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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4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6. 8. 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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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2주: 녹색)




설교자: 이광유 목사


제목: 리우 올림픽에 간 이사야


      날씨가 참 뜨겁죠? 제이티비시 뉴스를 통해 가끔 한국 소식을 듣는데, 열사병으로 돌아가신 분이 예년보다 현저하게 늘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위해 시작한 전기 누진세로 뜨거운 여름 서민들은 전기세가 걱정되어 냉방기도 제대로 틀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에는 한국전력공사가 보유한 전력의 95% 이상이 사용되어 비상사태가 선언된다네요. 더운 여름이면 적어도 시야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았는데, 이상 기온현상은 한여름에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미세먼지를 기압 차이로 사라지게 하지를 못해 고스란히 한국으로 배달하고 있답니다. 어린 시절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저녁을 드신 후 장롱에 기대앉아 9시 뉴스를 볼때면, 혀를 끌끌 차며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하셨습니다. 요즘 아침 식사를 먹는 제 처 입에서는 어머머!’, ‘세상에!’란 감탄사가 나오곤 합니다. 언젠가 김용옥 선생님은 텔레비전에서 한국학에 대한 강의를 하시다 성인 (聖人)자신에게 직접 해당하지 않는 일로 괴로워하고 근심하는 넓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정의하신 적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시다 혀를 끌끌 차신다면 성인이란 말인데, 고단한 삶은 우리 모두를 성인으로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는 거 같습니다.


      요즘 브라질 리우에서는 올림픽이 한창인데요. 드류역사도서관에서 일하는 낮에 틈만 나면 누리망 다음에 접속해 새로 올라온 올림픽 소식을 확인합니다. 물론 한국 선수들의 경기 결과를 보기 위해서죠. 미국에 들어와 산 지가 어느덧 10년이 되었는데, 이번 리우 올림픽이 왜 이렇게도 제 관심을 끄는지 신기합니다. 특별히 첫째 아들 지누랑 미국인 사부님 밑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배우는 유도 시합이 있는 날이면 온종일 맘이 조렸습니다. 잘해야 할 텐데. 각 체급 세계 1, 2위인 우리나라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준결승전에서, 8강전, 16강전에서 패하면 안타까움에 또 혀를 끌끌 찼습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을 텐데누구보다 간절히 금메달을 바랐을 텐데누리망 다음은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아쉽게’, ‘어이없게’, ‘안타깝게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겼어야만 했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거라 그러질 못한 게 영 아쉬워서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겠죠. 반대로 남자 에펠의 박상영 선수와 남자 사격 50m의 진종오 선수의 금메달 순간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짜릿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도무지 승리가 불가능한 그 순간에 침착함과 용기를 잃지 않았고 포기라는 생각을 저 멀리 던져버렸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그렇지만 세계 최강의 선수들과의 시합에서 그런 일을 이룬다는 건 결코 쉽지가 않기에 이 두 선수의 우승 소식을 듣자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제 어깨에 힘이 들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전 세계인이 한자리에 모여 평화와 화합을 다지는 세계 운동회, 올림픽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먼저 평범하지 않은 특수한 능력을 갖춘 운동 선수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겠죠. 탄탄한 근육질로 무장한 청년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죠. 갓 스무 살 넘은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처가 말하더군요. “여보, 난 저 때 뭘 했나 싶네요. 저 선수들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가장 큰 무대에서 가장 강력한 상대를 만나 최선을 다해 경쟁하여 이기고, 또 지면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또 그다음 경기를 준비하는데. 난 그때 세상 사는 게 뭔지도 몰랐고, 뭘 했는지…!” “그러게요.” 그 말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 처에게 이번 리우 올림픽은 스무 살 청년의 모습에 비친 자신의 스무 살을 뒤돌아보는 순간이기도 했지요.


또 뭐가 있을까요? 올림픽에서 경기를 펼치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지켜보며 맘졸여 응원하며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심판 기준의 공정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힘 있는 국가는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기 나라 선수들이 특별히 잘하는 운동 종목에 많은 메달을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수영이죠. 수영이란 운동 종목에서 신이 되어 버린 미국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 지금까지 총 2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하죠? 모두 걸면 목이 휠 수도 있을 정도인데요. 그가 그런 엄청난 기록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한 운동 종목이 수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수영 실력을 깍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운동에는 처음 배울 때 따라야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은 통계라는 수학적 계산 방식을 사용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세계적 규모의 운동 시합이 열린 후에는 운동 훈련 방식이 새롭게 바뀝니다. 신기록을 세운 선수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자신의 움직임에 적용하기 위해서죠. 마이클 펠프스가 처음으로 접영에서 두각을 나타낸 해, 전 세계 수영 선수들이 하는 접영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오늘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건 공명정대입니다.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사사로운 이권에 관심을 쏟지 않고 오직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실력을 통해서만 일인자를 결정하는 심사기준이 지금까지 잘 유지되었기에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로 계속해서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양궁이 지금까지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제 처가 알려주었습니다. 학연과 지연을 떠나 오직 실력으로만 국가대표 선수를 뽑는 원칙을 지금까지 처음 그대로 유지하고 있답니다.


이제 이 공명정대를 우리의 삶, 우리의 신앙생활에 한 번 적용해 보려 합니다. 어느덧 함께 읽는 이사야서는 이번 주에 끝이 납니다. 이사야서를 한 권의 책으로 볼 때, 이제 결말에 접어들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한 예배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 이사야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칠 고난과 위기를 예언한 후 이스라엘 민족 주변 나라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그런 후 종말의 순간이 지난 후 다시금 새롭게 시작할 이스라엘 민족의 재건과 부흥을 노래합니다. 결말 부분에서 이사야는 종말을 준비하며 우리가 해야 할 게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이미 함께 읽었지만 제가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4-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정의는 종말을 상상케 하는 혁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는 우리보다 약한 사람, 우리보다 가난한 사람, 우리보다 무능한 사람, 우리보다 모자란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금식하면서 논쟁하고 다투며 악한 주먹을 휘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논쟁거리가 아직 마음속에 있고, 다툼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다른 이를 향해 마음속의 주먹이 꽉 쥐어져 있다면, ‘금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금식하지 말고 논쟁하고, 다투고, 주먹을 휘둘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고, 다투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 게 금식하는 것보다 더욱더 귀한 일이란 걸 하나님은 알려주고 계십니다. 무조건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주라는 게 아닙니다. 논쟁거리가 불거지기 전에 논쟁의 불씨를 없애고, 다투려는 긴장감이 더 자라나기 전에 웃음으로 바꾸고, 주먹질을 보듬어 줌으로 바꿀 수 있는 공명정대를 삶의 기준에 두는 말씀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리우 올림픽. 우리나라 선수들을 마음속 깊이 응원할 때, 우리 각자의 삶 또한 열심히 응원하며 여기 모인 우리가 모두 공명정대로 이번 한 주를 힘차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포된 종말의 시작은 무엇이 올바른지 무엇이 올바르지 않은지를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 한쪽에서 시작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올바른 걸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묘한 타협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타협은 걷잡을 수 없게 커지고 우리 삶은 가식의 가시밭으로 변합니다. 뜨거운 여름. 뜨거운 리우 올림픽을 보며 이사야의 입을 통해 당신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공명정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 한 주 이를 삶이란 밭에 잘 옮겨 심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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