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7/03/26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3. 27. 11:14

본문

(사순절 제4주: 보라색)




말씀: 고린도후서 12:1~10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설교자: 이광유 목사

 

제목: 콤플렉스 속에는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란 말 들어보셨나요? 한국계 미국인 경영자 김찬 씨와 르네 마우보르네 씨가 2005년에 쓴 한 책 제목인데, 이어령 선생님이 당신의 한 책에서 이 책을 소개했습니다. 푸른 바다 전략이란 제목의 책은 제품 판매 이론서입니다. 제품 판매 이론은 어떻게 하면 한 가지 제품을 더 많은 소비자에게 팔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요약정리한 거죠. 김찬 씨와 르네 마우보르네 씨는 2005년에 이 새로운 판매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새롭다는 말은 기존에 있던 제품 판매 전략과는 다름을 뜻하는데, 푸른 바다 전략이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 기존의 제품 판매 전략을 두 학자는 레드 오션 전략, 붉은 바다 전략이라 불렀습니다. 푸른 바다. 무더운 여름 모두가 뛰어 들고 싶은 곳이죠. 붉은 바다. 머뭇거려지죠?


이 두 가지 제품 판매 전략을 구별 짓는 특징을 효과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여기 이 성경책이란 제품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이 성경책을 팔기 위해 붉은 바다 전략을 사용하면 주요 고객은 현재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됩니다. 반대로 푸른 바다 전략을 사용하여 이 성경책의 주요 고객은 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인 혹은 비종교인이 됩니다. 붉은 바다 전략은 기존의 고객을 더욱 자극해 더 많은 성경책을 팔아야 하므로 개역 개정, 개역한글, 공동번역, 새 번역 성경, 곧 다양한 성경책이 만들어져 출판사 간의 과당 경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푸른 바다 전략은 기존 교인이 아닌 비종교인 혹은 다른 종교인을 주요 고객으로 삼기에 과당 경쟁의 위험이 없습니다. 푸른 바다 전략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 속으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손쉽게 들어갈 수는 가능성을 추구하는 전략입니다. 이 이론에 자극받은 많은 사람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푸른 바다라 굳게 믿고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수영도 배우지 않은 채 겁 없이 뛰어들었기에 물만 엄청 마셨습니다.


      오늘은 선교사 바울의 삶을 방금 소개한 푸른 바다 전략을 통해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기적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성을 알리기 위해 택한 제품 판매 전략은 푸른 바다 전략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실제 경험을 유대인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 전했습니다. 단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을 주요 고객으로 택했기에 바울은 예상과는 달리 선전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지중해 지역 곳곳에 세워진 초대교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게 있습니다. 푸른 바다 전략이 지닌 이점은 새로운 사업 계획을 처음 시작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이롭다는 사실입니다. 애플사는 세계 최초로 손가락으로 만져서 작동할 수 있는 전화기를 만들었습니다. ‘버튼식 전화기가 아닌 건들기식 전화기 아시죠?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고 고개를 흔들 때, 스티브 잡스는 푸른 바다로 뛰어들었고,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애플사가 뛰어든 푸른 바다는 금세 붉은 바다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버튼으로 누르는 전화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택한 푸른 바다 선교 전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주 전부터 살펴본 대로 승승장구하는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고린도전서가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발생한 인간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이 쓴 편지라면 고린도후서는 고린도 교회와 경쟁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이 일으킨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몇 가지만 예로 든다면, 고린도후서 8장에서 바울은 교회에서 모으는 헌금을 문제로 삼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나의 조직으로 자라난 교회는 최소한의 필수 운영 자금이 필요했기에 헌금에 대한 최소한의 강조는 필수가 되었던 거죠. 9장에서 바울은 자신을 글만 잘쓰지 말은 지지리도 못하는 불완전한 지도자라고 욕하는 사람을 달래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느새 자신이 홀로 통제할 수 있는 크기 이상으로 자란 교회에 화를 낸다는 건 지도자의 자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기에 그는 무척 조심스레 갖가지 문제에 접근합니다.


      사도행전에 그려진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호한 사람입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죠. 사도행전을 정말로 누가 썼는지를 우리는 영원히 모를 거란 걸 전제로 할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건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바울은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를 모두 때려잡기 위해 상부 기관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을 때의 결단력은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기 위해 로마 황제를 만나려고 로마까지 찾아가는 결단력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바울이 직접 쓴 편지에서 우리는 바울이 결단력과 동시에 아주 민감한 감수성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바울이 애써 억눌렀던 민감한 감성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자신의 지도자 자질을 문제 삼으면 정면으로 도전해 오는 무리를 바울은 체포 영장을 직접 받을 때의 단호함으로 상대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에 대한 험담을 집중하여 들었습니다. 그런 후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1:23~28)”


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과 제가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의 삶은 그 말이 진실임을 증명했고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미치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성경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성격이 급했던 베드로는 닭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에도 여전히 성격이 급했습니다. 가롯 유다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로 인해 자기 생각과 행동을 뒤돌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예수님을 유대교 지도자에게 팔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밤새 씨름하여 허벅지를 다친 그는 다음날 아버지 이삭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도 바울이 직접 쓴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사울과 바울은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초대교회에 발생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겠죠. 타고난 결단력을 활용하면 손쉽게 일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상식을 넘어선 무척 미련해 보이는 방법을 해결책으로 택했습니다.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6~10)”


      약육강식(弱肉),강한 자는 약한 자를 희생시켜서 번영하기에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끝내는 멸망된다는 말입니다. 이게 세상이 흘러가는 논리입니다. 오늘 바울은 약육강식 논리의 역전이 일어나는 곳이 교회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하면 우리의 약함을, 부족함을 감출 수 있는지에 상당히 집착합니다. 그러다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다른 곳으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다른 곳은 다시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다른 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곳, 그러니까 다시 숨길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바울은 송곳으로 자신의 약한 부분을 헤집는 사람에게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대응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마태복음 5:39)”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안타깝게도 이 편지를 받은 후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알려준 참살이를 따르기로 했다면 바울의 문제 해결 방법은 단호하게 눈 감고 시도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번 한 주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감추지 않고 인정하여 드러내 보는 건 어떨까요? 바울은 자신이 수시로 괴롭히는 콤플렉스 속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또한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발견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약할 때가 가장 강할 때일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모두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콤플렉스를 한두 가지 꼭꼭 숨기며 삽니다. 자신의 지도력에 균열이 일어난 때에 바울은 자신의 치부를 겸손하게 인정하여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아닌 예수님의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콤플렉스 속에서 당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그럴 방법은 받아들임과 내려놓음임을 깨닫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