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주일, 성령강림 후 제7주: 녹색)
제목: 지긋지긋한 이 순간을 살아라니
요즘 제가 살아내는 일상과 제가 숨 쉬며 사는 세상을 둘러보면 “모르는 게 약이다!”란 속담이 자꾸 생각납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간 삶의 환경이 점점 더 좋아지면 종교의 영향력은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테러의 중심에는 극단적인 종교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인은 줄어드는데, 종교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경각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삶을 삶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절대적인 조건인 ‘생명’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신의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책을 열심히 본 학자들은 21세기는 산업 전쟁이 아니라 문화 전쟁이 일어난다고 예견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문화의 시작점은 종교이기에 21세기는 문화 전쟁이 아닌 종교 전쟁이 우리 삶 가까이에서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은 인간 생명의 비밀까지 하나둘 파헤치기 시작했기에 21세기 종교 전쟁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온 모든 문명의 이기를 장난감처럼 사용합니다. 앞으로만 나가면 좋은 거로 알았는데, 높이만 올라가면 편할 거라 믿었는데, 빨리만 가면 시간이 많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삶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고, 우리의 내일은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많이 알수록 두려움만 커지니 “모르는 게 약이다.”란 속담이 참 맞는 말이란 생각을 다시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전도서를 읽고 있습니다. 전도서(傳道書). 길을 알려주는 책이란 뜻입니다. ‘무슨 길일까? 어떻게 하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인생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까?’하고 물으며 책장을 펼치니 그 첫마디에 그만 한숨이 나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전도서 1:1~11)”
며칠 전 밤이었습니다. 제 첫째 아들 지누와 함께 유도장에 다녀와서 자기 전 서양 장기를 한 판 두기 시작했습니다. 8년 된 머리로 이리저리 다양한 수를 생각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한 판 두 판 함께 두기 시작했는데, 잠깐 방심을 하다 진 적이 여러 번 생긴 이후로 전 움직임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런 아빠를 다시 한 번 더 이기겠다고 눈을 번쩍 뜨고 장기판을 뜯어져라 골똘히 쳐다보는 아들과의 서양 장기는 어느새 이틀에 한 번꼴로, 일주일에 세 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 날은 시작부터 제가 거칠게 공격했습니다. 잘 두지 않던 수를 즉석에서 생각하며 속전속결(速戰速決)을 꿈꾸었습니다. 장기를 시작할 때 즈음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바람과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 점점 더 거세지더니 어느 한 순간 집 근처에 떨어지는 번개 소리와 함께 그만 학교 기숙사 전기가 끊어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심리학자 칼 융은 한 책에서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서 진정한 침묵과 고요함을 빼앗아갔다고 말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형광등을 끄시죠? 간혹 불을 켜놓고 주무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안 불을 모두 끈 후 잠자리에 듭니다. 그런데 형광등을 끈 후 집안을 한 번 둘러보신 적 있으세요? 형광등은 꺼졌지만, 암흑은 집안을 가득 채우질 못했습니다. 각종 전자기구가 여전히 충전 중이라는 걸 알리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조그만 등이 침묵과 고요함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왜 심리학자 융이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서 진정한 침묵과 고요함을 빼앗아갔다고 말했는지 아시겠죠?
손전화기 손전등 기능을 사용하여 서양 장기판을 정리한 후 양치질을 하고 자리에 누워 창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어김없이 어둠을 방해하던 가로등도 사라졌기에 암흑 말고는 다른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침묵과 고요함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날엔 잠이 금방 들 거 같은데, 이상하게 또 그렇지가 않더군요. 이리저리 뒤척이다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불이 들어왔습니다. 불이 들어왔다는 걸 먼저 알아챈 건 역시나 각종 전자기기였습니다. 프린터기의 예열소리, 전화기 응답기 준비 소리, 전기 밥솥 예약 확인 소리. 그때 제가 사는 기숙사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와!” 하고 외쳤습니다. 박수 소리도 들렸습니다. 한 시간 남짓 되었던 진정한 침묵과 고요함의 시간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감탄사였겠죠?
국어 수학능력평가시험에서 전도서 전문이 나온 후 중심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단락을 찾으라는 문제를 주면 전 오늘 함께 읽은 전도서 5장 18~20절을 택할 겁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전도서 5:18~20)”
살면서 우리가 한 번쯤은 꿈꿔 본 부귀, 명예, 권력을 다 쥐어 또 다른 게 없을까를 고민했던 사람이 남긴 고백입니다. 잠언과 전도서는 쌍둥이 형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혜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두 책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잠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생활 전반에 옮겨 심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라면, 전도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가 과도하게 집착하는 현실로부터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잠언이 나무를 한 그루씩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전도서는 그 나무가 모여 이룬 숲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함께 읽은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서는 제가 달리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이번 한 주 이 뜨거운 여름날 아주 잠깐씩 시간을 내어 삶이란 숲에 대해 한 번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그렇게 빠른 시간이 우리에게 하루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오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더디 가는 하루를 빨리 보낼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삶을 사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건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그 하루 중 우리에게 찾아오는 매 순간을 그저 가장 좋은 때라 믿으며 즐겁게 사는 거라고.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기에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걸어가는 여정 또한 하나님이 이끄시는 거라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여정 중 만나는 크고 작은 일 또한 당신의 손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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