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5주: 녹색)
제목: 온고지신 (이광유 목사)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부를 때, 세 명의 조상 이름을 형용사로 사용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그거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중 여러분은 누구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누구의 신앙을 가장 닮고 싶으시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75년 동안 살아온 삶을 과감하게 접고 새로운 운명을 찾아 떠난 아브라함. 멋있죠? 살아보니 75년 동안 일구어 온 삶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거 평범한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 하는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말 아시죠? 대부분의 사람은 젊은 시절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을 한평생 계속합니다. 제 아버지는 한평생 자동차 운전을 해 어머니와 제 두 누님을 먹여 살리셨습니다. 노래를 참 잘 부르셨어요.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젊었을 때 아버지는 동네 노래자랑에 나가면 꼭 상을 타오셨답니다. 제 두 누님도 그런 아버지의 목청을 닮아 노래를 잘하는데, 안타깝게도 전 저만의 목청을 가지고 나와서인지 제 처 말고는 아직까지 제 목소리를 매력적이라고 감탄해주는 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매 주일 오후면 교회를 다녀오신 아버지가 세상 그 누구보다 편안한 자세로 장롱에 기대어 앉아서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하며 아는 노래를 따라부르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운전보다 노래 부르는 걸 더 좋아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살아야 하니까. 해야만 하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운전대를 붙잡고 씨름을 하셨겠죠. 이런 걸 생각할 때, 아브라함, 참 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철두철미한 사람인지는 지난 주일에 함께 이야기 나누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속 인물은 야곱입니다. 조금 더 분명하게 설명하면 이스라엘로 변하는 야곱이란 인물을 좋아합니다. 야곱이란 사람은 나빠요.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고, 어머니도 속이고. 나중에는 자신의 두 아내도 속여요. 어머니가 자신을 걱정할 때도 야곱은 자신만 걱정했어요.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행동보다는 생각을, 결심보다는 상상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잔머리에 능했어요. 신기한 건 성경을 기록한 학자들은 야곱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점이예요. 그래서 야곱의 형 에서에 대한 기록은 짧지만, 야곱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죠. 전 야곱의 일생에서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가 주장한 성화하는 삶의 원형을 읽습니다. 얍삽함을 넘어 야비하기까지 한 야곱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에게만 주어지는 축복기도를 빼앗습니다. 그런 후 도망자의 삶을 시작하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합니다. 진짜 복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걸 깨닫죠. 진짜 복은 사람과의 투쟁이 아닌 하나님과의 투쟁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다는 걸 깨닫죠. 한평생이 걸렸습니다. 이 한 가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 야곱의 삶 속에서 전 제 모습을 많이 발견합니다. 열등감, 질투, 분노, 잔머리 굴리기로 쉽게 풀 수 있는 삶의 실타래를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 제 자신과 어쩜 그리 비슷한지. 여러분은 저처럼 야곱을 좋아하지 마세요.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성경책에는 자세하게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은 찾기가 힘들어요. 이삭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기 어려운데, 그건 그의 삶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그늘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하면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죠. 이야기 속 주체는 언제나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성경책을 가만히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른 아침 아버지와 함께 자신이 제물로 바쳐질 산으로 올라가면서 이삭은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버지, 여기 칼도 있고 장작도 있고 불씨도 있는데, 하나님께 바칠 제물은 대체 어디 있나요?” 어린아이와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본 경험이 있는 분은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이 느꼈을 섬뜩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주실 거다. 잔말 말고 어서 올라가자.” 역시나 아브라함도 얼렁뚱땅한 대답으로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책을 기록한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을 주인공으로 선택합니다. 물론 이삭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들 야곱이 아버지로부터 주연 자리를 금방 빼앗기 때문이죠.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의 그늘에 가려져서 이삭은 그리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도덕경에서 중국의 철학자 노자는 최고의 정치 통치는 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리기라고 말했습니다. 어렵죠? 이삭의 삶은 아브라함과 야곱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로 볼 수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채 삼대의 끈을 튼튼한 형성한 그의 삶은 아브라함과 야곱보다 더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마흔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신뢰하는 하인이 자신의 주인이 75년 동안 살았던 지역까지 찾아가 구해온 여인 리브가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삭은 어떻게 해서 자신이 태어났는지를 알았기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네, 하나님은 이삭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아내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했습니다. 20년 만에.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기도에 정확하게 20년이 지난 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피난갈 수 밖에 없었던 극심한 가뭄이 다시 발생합니다. 아버지가 걸어간 발자국을 생각하며 이삭이 이집트로 내려가려 할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찾아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했던 말씀을 건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이삭은 아버지와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남아 극심한 가뭄을 버티기로 마음 먹었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그랄 땅에 사는 블레셋 사람이 무서워진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랬던 거처럼 자신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위기가 곧 기회다.”는 말 아시죠? 전 신앙인이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경구 중의 하나가 이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랄 땅에 불어닥친 가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은 이삭은, 아쉽게도 사랑하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지만, 가뭄을 통해 부자가 됩니다.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라는 걸 알게 된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여나 하나님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이삭을 조심스레 대했고, 이를 통해 이삭은 많은 부를 축적합니다. 계속해서 불어나는 가축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이르러 우물을 팝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전에 판 무덤 자리를 다시 찾아 그곳에서 우물을 파죠. 이를 지켜보던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미워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데, 우물을 팠거든요. 이삭이 판 우물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며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이삭은 자리를 피해 새 우물을 팝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따라와 다시 시비를 겁니다. 이삭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 새 우물을 팝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따라오지 않자 마지막으로 판 우물을 르호봇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마침내 야훼께서 우리 앞을 활짝 열어주셔서 우리도 이 땅에서 번성하게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책에서 이삭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은 이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이삭이란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삭이란 사람의 됨됨이를 생각할 때, 전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다.”라는 뜻이죠. 아브라함은 모험가였습니다. 이삭은 모험가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모험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아브라함이 한평생 계속한 모험에서 배운 게 인내라면 이삭은 아버지 덕에 인내가 무엇인지를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온고지신. 인내를 익힌 이삭은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조화와 화해. 문제가 발생하면 정면으로 달려가 해결하는 아버지 아브라함과는 다르게 이삭은 조화와 화해를 위해 문제가 있으면 돌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삭은 에서가 아닌 야곱의 편을 들어주었나?
이삭의 됨됨이를 설명하는 창세기 26장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아들 에서는 나이 사십에 헷 사람 브에리의 딸 유닛과 헷 사람 엘론의 딸 브시맛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26장의 마지막 구절인 35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이 몹시 상했다.” 전 이삭이 자신의 두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두 아들 사이에서 그는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지만, 이삭은 하나님과 두 아들 둘 다를 선택했죠. 이삭은 아들 둘 중 어느 누구도 내치지 않았고 그렇다고 편애하지도 않았습니다. 장자 축복기도를 빼앗긴 에서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새로운 기도를 부탁하자 이삭은 침착하게 에서의 미래를 예언합니다. 동생을 섬겨야 하지만 그 굴레를 벗을 날이 온다고. 이삭은 아브라함과 야곱 사이를 화해와 조화로 이어줬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이삭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번 한 주 여러분과 저, 이삭처럼 만나는 이들에게 화해와 조화를 건네는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기도
하나님, 아브라함과 야곱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이삭의 삶에서 화해와 조화의 중요성을 발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서로서로 다른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 하나님이 결국에는 한 분 하나님이란 걸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한 주는 조화와 화해를 마음속에 품고 삶의 여정을 시작하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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