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3주: 보라색)
말씀: 고린도전서 12:1~13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설교자: 이광유 목사
제목: 하나됨의 미학
한국 시각으로 지난 10일 금요일 오전 11시에 헌법재판소는 이정미 재판관을 통해 국회가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옳다는 판단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전했습니다. 작년 가을 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시작하여 육 개월 가량 이어진 대통령 탄핵 운동 대장정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이정미 재판관이 판결문을 읽을 때, 미국에서 전 유도장에서 함께 운동하던 동료의 실수로 땅에 떨어질 때 등이 아닌 오른쪽 어깨가 먼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빠박! 오른쪽 어깨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은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흘렀고, 잠시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던 어깨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유도장 냉장고에 있는 얼음으로 어깨를 어루만져주었지만,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유도장으로 가는 길에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바닥에 떨어진 후 전 곧바로 벽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미국시각 밤 9시 16분. 한국시각 오전 11시 16분. 의자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이거 아마도 탄핵이 기각된 거 아닐까?’ 통증이 더 심해지면 운전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옷을 갈아입은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처는 탄핵이 기각되었다며 심각한 표정을 잠깐 지었지만, 이내 활짝 웃으며 “인용되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점점 심해지는 통증과 아내의 걱정으로 인해 전 집 근처 병원 응급실에 가야 했습니다. 유도 사부님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제 설명을 들은 후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바닥에 떨어질 때, 어깨뼈가 빠졌다가 다시 끼워진 거 같다. 어깨뼈가 빠져 어긋나면 조금 더 빼서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아도 되니 일단 좋긴 한데... 통증이 상당할 거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간호사에게 저를 위해 진통제와 엑스레이를 주문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르핀 주사를 맞았습니다. 생체 기능을 마비시키니 통증은 줄었지만, 정신 기능까지 마비되니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데 평상시보다 배 이상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섯 장의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담당 의사는 제 어깨에서 어떠한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지를 거듭 묻더니 여전히 아프다고 대답하니 또 다른 모르핀 주사만 간호사에게 주문했습니다. 이러다 모르핀에 중독이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몽롱하니 현실과 환상의 벽이 허물어지더군요.
그날 이후로 전 오른쪽 어깨의 소중함을 뼈가 저리도록,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뼈속까지 아려오는 어깨 통증으로 오른쪽 어깨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있을 때 잘해라!”는 옛말이 생각났습니다. 항상 우린 무언가 사라진 후에만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그게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를 깨닫습니다. 오른손을 옆으로, 위로, 아래로 쭉 밀어서 필요한 물건을 아무런 생각 없이 집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어깨가 다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걷거나 뛸 때, 양어깨가 조화롭게 흔들리면서 균형감을 유지해 준다는 사실 또한 몰랐습니다. 38년 동안 제 오른쪽 어깨는 한결같이 저를 위해 무거운 짐을 짊어졌지만 단 한 번도 싫다고 화를 낸 적도 없었습니다. 원치 않은 실수로 제 오른쪽 어깨가 바닥에 쿵 하고 던져지기 전까지는요.
지난 주일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편 나누기 문제를 바울이 해결하기 위해 한 노력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다시 바울이 쓴 목회 서신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2000년 전 바울이 경험한 교회 내 문제나 오늘날 교회에서 우리가 보고 실망하는 문제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볼로와 바울 중 어느 쪽에 붙어야 교회 생활에서 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했던 고린도 교회 성도의 모습과 작은 교회보다는 편의시설과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는 대형 교회 앞에 줄 서는 걸 선호하는 오늘날 성도의 모습은 본질에 있어서 똑같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12장에는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또 다른 문제로 고심한 바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서로 자기가 제일 잘났다는 자랑질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교회 내 분열입니다. 자신의 지혜로움을 다른 이가 알아주지 못한다고 토라진 이가 있다면,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다른 이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가 난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강인한 믿음을 다른 이가 알아주지 못한다고 투덜거렸고, 어떤 이는 자신의 치유 은사를 다른 이가 몰라준다며 토라졌습니다. 모두가 대장이 되고 싶은 거겠죠. 모두가 머리가 되고 싶었죠. 모두가 경탄의 대상이 되고 싶었죠. 당시에 누리망을 통한 사회적 관계망이 있었다면 이런 분쟁을 조금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페이스북 Facebook에 트위터 Twitter에, 플리커 Flickr에 자신의 우월함을 사진과 글로 자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 문제를 바울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하게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자기가 먹을 밥그릇을 가지고 나온다는 우리 속담과는 다르게 바울은 각 사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나누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의 능력, 치유의 능력, 실천의 능력, 예언의 능력, 영을 분별하는 능력, 방언의 능력. 다양한 능력을 하나하나 나열한 후 바울이 한 말을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12:11~12)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 마음을 가장 들뜨게 한 건 대한민국 국민의 놀라운 집단적 인내심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닌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자기 능력 너머의 일을 억지로 이루어내려고 과도하게 우기지도 않으면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시작한 순간부터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결을 선고하는 순간까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바를 묵묵하게 하며 기다렸습니다. 일본강점기 일본 정부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없애기 위한 문화 말살 정책으로 만든 식민사관은 대한민국 국민의 민족성을 ‘냄비근성’으로 요약했습니다.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민족, 어제의 실수를 오늘이면 모두 잊어버리고 내일 다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민족. 그렇지만 이를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민족이 대한민국 민족이라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에게 가르쳤습니다. 지난 육 개월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 지속한 대통령 탄핵 시위운동은 그게 틀렸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었던 평화롭고 여유로운, 거기다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이 가미된, ‘축제’ 시위운동을 우리 민족은 만들었습니다. 비판과 비난을 익살과 웃음으로 승화했습니다. 이 웃음에서 전 대한민국 국민만이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정’과 ‘한’의 오묘한 조화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스러움과 정다움이 교차한 시위 현장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더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잘못된 곳으로 굴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하면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선언하며, 인내하고 또 인내했습니다.
자기 자랑질로 문제가 생긴 고린도 교회에 바울이 보낸 또 다른 편지인 고린도전서 13장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사랑에 대한 기가 막히는 정의로 유명합니다. 마지막 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 전서 13:13)”바울은 무척 고심했습니다. 모든 이가 자신과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모여 세운 교회에는 다양한 문제가 하나둘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문제없는 교회, 하나된 교회를 이룰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이 ‘사랑’장이 탄생한 배경을 마음에 새긴 후 바울이 들려주는 사랑의 특징을 곱씹으면 사랑이란 건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참아야 합니다. 그냥 무작정 참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다는 걸 믿고 바라면서 참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바를 묵묵하게 해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제가 처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서 진보는 평범한 이들이 흘린 피로 인해 가능했는데, 이번 탄핵에서는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았어요. 정말 엄청난 일이죠.” “아니죠. 세월호에서 죽은 고등학생 아이들의 피가 이번 탄핵이 시작이잖아요.” 처가 대답했습니다. 그 말이 맞았습니다. 평범하지만 기대와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아이들이 바닷속에 잠겨 흘린 피가 각박한 삶에 쫓겨 사랑의 중요성을, 인내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어른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이번 한 주 깨어나서 사랑하고 인내하시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가 다시금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채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견뎌온 우리가 이 혼란한 시기를 계속해서 잘 견뎌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의 인내심과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북돋워 주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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