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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4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6. 9. 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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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보건주일, 성령강림 후 제16주: 녹색)




설교자: 이광유 목사


제목: 돌아선다는 거


      마음은 한국에 있고 몸은 미국에 있는 게 이민 1세대 삶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한 수필에서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상흔을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한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로 들려주셨습니다. 전쟁 중 살기 위해 떠나온 고향. 1953년 휴전선이 생긴 후 한 번도 고향에 가본 적이 없지만, 그 어르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하루를 또 하루를 사셨고 어느덧 칠순이 넘었습니다. 북한에 두고 부모님이 그리워 꼭 결혼은 고향에 돌아가서 해야지 했는데, 살다보니 가정을 꾸렸고, 첫아기만큼은 꼭 부모님 손에 안겨드려야지 했는데, 아이는 태어났고, 다 큰 아이를 꼭 부모님께 보여드려야지 했는데, 어느덧 고향을 떠날 때 부모님보다 더 늙은 할아버지로 변했습니다. 남한에서 살아온 날이 북한에서 산 날의 세 배 네 배가 되지만 여전히 남한은 낯섭니다. 그 어르신은 끝내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권정생 선생님은 몸은 남한에 살았지만 마음은 북한에 살다 생을 마감한 그 어른신의 삶은 대체 어디에서 잘못되었냐고 그 잘못은 대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남의 이야기인데,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죠? 고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 들어와 사는 이민자는 특별한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돌아가신 그 어르신의 마음도, 이를 옆에서 지켜본 권정생 선생님의 마음도 쉽게 이해합니다.


      지난주 수요일 저녁에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간 아내를 대신해 집에서 두 아들을 돌보는데, 둘째 녀석 미누가 함께 장난감 블록을 조립하자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도 잘하니 해봐라. 아빠는 네가 다 만든 걸 보고 싶다.” 몇 마디를 건네며 도망치려 했지만, 미누의 마음은 간절했습니다. 할 수 없이 미누 옆에 앉았습니다. “아빠, 이제 블록을 새로 만들려면 전에 만들어 놓은 걸 다 부셔야 해요. 알겠지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기가 블록으로 만들어 놓은 로봇을 부수는 미누를 보며 멍해졌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걸 모두 다 부셔야 한다는 어린아이의 말이 신선하게 들렸기 때문이었죠.


      얼마 전 제가 근로학생으로 일하는 드류 대학교 역사박물관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가 6년간 함께 일했던 역사박물관 실무 총책임자가 드류 대학교 도서관장으로 승진했고, 역사박물관 사서가 임시 실무 총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사서에서 임시 실무 총책임자로 승진한 이는 갑자기 생긴 권위를 마음껏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박물관 업무를 하나하나 개편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랐고 많은 걸 한꺼번에 하려다 보니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은 특별한 상의 한 마디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근로학생에게 떠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윗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드라마 속 인물. 생각나죠? 저건 아닌데. 저렇게 순식간에 사람이 바뀌면 안 되는데. 조바심이 생겼고 그런 제 마음이 그 사람에게도 전해졌는지 저와 그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저 혼자 이런 긴장감으로 마음고생을 하는지가 궁금해져 함께 일하는 학생 네 명에게 물어봤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 큰맘을 먹고 도서관장을 만나 이런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침착하게 제 이야기를 들은 도서관장은 다른 학생 네 명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고 대답했죠.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일의 결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학생 네 명은 도서관장과 만났을 때 저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했던 거죠. 지난주 화요일 도서관장을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전 나머지 네 명이 저와 다른 말을 했다면 그건 아마도 제가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이니 생각을 바꾸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갑작스레 변하는 사무실 환경을 예전처럼 평화롭게 되돌리려던 제 행동은 절 사무실 환경을 어지럽힌 불순분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한 번씩은 다 해보셨죠? 그런 착잡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성경책을 펼치자 맞닥뜨린 구절이 바로 오늘 함께 읽은 예레미야 23장입니다. 종교지도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예레미야는 단호한 어조로 전달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어두운 가운데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어냄을 당하여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23:11~12)


부끄러움이 마음속으로 몰려왔습니다. 제가 저지른 실수를 가만히 뒤돌아보니 미움과 질투가 없었다면 이런 행동을 취할 이유가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돈독한 신뢰관계를 형성하지도 않은 채 저는 함께 일하는 학생에게 제 마음을 드러냈고 그들 또한 드러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제 행동이 다른 학생에게는 문제를 악화시키려는 행동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실수를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지 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미누랑 함께 블록 놀이를 할 때 몸은 미누 옆에 있었고 미누가 하는 말에 하나하나 대꾸를 해주었지만 제 마음은 역사도서관에 있었습니다. 그때 미누의 말이 제 마음속으로 쑥하고 들어왔습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걸 다 부셔야해요. 알겠지요, 아빠?” 제 두 아들 녀석은 아침에 눈 뜨는 순간 싸움을 시작해서 잠들기 전까지 틈만 나면 싸웁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에게는 싸우지 마라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싸움은 삶에 있어서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싸웠다가도 엄마가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면 한 식탁에 마주 앉아 언제 싸웠느냐는 듯 정답게 간식의 맛을 평가하며 사이좋게 나누어 먹습니다. 물론 간식을 다 먹고 나면 다시 언제 그렇게 다정했느냐는 듯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합니다. 이 아이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삶을 블록 만들기로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쌓을 때는 쌓는 일에만, 그렇고 다 쌓고 나면 그동안 쌓는 일에 쏟았던 관심은 사라집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새롭게 무언가를 쌓으려 하면 녀석들은 이전에 만들어 놓은 블록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과감하게 부숴버립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계속 마음속에 부담으로 다가왔던 게 있는데, 그건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과거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하라. 과거의 잘못된 행실을 터럭 하나 남김없이 모두 다 없애라. 없애지 않으면 내가 널 대신해서 없애버리겠다. 섬뜩하도록 무서운 말씀입니다. 어떠한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하나님을 마주 대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적당한 타협과 적당한 계약, 적당한 삶에 익숙해졌고 그걸 파괴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주님 뜻대로 다 잘 알고 계시죠? 찬양단 마커스가 이 찬송가를 새롭게 편곡한 복음성가 가사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 속에서 신실하신 주님 약속 나 붙들리라. 세상이 이해 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여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들리라.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이스라엘 성전 제사장, 사마리아 선지자, 예루살렘 선지자도 처음에는 잘했을 겁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속 깊이 새겨 하루하루 성실하고 담담하게 감사하며 살았을 겁니다. 한 번의 타협이 재앙의 근원입니다. 한 번의 실수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합니다. 한 번의 타협은 두 번의 타협을, 한 번의 실수는 그 실수를 고치기보다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또 다른 실수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선다는 게 무엇인지를 미누는 블록 쌓기로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서려면 지금까지 쌓아온 블록을 모두 부셔야 합니다. 돌아가는 거 같고, 뒤처지는 거 같지만, 실은 그게 더 나은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새롭게 주어진 한 주를 살면서 새롭게 블록을 쌓아 올리길 바랍니다. 새롭게 블록을 쌓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지금까지 잘못 쌓은 블록을 통째로 부수는 일이란 걸 명심합시다.


 

기도


하나님, 사람의 지혜와 사람의 술책이 하나님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절실히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수는 고치면 되는데, 그게 생각처럼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게 그리 쉽지 않은 이유가 적당하게 타협하고 적당하게 넘어가려는 우리의 태도임도 알았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모든 걸 뒤엎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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