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9주: 녹색)
설교자: 이광유 목사
제목: 선택
지난주에 전 처와 아이들을 데리고 로드 아일랜드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메인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렀는데, 그리 크지 않은 섬 뉴 포트가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 가족에게 뉴 포트는 아주 특별한 섬입니다. 작년 여름 그냥 둘러나 보고 가자고 들렀던 뉴 포트의 한 해변에서 그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동이 밤 동안 물러난 바닷물이 드러낸 바위에 붙어 있는 곳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횡재냐고 외치며 둘째 미누의 흙 놀이 기구 상자에 쓸어 담았습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만 있었으면 해변 바위를 깨끗이 쓸고 왔을 겁니다. 집에 돌아와 드류 기숙사에 사는 목사님, 전도사님과 나누어 맛있게 먹기도 했죠. 그날 그곳에서 저희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서서히 밀려오는 바닷물이 금세 고동이 붙은 바위를 다시 가렸거든요. 첫째 아들 지누는 그날부터 뉴 포트로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렸습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백하더군요. 고동 사냥을 하기 위해 꼬박 일 년을 기다렸었다고.
이번 여행 때는 아예 하루아침 시간을 고동 사냥을 위해 따로 떼어 놓았습니다. 도로안내기의 오류로 약간 길을 헤매기는 했지만 놀라웠습니다. 머릿속은 그 장소가 어디인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곳이 가까워질수록 제 몸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저와 처, 지누와 미누는 각자 해변에 얼굴을 들어낸 바위 아래쪽에 숨어 있는 고동을 사냥하며 한 세 시간을 보냈습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 하나하나가 곧바로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뭐든 자꾸 하다 보면 자연스레 실력이 늘어난다는데, 올해는 작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위 곳곳에 또 다른 바위처럼 자신을 숨긴 채 붙어 있던 전복을 발견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그게 전복이란 걸 깨달은 순간 이미 물러났던 바닷물은 다시 부지런히 해변으로 밀려오고 있었기에 전복을 고동만큼 많이 사냥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냥을 마치고 차에 타자 지누와 미누가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매년 여름 로드 아일랜드로 여행을 오자고.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무언가를 행함 그 자체 속에 듬뿍 빠져 흘러가는 시간을 초월한 순간이. 고동, 전복, 바닷게를 사냥하는 동안 전 시간 가는 걸 잊었습니다.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도 드려다 보질 않았습니다. 그걸 깨닫자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계획한 대로 이것저것을 하고, 아침을 먹으면 가방을 꾸려 일하러 나가고,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다시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걸 해야만 그다음 걸 할 수 있으므로 하는 일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끝없는 압박감에 시달려야만 합니다. 한 가지 일을 정해놓은 시간에 해내지 못하면 그다음에 하기로 계획한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그건 다시 그다음에 계획한 일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삶은 도미노 현상처럼 차례대로 와장창 무너지고 말 거 같습니다. 이 도미노 현상에 대한 염려로 우리와 비슷하게 근심 걱정에 빠진 이가 오늘 함께 읽은 성경 본문의 주인공 마르다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칠십 명의 제자를 따로 세워 일상으로 보내기 위해 몇 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누가복음 10: 2~9)”
예수님의 당부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전 삶은 계산기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러니 주어진 오늘 손에 쥐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해야지가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이 제자를 향한 당부의 말씀을 모두 마치자 그곳에 있던 한 율법학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 율법학자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행해라.” “선생님, 그렇다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못 본 척 지나친 강도에게 맞아 길거리에 쓰러진 한 남자를 한 명의 사마리아인이 구해주었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 하기는 쉽고 들으면 멋진 말인데, 그게 그리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프랑스 니스에서 발생한 테러 행위를 생각하면 난생처음 길에서 혹은 건물에서 만난 사람이 테러범일 수 있다는 걸 부 이제는 더 이상 우스개 소리로 흘러 들을 수 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차례입니다.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한 이는 마르다였습니다. 마리아는 주변 사람을 통해 줄곧 들어왔던 예수님을 언니 집에서 만나게 되었죠. 마르다는 분주했습니다. 손님을 초대했으니 따뜻하게 대접을 해야 했겠죠. 그런데 마리아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예수님 곁에만 있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마르다는 결국 예수님께 다가가 마리아가 하는 행동이 꼴사나우니 뭐라고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누가복음 10:41~42)”
고동과 전복, 바닷게 사냥을 끝낸 후 저는 가족과 함께 뉴 포트의 한 바닷가로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기에 오후 늦게까지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실컷 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열심히 놀았습니다. 고동을 잡으며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어린이가 되려고 한껏 애쓰며 열심히 파도와 놀았습니다. 오후 네 시가 되자 바닷물은 어느새 모래사장 반 이상을 적시며 피서객에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옴을 알렸습니다. 그때 즈음이었습니다. 옆에서 서너 명의 아이가 모래탑을 쌓는 걸 가만히 쳐다보던 둘째 아들 미누가 탑을 쌓는 걸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크고 높은 탑을 쌓기로 약속한 후 열심히 모래를 끌어모아 탑을 하늘로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탑을 쌓던 아이들은 밀려오는 파도에 부서지는 탑이 싫증이 났던지 탑 쌓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잠시 후 그 탑은 흔적도 없이 파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를 본 후 제가 미누에게 말했습니다. “미누야, 이제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하니 우리도 탑 쌓는 걸 그만하자.” “아빠,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요. 난 포기 안 할 거예요!” “그래, 그럼, 한 번 파도가 이기나 미누가 이기나 해보자.”
얼마 못 가 포기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누는 밀려오는 파도가 자신이 쌓은 탑을 무너뜨리면 무너뜨리는 대로 다시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난 포기 안 해요! 안 해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탑을 쌓았고, 파도에 부서지는 탑을 보았고, 다시 탑을 쌓았습니다. 전 지겨웠고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의자와 가방, 파라솔을 파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만 했습니다. 제 몸은 미누 옆에 있었지만, 제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드디어 파도는 미누가 쌓은 탑을 흔적도 없이 쓸어갔습니다. 이 녀석이 어쩌려나 궁금해서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다시 밀려오는 파도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대며 자신이 초능력자라는 상상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미누는 밀려오는 파도에 집중했고 자신이 쌓는 탑에 집중했고 파도에 쓸려 사라지는 파도에 집중했습니다. 단순하고 지루한 걸 무한 반복하기.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죠? 그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생각하듯이 단순해서 지루한 걸 무한 반복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란 걸. 아이는 지루한 걸 따분한 걸 매 순간 새롭고 신비롭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자신이 하는 일이 따분했지만, 마리아는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겁게 생각했습니다. 칠십 명의 제자를 향해 예수님이 하신 당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마르다를 향해 마리아를 변호한 예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건 한 가지입니다. 삶은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일과 그걸 어떻게 할 지는 선택할 수 있다. 이번 한 주간 좋은 걸 선택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말은 우리 삶이 이 순간에 끝난다는 말이 아니지요? 당신의 나라가 여기에 지금 임했다는 말은 우리가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순간을 천국으로 혹은 지옥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건 뜻하겠지요? 자신에게 평안을 건네고 다른 이에게는 평화를 전달하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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