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7/03/12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3. 13. 09:30

본문

(사순절 제2주, 장학주일: 보라색)




말씀: 고린도전서 3:1~9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설교자: 이광유 목사


제목: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건


      얼마 전 어느 금요일 아침 처와 전 둘째 아들 미누를 데리고 에이치 앤 알 블록H&R BLOCK이라는 이름의 세금 보고 대행 회사 사무실에 찾아갔습니다. 2016년 한 해 수입에 대한 세금을 보고하기 위해서였죠. 수입이 많은 사람은 세금 보고 기간이 되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는데, 저처럼 세금 보고할 게 별로 없는 사람은 설렘으로 마음이 콩닥콩닥합니다. 수입이 적은데 세금 보고를 착실하게 하면 정부에서 세금 혜택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이죠. 지난 사 년간 한결같이 거래했던 한국인 직원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세금 보고 서류를 준비했고 한 시간 후 누리망을 통해 연방정부와 뉴저지 주 정부에 서류를 보내 세금 보고를 마쳤습니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마침 면도용 비누 거품이 다 떨어졌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처랑 미누랑 함께 세금 보고 사무실 옆 건물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어갔습니다. 안내표지를 읽으며 면도용 비누 거품이 진열된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공교롭게도 비누 거품은 슈퍼마켓 내 약국 바로 앞에 있었고, 신기하게도 그날은 외부에서 간호사 한 명이 와서 무료로 고객들의 혈당을 검사해 주고 있었습니다. 처와 전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여보, 우리 한 번 해볼까요?” 처가 먼저 말했습니다. “! 한 번 해봅시다.”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데, 역시나 지겨워진 미누가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처는 지혜롭게 미리 준비해 둔 빵을 미누에게 줘서 먹게 합니다. 처 차례가 되었습니다. 처의 한 손가락 끝부분을 일회용 알코올로 소독한 간호사는 조그마한 의료용 침을 꺼내 손가락 끝을 찌른 후 그 부위를 자신의 손가락을 눌러 피를 짜내 면봉에 묻혀 다시 혈당 책정 기계에 묻혔습니다. 약 일 분가량이 지났고 수치를 확인한 처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습니다. 혈당이 정상치보다 조금 높게 나왔던 거죠. 제 차례가 되었고, 몇 분 후 전 간호사에게 큰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제 혈당수치는 아주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그 날 점심부터 처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루에 두 석 잔씩 마시던 커피를 끊었습니다. 실은 커피를 끊은 게 아니라 커피를 마시며 먹던 달콤한 케이크를 끊었습니다. 밥의 양도 줄었습니다. 제가 일하러 집을 떠나는 시간에는 둘째 아들 미누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체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제가 한 잔소리 운동 좀 하세요는 소귀에 경 읽기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최신 의학 기계가 보여준 자신의 몸 혈당 수치 앞에서는 화들짝 놀란 게 분명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전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한평생 여행한 거리와 이스라엘 민족이 여행한 거리, 예수님이 여행한 거리를 모두 다 합해도 바울이 여행한 거리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를 모조리 다 때려잡으려고 노력했던 그 열정이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난 후 정반대 방향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끝없는 여행 중 그가 세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최초의 교회 중 하나인 고린도 교회에서 생긴 문제가 하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라는 단어가 건네는 강렬한 인상을 잠깐 옆으로 제쳐놓으면, 고린도 교회가 맞닥뜨린 문제에서 우리는 인간 본성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척 교회의 수준을 벗어나 어느 정도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 고린도 교회에 생긴 문제는 편 나누기입니다. 담임 목사와 부목사, 장로와 담임 목사, 장로와 권사, 권사와 집사. “어떻게 교회에서 편을 나누어 상대방을 험담하고 싸울 수 있을까?” 세력 다툼에 휩싸인 교회를 보면서 우리가 종종 하는 말이죠? 고린도 교회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고린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있을 때, 이 소식을 누군가로부터 혹은 서신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쓴 편지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3장입니다.


마태복음 182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전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사회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게 험담일 수 있다면,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하기에는 자기 생각이 너무 분명하다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 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는데, 그건 함께 일하기 가장 어려운 직업군 중 하나는 종교 지도자라는 사실입니다. 협력과 조화, 하늘 뜻을 향한 일치를 엄청 주장하는데, 막상 같이 일하려고 모이면 협력과 타협보다는 냉담과 냉소를, 조화보다는 험담을, 하늘의 뜻보다는 각자의 뜻을 더 좋아합니다. 몇 시간에 걸친 이견 조율로 내린 결정도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뒤집어 버리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모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강요에 의해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는 손익계산을 철저히 한 후에 이익이 머릿속에 그려져야지 그 장소에 찾아갑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을 거 같은 모임은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첫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방에 찾아와 처음 그들에게 알려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잊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생각하기 위해, 예수님이 알려주신 참살이를 어떻게든 한 번 살아보기 위해 자립 가능성이 희박한 교회에 모였지만, 교회 재정 상태가 나아지자, 먹고살 만해지자,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목적이었던 교회가 수단으로 탈바꿈했던 거죠. 교회를 손안에 넣기 위해서는 다른 교인을 손안에 넣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착한 편과 나쁜 편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의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사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구약에 정통한 변증가 유대인 아볼로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교회 내 사람은 바울과 아볼로 중 어느 사람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판단한 후 한 쪽 줄을 택해 섰습니다. 교회 모퉁잇돌인 예수님이 살아낸 삶과 예수님이 증거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빠진 고린도 교회 사람을 향해 바울이 편지로 말합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5~7)


      전 매 주일 아침이면 일어나 창틀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줍니다. 물과 태양, 비옥한 토양만 있으면 화분에 심은 식물은 자랍니다. 물을 줄 때면 식물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살펴봅니다. 한 가지 신기한 건 성장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어주더라도 식물은 마냥 자라지 않습니다. 모든 꽃이 한꺼번에 만발하지도 않습니다. 새로 돋아나는 잎사귀가 있으면 언제인지 흔적도 없이 그냥 바짝 말라버린 잎사귀도 있습니다. 한 식물 속에는 성장과 죽음이 공존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면 누리망 검색을 통해 과학적 연구가 내린 결론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결론일 뿐입니다. 어떻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지, 왜 똑같은 물과 양분을 뿌리에서 흡수하지만 어떤 잎사귀는 더 자라고 어떤 잎사귀는 그만 삶을 마감하는지, 그런 불평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어떻게 타협을 이루어 성장이라는 뜻을 향해 함께 움직이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성장의 비밀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면, 심기, 물 주기, 거름주기, 가꾸기 중 어느 한 가지도 다른 것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성장, 곧 생명을 삶의 중심에 둔다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심기, 물 주기, 거름주기, 가꾸기 모두 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건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죠. 예수님의 삶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편 나누기로 바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 우리 일에 충실하여 가정이란 교회를, 직장이란 교회를, 사회란 교회를, 나라란 교회를 잘 가꾸어 생명을 향해 나갈 수 있게 이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옳고 그름은 편을 나누게 합니다. 편을 나누려면 우리는 착하고 상대방은 나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옳고 그름보다 더 중요한 건 성장, 곧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임을 알려줬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건 우리에게 주어진 일 지금 우리가 손으로 붙잡고 있는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 이번 한 주 편 나누기에 급급한 상황의 중심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충실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