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고 싶어요."
하루가 다르게 미국 전역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로 인해 모든 교육 기관이 교실 수업에서 가정 수업으로 교육 환경을 옮긴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네 식구 모두 아침 9시가 넘도록 편안하게 푹 자고 일어났기에 오후 9시쯤에 지누와 미누가 잠자리에 들기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무슨 영화를 같이 보면 좋을까?' 몸을 씻으며 생각했다. 그래, <백두산>인가? 그걸 보자. 텔레비전과 연결해둔 컴퓨터를 켜서 외장 하드에 내려받아 저장해 둔 한국 영화 목록을 찾아봤는데, <백두산>은 내려받은 적이 없었다. '뭘 봐야 하나?'하고 2020년 영화 폴더에서 2019년 영화 폴더로 옮기는 순간 <감쪽같은 그녀>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는 같이 봐도 좋을 거 같은데."
"제목이 뭐죠?" 아내가 물었다.
"감쪽같은 그녀요."
"드라마네요. 괜찮겠는데요." 손전화기로 순식간에 영화평을 확인한 처가 말했다.
"그럼, 이걸로 봅시다. 참, 나는 차나 한 잔 마셔야겠네요."
"엄마, 음료수 마셔도 돼요?" 지누가 물었다.
"아니!" 엄마 대신 내가 대답했다. 또 다른 물음이 꼬리를 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지누와 미누, 처와 나 이렇게 네 명은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아 <감쪽같은 그녀>를 관람했다.
백혈병을 앓는 아기 동생 진주를 등에 업은 공주가 돌아가신 엄마의 엄마집으로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일터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손녀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손녀가 가슴에 품고 있는 재로 변한 엄마가 든 항아리를 처음 본 아이가 자신의 집에서 훔쳐가려 한 물건으로 생각했다. 그게 무엇인지를 확인하려는 할머니와 엄마를 지키려는 공주 사이의 몸싸움은 결국 엄마가 든 항아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산산조각난 항아리를 손으로 만지고 어쩔 줄 몰라하는 공주를 통해 항아리에 새겨진 이름이 자기의 딸임을 알게 된 할머니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게 앉아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공주의 정서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는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가정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역할극을 수행하고, 지속적으로 반복한 수행은 한 아이의 인격으로 변한다. 집을 나간 아빠, 자기와 아기 동생 진주를 무척이나 미워했던 엄마 사이에서 공주는 집안일을 담당하는 애늙은이로 자라났다. 자기를 폭행하고 학대하는 엄마를 그럼에도 아빠처럼 자기와 동생을 버리지 않았기에 착한 엄마였다고 합리화하며 살아갔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된 공주는 할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할머니를 돕는 착한 아이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할머니와 공주를 하나로 묶은 기복제는 가난이었다. 진주 기저귀와 분유를 살 돈이 없었기에 둘은 한 가게에 가서 할머니가 망을 보고 공주는 기저귀 상자에 붙어 있는 사은품을 몰래 가방에 담고 사은품으로 나누어 주는 분말 분유를 한 아름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도적질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바른 행동이라고 옹호할 수도 없는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쓰라리는 묘한 장면이었다. 공주의 정서는 두 가지 인격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아이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공주와 다른 아이들처럼 체육 시간에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나가서 운동하고 싶은 공주가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씨름하고 있었다.
치매로 인해 기억을 상실해 가는 할머니와의 동거는 척박한 생활 환경으로 인해 항상 주린 배를 학교 식당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설탕 가루로 자극하며 살아가야 했음에도 공주에게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안정감을 제공했다. 무엇을 통해 그걸 알 수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공주가 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공주는 가족에 대해 쓰지 않았다. 쓸 수가 없었다. 가족은 불안한 장소였다. 그래서 공주는 꿈속으로, 환상 속으로, 소설 속으로 도망갔다. 소설 속에서 공주는 부모를 잃어버린 삽살개가 되었고, 며칠 동안 굶주린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된다. 할머니는 자기 역시 굶주렸지만, 남은 식량으로 죽을 끓여 어린 삽살개와 나누어 먹었다. 공주는 할머니에게 그런 나눔을 경험했다. 없음에 대한 설음과 분노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에게 투사하고 전이하여 학대한 엄마와는 달리 할머니는 가지고 있는 게 없었지만 손녀와 나누려고 했다. 공주는 그런 나눔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다.
백혈병을 앓던 진주는 백혈병 아기를 잃어버린 한 의사 부부에게 입양됐다. 이 의사 부부는 공주도 함께 입양하길 원했지만 공주는 치매로 인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를 만난 후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치매 노인 요양소에 있던 할머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을 가혹히도 학대했던 엄마를 마지막까지 보살폈던 것처럼 공주는 할머니도 마지막까지 돌봤다. 할머니에게 삽살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채 끝내기 전에 할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숨이 멎은 할머니 옆에 누운 공주는, 마치 자궁 속에 든 태아처럼 할머니를 향해 몸을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 울면서 말했다. "할머니,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어요."라고.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고, 어른이 된 공주는 사진 작가가 돼있었다. 전시회 첫날 전시회장을 떠나지 못한 채 멍하게 서있던 공주에게 진주가 찾아왔다. 서로의 안부를 간략하게 물은 둘은 서로를 얼싸안는다. 그렇게 영화는 끝났다.
"형아, 엄마 또 울어."
"그래? 어디 보자. 어 진짜네. 엄마 우네."
"아빠는?"
"아직 아니야."
지누가 내 얼굴까지 얼굴을 가져다 댄 후 동생 미누에게 말했다. 숨을 거둔 할머니 옆에 누워서 공주가 울고 있을 때였다.
"아빠도... 이제 울어, 형아."
"어, 그렇네. 이번이 아빠가 두 번째로 우는 거야. 나한테는."
"아빠, 슬퍼요?"
"어, 그렇네."
공주와 진주가 서로를 얼싸안고 있는 장면이 나올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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