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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2019)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0. 5. 24.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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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2019)

1917년 4월 6일 영국군 항공 정찰대는 프랑스 북부에 형성된 서부 전선에서 독일군이 일시적으로 퇴각한 건 힌덴버그 전선에서 영국군을 함정에 몰아넣으려는 군사 작전이라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힌덴버그 전선과의 교신은 불가능한 상황. 에린모Erinmore 대령은 윌리엄 스코필드William Schofield와 톰 블레이크Tom Blake 일병에게 독일군 점령 지역을 가로질러 데본서Devonshire 연대, 제2대대 사령관 매킨지Colonel Mackenzie에게 며칠 내에 대대적으로 진행할 공격 작전을 취소하라는 군용 편지 전달을 명령했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는 말을 난 참 싫어했다. 해군교육사령부 신병교육 훈련소에서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말이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몇 사람의 감정싸움에서 시작하는 게 전쟁이다. 몇 사람의 삐뚤어진 마음이 행동으로 잘못 옮겨질 때, 삶과 죽음이 철저한 우연성에 따라 결정되는 전쟁터에서 하루하루 불확실성과 씨름하며 수많은 사람이 평범한 삶을 박탈당한다.

 

       블레이크 일병의 죽음 역시 우연이 만든 결과였기에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슬픔과 암담함이 잠깐 마음을 다그치더니 이내 어처구니가 없음이 마음을 가득 메웠다. 영국 공군의 공격에 맞아 추락하는 비행기가 공교롭게도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서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불붙은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한채 몸에 불이 붙은 독일군 비행조종사를 둘은 힘을 합쳐 비행기에서 끌어내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스코필드는 조종사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근처 우물로 뛰어가 군모에 물을 받았다. 그때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독일군 비행 조종사가 블레이크의 배를 단도를 찔렀다. 깜짝 놀란 스코필드는 서둘러 총을 들어 조종사를 사살했지만, 친구이자 동료였던 블레이크 일병도 그 자리에서 죽었다. 블레이크 일병의 형은 군의관으로 데본서 연대에서 복무 중이었다. 숨을 거두면서도 블레이크는 형을 걱정하며 스코필드에게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침반 하나에 의지한 채 스코필드 일병은 독일군 점령지역을 지나 데본서 연대 제2대대 사령관 매킨지를 찾아 쉬지 않고 걷고, 달렸고, 헤엄쳤다. 영국군이 독일군의 속임수에 넘어가려는 찰나의 순간에 스코필드는 임무를 완수했고, 스코필드가 건넨 편지를 확인한 사령관 매킨지는 작전 취소를 명령했다.

 

       아주 잠깐 다시 찾아온 어느 평온한 오후에 스코필드는 외딴 곳에 홀로 서있는 나무에 등을 댄 채 바닥에 앉아 가족사진과 사랑하는 여인 사진을 꺼내 바라봤다.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잠깐이나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였을까?

 

       전쟁의 섬뜩함을, 섬뜩함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영화 곳곳에 배여 있어서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극적 요소가 없었기에 더욱더 극적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영화가 끝난 후 지누에게 물었다.

"영화 어땠냐? 아빠는 정말 재밌던데."

"It's so realistic. 네, 너무 사실적이었어요."

'이 녀석이. 아직 한 번도 군대만이 아니라 전쟁을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면서. 사실적이라고 평가를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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