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누
아들을 둔 아빠라면, 그것도 힘들지만 아이와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가능한한 노력하는 아빠라면, 아들이 튼튼하고 강인하게 크길 바란다. 나 또한 그런 아빠다. 내가 어릴 적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태권도를 검정띠를 따는 순간까지는 꼭 시켜야겠다는 다짐이 미국 유학/이민 생활 적잖은 태권도 강습비로 깨졌다. 아니.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하면 지누(첫째 아들)가 엄마랑 아빠가 식탁에 앉아서 태권도 검정띠 승단심사비를 염려하는 소리를 듣고 검정띠를 안따도 된다고 말했다. 천 달러를 내야하는 검정띠 승단은 진짜 검정띠가 아닌 '쥬니어' 검정띠였다. 그건 또 다른 시작이었으니, '쥬니어' 검정띠를 따고 나면 진짜 검정띠를 따기 위해 또 다른 추가 강습을 받아야 했다. 태권도 일기도 써야 하고, 태권도 경연대회에도 나가야 하고, 경연대회 준비단에 들어가려면 도장에서 판매하는 각종 겨루기 장비를 사야했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미국에 와서 태권도로 잘살아보겠다는 야심은 이해하지만, 없는 형편에 아끼고 아껴서 아들을 태권 도장에 보내는 부모 눈에 빤히 내다보이는 장삿속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지누는 검정띠 승단 심사를 앞두고 태권도 수련을 멈추었다.
주짓수.
유에프씨를 보면서 마음속에서만 전사의 심장을 불태웠던 내가 어느날 구글 검색에 "집 근처 주짓수"를 입력했다. 어쭈구리! 집에서 차로 오 분 거리에 유도장이 하나 있었다. 주짓수를 같이 가르친다는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지누와의 유도 수련.
난 올 봄 검정띠 승단 심사를 위해 필요한 오 점을 따기 위해 처음으로 "유도 승단 경연 대회"에 출전했다. 네 번 겨뤄서 세 번 지고 한 번 비겼다. 내 유도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
2017년 9월 23일. 지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도 경연 대회에 출전했다. 세 번 겨뤄 한 번 이기고 두 번 졌다. 첫 번째 시합을 누르기로 이기고, 두 번째, 세 번째 시합을 겨루기로 내줬다. 그래도 아빠인 난 너무 너무 자랑스러웠다. 태어나서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어느덧 자라나 유도를 배우더니 스스로 시합에 나가고 싶댔다. 나가서 승리와 패배를 모두 경험했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해 우는 아이들 틈에서 다음 시합을 위해 차분하게 심판관 석 뒤에 서있는 아이의 모습은 멋있었다. 두 번째 시합이 끝나고 목이 마를 거 같아서 물병을 가져다주고 "어땠어? 할만 했어?"라고 물었다. "네." "그래, 재밌게 했어?" "네." "그럼, 됐다. 아빠는 네가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힘내!" "네." 사부님이 내 뒤에 서있는 걸 본 후 난 아무말 없이 지누 등을 한 번 쓸어주고 둘째 미누가 앉아서 장난치고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누가 물었다. "아빠, 나 또 시합에 나가고 싶어요." "그래? 그럼, 또 아빠가 찾아볼게." 며칠 후 지누가 말했다. "아빠, 나 좀 실은 아쉬운 게 있어요." "뭔데?" "망설였어요. 그냥 확 기술을 걸었어야 했는데. 그게 아쉬워요." 녀석도 나랑 똑같은 걸 깨달았다. 한 판에 승패가 달린 유도. 망설이면 진거다. 생각 이전에 내 몸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 이번 주 토요일 두 번째 "유도 승단 경연 대회"를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망설이면 진거다. 망설이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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