너 하나님 음성 들려?"

"아니요."

"에이. 그럼 넌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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