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로 변한 나미야 잡화점은 신비로운 공간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가 된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신분 차이를 극복할 용기가 없었던 한 젊은이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잡화점 영업을 시작했다. 잡화점에 붙인 이름이 나미야다. 하루하루 잡화점을 지키며 사는 게 무료해진 그는 어느 날 잡화점 출입구 옆 벽면에 게시판을 만들어 고민 상담소를 시작한다. 영업이 끝난 시간부터 다음날 영업이 시작할 때까지 고민이 있는 사람은 고민거리를 종이에 적어 잡화점 철문에 설치한 편지함에 넣으면 된다. 종이에 적힌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잡화점 주인은 고민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쪽지에 적어 잡화점 벽면에 설치한 게시판에 붙인다. 잡화점 주인의 답변을 확인하고 싶으면 게시판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자신이 남긴 고민에 대한 답변을 찾아 읽은 후 조용히 자리를 떠나면 된다. 누가 고민을 적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딱 한 명. 고민을 적어 편지함에 넣은 사람이다. 하루하루 다른 이의 고민을 읽고 함께 고민했던 나미야 잡화점 아저씨도 세월의 흐름이 인간에게 건네는 고민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죽음. 잡화점 아저씨가 죽자 잡화점은 문을 닫았다. 나미야 잡화점이 문을 닫자 나미야 고민상담소도 문을 닫았다.
폐가로 변한 나미야 잡화점에 어느날 사춘기 소년 세 명이 숨어든다. 한 중년 여인 집에 숨어들어 여인을 결박한 후 여인의 가방을 들고 도망친 청소년 세 명은 경찰을 수색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찾다 폐가로 변한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갔다. 밤을 지새우며 다음날 도망갈 길을 모색하던 그들에게 배달된 누군가의 고민이 적힌 편지 하나가 편지함에 떨어졌다. 누가 넣은 지를 보기 위해 잡화점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편지를 읽어보니 고민거리를 적은 날이 오늘이 아니라 수 십 년 전이다. 과거로부터 편지가 왔다.
편지의 내용을 차분하게 읽어보니 편지를 작성한 이는 현재 자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 직접적이지는 않았지만 그순간 자신의 삶이 가능하게 했던 누군가가 자신의 삶과 스쳐 지나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청소년 세 명은 과거로부터 배달된 자신의 삶과 관련 있는 이가 쓴 고민 편지에 답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존재가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과거에 개입한 그들의 몸짓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자연스러운 사색으로 승화한다. 폐가로 변한 나미야 잡화점에 경찰을 피해 숨어든 그들의 현재는 과거에 그들의 선택한 미래가 모여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날이 밝자 그들은 전날 밤 습격했던 한 중년이 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 중년 여인 옆에 경찰이 있는 걸 확인한다. 경찰에게로 걸어갔다. 자수하려고.
현재와 과거, 미래가 만나는 공간인 나미야 잡화점. 나미야 잡화점은 위기를 만난 우리가 느끼는 불안, 공포, 초조, 갈등과 염려, 걱정을 상징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위기는 과거에 우리가 선택한 미래가 집적된 현재다. 인간은 시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시간속에서 살 수 없다. 시간이라고, 현재, 과거, 미래로 나누어 생각하는 우리 삶은 실은 우리가 선택한 결정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현상일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시작할 때 나미야 잡화점으로 달려들어간 청소년 세 명이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삶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미래 속에는 과거가 점철되어 있었다. 현재 속에는 미래를 향한 움직임이 가득 차 있었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이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구별은 삶을 진지하게 대할 수 없는 인간의 비겁함에 그 기원이 있다. 후회를 주관화하기 싫어 객관화하면 과거가 된다. 희망을 품을 마음밭이 좁고 얕아 이를 대상화하면 미래가 된다. 현재가 두려울 때 우리는 상상을 통해 미래로 도망갈 수 있다. 지금을 살아라고, 지금을 살면서 선택하고, 매 순간 선택하며 지금을 경험하는 게 삶이라고 폐허가 된 나미야 잡화점은 말한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내는 자러 들어갔다. 삼분지 이를 참고 보던 지누도 잠이 와서 더는 볼 수 없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난 참고 봤다. 참고 본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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