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유도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유에프씨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때문이다. 군대 제대 후 복학한 대학교 시절 우연한 계기로 보게 된 크로캅의 '불꽃' 올려 차기를 처음 보았을 때 짜릿함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온몸이 근육질인 상대 선수가 밑동이 잘린 고목처럼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은 처음 봤을 때 저러다 사람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종합격투기가 조금씩 멋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온갖 격투기술을 종합하여 상대방과 싸우는 경기. 막 2017년 유에프씨의 마지막 경기 UFC 207를 봤다. 여성 격투기를 남성 격투기만큼 훌륭한 경기로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한 론다 라우지는 아만다 누네스에게 경기 시작 후 48초에 심판이 시합을 정지시켰다. 심판은 론다가 계속 맞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시작과 동시에 한 방 두 방 얼굴에 모시 박히듯 퍽 하고 날아 들어간 누네스의 주먹에 라우지는 당황했고, 몇 초 후 당황한 얼굴은 코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불게 변했다. 이 경기가 예견된 이변이었다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펀치와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로 상대방을 장난감 가지고 놀듯 농락했던 도미닉 크루즈가 신성 코디 가브란트에게 너무도 철저하게 놀림을 받으며 25분을 모두 버딘 후 일인자 허리띠를 넘겨주는 모습은 제삼자인 내 마음을 허하게 만들었다. 도미닉은 한계치 이상의 힘을 써가며 다 진 경기를 어떻게든 이기려고 노력했고, 그런 자신에게 당황했다. 처참한 패배였다.
일인자 결정전을 위해 하루하루 온몸을 고통스러운 훈련으로 불태우는 선수들의 삶을 경기 때 지켜보는 건 멋있다. 어쩜 그 순간에 그런 기술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시합은 언제나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완전히 때려서 눕히거나 상대방의 몸 한 부분의 관절을 완전히 장악해 기권을 받아내야지만 이기는 종합격투기는 경기 후 패자의 얼굴과 축 처진 어깨를 보는 게 쉽지 않다. 수천억 달러가 오가는 경기에 덧붙여진 대중매체 광고는 이제 강인한 신체에 날카로운 정신력 말고 대중의 관심을 한순간에 끌어올 수 있는 교활함까지 요구한다. 실력이 있을지라도 대중을 선동하는 능력이 부족한 선수는 유에프씨 광고판에 오를 수 없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끝없는 진화를 위한 압박감은 선수가 경기장에 설 수 있는 시간을 점점 더 단축한다. 일인자에 새롭게 오른 이를 뒤쫓는 다른 선수들은 일인자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여 이길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현재 종합격투기의 발전 속도는 조금 과장하면 누리망 속도만큼 빠른 거 같다. 자기 체급에서 천하를 일 년 이상 평정한 일인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돈, 돈이 불러 오는 부, 부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이룰 수 있는 사회적 명예가 종합격투기에 힘을 불어 넣는 심장이다.
유도복을 입은 후 갈색띠를 허리에 매는 난 종합격투기에서 한 가지가 아쉽니다. 심신을 단련하여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할 격투기가 다른 이를 얼만큼 잔인하게 해칠 수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 성공을 쟁취할 수 있는 문명 속 전투로 변했다. 로마시대 검투사는 21세기에 종합격투기의 팔각형 철장 경기장 안에서 부활했다. 이제 검투사는 로마시민을 위한 노예-연예인이 아니다. 오늘날 검투사는 욕망의 노예가 되었다. 물론 나의 이런 짧은 생각은 "먹고 살기 위해 종합격투기를 시작했다!"는 선수들의 입장과는 정반대에 서있다. 문제는 얼만큼 먹고 어느 정도로 살아야 하는지는 수학공식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이번 주 내내 유도를 하지 않았더니 유도가 하고 싶다. 지누에게 유도복을 입히고 책에서 유튜브에서 본 기술을 시도한다. 지누는 아프다고 이내 표정을 바꾼다. 유도. 참 좋은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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