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삶을 영화로 재구성했다. 1917년 12월 30일,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확실하게 점령한지 7년이 지나가던 해의 끝자락에 동주는 태어났다. 같은 해 한 지붕 아래에서 태어난 사촌 몽규와 함께 동주가 태어난 세상은 특별했다. 기분좋게 특별한게 아니라 어딘가 씁쓸하면서도 서럽게 특별했다. 민족과 땅은 있었지만, 주권이 없는 나라에서 동주와 몽규는 태어났다. 자라남은, 자라남과 함께 자연스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지고 넓어짐은 동주와 몽규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동주는 내성적인 성품이라 현실의 암담함을 마음속에 담으며 삶을 버텨나갔고, 외향적인 몽규는 어떻게든 무언가를 말하고 자기가 한 말을 행동에 옮기며 삶의 미약하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라도 바꾸며 살려고 노력했다. 몽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다가감이었고 부딪힘이었다. 그런 몽규의 성품을 언제나 몇 발자국 뒤에서 차분히 바라보며 (아마도 조금은 부러워하며) 따랐던 동주는 몽규에게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시에 담아냈다. 하늘이 떠있는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걸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은 매사에 있어서 그가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던거 같다. 몽규를 따라 경성전문대학교에 진학했고, 몽규를 따라 일본에 가서 공부하려고 창씨개명도 했던 동주.
열등감이었던거 같다. 나라가 있지만 자기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의 연옥 속에 갇힌 삶, 무언가를 꿈 꾸기에는 그 꿈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현실'의 부재, 사랑하기조차,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기조차 힘든 시기였을까? 적어도 영화 속에 그려진 동주의 모습은 그렇게 보였다. 자기보다 항상 한 발짝 앞서 걸어갔던 몽규, 은근히 몽규처럼만 하길 바랐던 아버지. 자기 내면 속 목소리를 망설임 없이 드러내더라도 누가 뭐라할 이유가 없었을 그였지만 동주는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자기에게조차 조심스러운 머뭇거림을 시에다 하나 둘 담아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처음으로 화를 내는 동주를 보여준다. 문명국이기에 합법적 절차에 따라 죄수를 처벌한다며 진술서에 서명하길 요구하는 검사관에서 동주가 '한글'로 외쳤다. "부끄러워서 진술서에 서명할 수가 없습니다."
살기 위해 일본 앞잡이가 되었다, 살기 위해 미국 앞잡이가 되었다, 다시 살기 위해 북한 앞잡이가 되었다, 또 다시 살기 위해 공산당 사냥꾼이 되었던 사람들. 그들에게 동주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애송이였겠지? 시를 배우기 위해, 문학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의 상상력에 변화를 일으켜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창씨개명을 한 후 일본에 갔던 동주가 손에 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그가 남기고 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의 시집이 그를 위해 해 준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를 통해 나는 일제강점기를 버텨내며 살았던 조상들이 공유했을 집단 신경증을, 집단 강박증을 확인할 수 있다. 희망 없는 현실에서 희망을 바라기, 내일 없는 오늘 속에서 어떻게든 내일을 꿈꾸기,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자기 또한 죽어가고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그럼에도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기.
잘 산다는 건 무엇을까? 터무니 없는 질문이 내 마음속에서 갑자기 솟아났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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