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누, 미누와 함께 포레스트 검프를 봤다. 마음이 울적할 때, 지금 내가 사는 모습에 자신감이 사라질 때, 다시 길을 잃어버렸다는 불안함이 마음을 짓누를 때, 뛰는 놈 위에는 항상 나는 놈이 있다는 현실 앞에 다시 무릎 꿇을 때, 내가 한 번씩 찾았던 영화.
「신의 한수(2019)」라는 영화를 먼저 봤다. 잔인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그렇게 영상을 꾸밀 필요가 없었던 몇 장면에 미누는 킨들Kindle을 꺼내 다른 영상을 보기 시작했고 잠시 후 처도 휴대용 컴퓨터를 들고 미누랑 함께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지누는 잠깐 망설였다. 킨들Kindle을 꺼내 들었지만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가 궁금했던지 다시 제자리에 놓고 안락의자에 와서 앉았다. 별로 특별한 게 없었다. 15세 이상 관람가라고 적혀 있었는데, 화면은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잔인했다. 복수. 그것 외에는 다른 어떠한 이야기도 찾을 수 없는 영화였다. 모처럼 아이와 함께 보는 영화인데, 삶의 새로운 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될 수 있는 좋은 영화를 함께 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좀 짜증스러웠다. 그. 래. 서. 포레스트 검프를 꺼냈다.
지누와 미누가 재밌다고 말했다. "아빠, 포레스트 검프 좀 웃겨요." 미누의 감상평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인생을 잘 살았던 거 같아요." 지누의 감상평이다. 나에게 포레스트 검프는 둔재가 천재를 이긴다는 안정효 선생님의 말씀이 영화로 육화 된 거다. 지능지수 75에 불과한 포레스트는 정상적인 학습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어울리는 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군대 생활과 좁은 탁자 위에서 순식간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탁구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른 곳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집중력이 필요한 탁구였다. 낮은 지능지수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던 포레스트. 그래서 그는 남들보다 빠른 발로 미국 전역을 달릴 수 있었다. 낮은 지능지수로 인해 어린 시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줬던 소녀 제니를 한평생 사랑할 수 있었고, 손안에 있는 것 눈앞에 놓인 것 말고는 다른 걸 생각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인해 나눔의 소중함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며 살 수 있었다.
영화 속 인물이지만 현실 속 인물이기를 꿈꿔본 인물은 포레스트 검프가 처음이었다. 지누와 미누도 자라면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내일이 아닌 오늘에 집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비슷해요. 어떤 초콜릿이 손에 잡힐지를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답니다." 그날그날,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초콜릿을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이라 믿으며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엄마가 사주는 운동화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편안한 운동화라고 믿을 수 있기를, 지금 만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기를, 자신의 부족함을 비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기를. 포레스트를 만날 때마다 난 엄청난 인간 존재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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