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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를 만나다

삶, 사람, 사랑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6. 12. 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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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인지가 정확하지 않다. 아마 2016년 1월 23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누의 태권도 띠가 위로 올라갈수록 태권도 도장 사부님은 장삿술로 이걸 해라 저걸 해라 권유해왔다. 유학생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그 장삿술에 손뼉 쳐 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처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를 의논했는데, 그걸 엿들은 지누는 태권도는 인제 그만 해도 좋다고 말했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녀석이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랑 아빠가 상의하는 걸 들었다고. 태권도가 아니면 뭐가 좋을까를 생각하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주짓수 이야기를 지누에게 꺼냈다. 차로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UFC 체육관이 있었다. 처음 한두 달 지누랑 함께 배우고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갔다. 


     어느 날 우리동네 예체능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유도를 배워서 시합에 나가는 장면이 나왔다. 지누가 무척 관심 있어 하는 게 느껴졌다. 유도란 단어를 구글 검색란에 입력하자 집에서 5분 떨어진 곳에 남산 유도장 South Mountain Martial Arts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항상 오갔던 곳에 도장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관심 있게 쳐다보지 않았다. 사부님께 연락을 취해 1월 23일 토요일 태어나서 처음 유도장에 갔다. 무척 조용했다. 데린 Daryn 사부님은 차분하면서도 냉정했다. 건네준 몸에 맞을 듯한 도복을 갈아입고 파란색 매트에 올라갔다.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시간에는 학교 주변 태권도 관장님이 일 년에 한두 번씩 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도장으로 가서 간단한 태권도를 가르쳐준 후 입단 신청서를 나누어 주며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하라고 '명령'하셨다. 엄마는 돈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딱 한 달만 해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가르쳐주시지 않으셨다. 깡다구라고 불리는 고집이 셌던 난 싸우다 질 것 같으면 꼬집고 이빨을 사용했었다. 그런 날 태권도장에 보내면 깡패로 자랄 거라고 엄마는 생각하셨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태권도나 다른 운동을 제대로 잘 배웠으면 내 인생에 무척이나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누는 시큰둥했다. 하긴 녀석은 낯선 것을 시작할 때면 항상 시큰둥했다. 녀석과 함께 세월이 흘러 함께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유도가 그런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동생 미누도 이삼 년 지나면 함께 유도를 배울 수 있을테고, 두 녀석이 꾸준하게 유도를 배운다면 어른이 된 후에도 떨어져 살다 가끔 만날 때 유도복을 걸치고 (마치 영화에서처럼) 지난 시간 얼마나 몸과 마음의 수련에 충실했는지를 바닥에 던지고 뒹굴며 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들었다. 참, 처에게도 유도를 추천해야겠다. 초등학교 시절 단거리 달리기 선수였다는 자부심에 걸맞게 삼십 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힌 순발력을 가지고 있어서 유도를 하면 잘 할 거 같다. 유도 가족.


     무엇보다 데린 사부님은 백인이었지만 몸에서 동양적 사고와 생각이 풍겨왔다. 한국인인 나를 특별하게 대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으로 친절해 보이려는 미국인 특유의 태도를 지니고 있지 않으셨다. 그래, 여기에서 지누랑 유도를 한 번 배워보자. 더 늦기 전에 무도를 배워보자. 결심했다.


     서른여섯 살에 난 유도를 만났다. 유도. 부드러움의 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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