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영화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지누와 함께 보려고 했는데, 첫 장면부터 거리에서 흑인 청년 두 명이 마약 거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다른 영화로 바꿨다. 며칠 전 괜히 한가할 때—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하고 싶지 않을 때—혼자서 봤다.
지난번 첫 장면에서 받은 인상과는 달리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다. 한 흑인 소년의 성장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다른 이에 비해 괜스레 멍청해 보이고 그래서 한 번 두 번 놀림을 당하다 보니 어느새 학교와 동네 ‘놀림빵’이 되어버린 아이가 있었다. 엄마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지만, 마약에 손을 댄 이후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마약 의존이 중독이 발전하자 마약 살 돈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나가 몸을 파는 창녀로 살아갔다. 이런 엄마 인생의 종착역은 재활 치료소였다. 어린 소년에게 아빠는 없었다. 아빠의 역할을 잠시 대신해 준 이는 동네 형.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열심히 쫓아오는 친구들을 피해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들어가 있었는데, 누군가 빈집 부서진 창문을 막아둔 판자를 뜯어내고 집으로 들어와 소년에게 친구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갔다고 알려줬다. 영화 첫 장면에서 마약을 파는 청년이 그 동네 형이었다.
학교가 끝난 후 갈 데 없는 소년은 그 형 집에 가서 형 여자 친구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었고 형과 함께 바닷가로 가서 형으로부터 수영하는 법도 배웠다. 어느 날 엄마가 마약을 그 형에게서 산다는 걸 알았고 형에게 그 사실에 관해 물었다. 동네 형은 그렇다고 말했다. 둘의 관계는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빠가 없는 것보다는 마약상이지만 아빠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대신해 주는 형이 있는 게 나았으니까.
그 아이의 인생은 한순간에 바뀐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가지게 한 남자 친구를 시켜 자신을 인정사정없이 때리게끔 한 깡패 같은 학교 친구에게 폭력을 가해 경찰에 잡혀가는 순간을 영화는 이 소년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분기점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엄마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을 난생처음 알려준 친구의 주먹질을 소년은 아무 말 없이 무기력하게 받아들였다. 그 친구를 진심으로 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깡패 같은 녀석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엉망진창의 얼굴을 꼿꼿이 들고 분노에 휩싸인 채 소년은 대낮에 학교로 찾아가 수업 중에 교실에 앉아 있는 깡패 같은 친구의 뒤통수를 의자로 힘껏 때린다.
그런 후 영화는 성인이 된 소년을 보여준다. 마약을 팔지는 않지만, 동네 건달로 살아가는 어른이 된 소년. 어느 날 자신에게 처음으로 성적 경험을 안겨준 남자 친구가 전화했다. 둘은 다시 만나 지난 시절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그 친구는 식당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고, 아이도 있었다. 어른이 된 소년은 친구에게 고백한다. 자신을 지금까지 그렇게 따뜻하게—자신의 성기를 만져주며—대한 이는 오직 한 명밖에 없었다고. 지금까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그 누구와도 그런 경험을 다시 나누지 않았다고. 친구의 품에 안긴 어른이 된 소년의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달빛이라…. 은은한 달빛을 맛보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의 참모습을 보려면 겉이 아닌 속을 보라는 말일까? 흑인. 겉이 검다고 속이 검지는 않다는 사실을 감독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흑인은 태어날 때부터 살아갈 삶이 정해져 있다는 환경적 요소를 영화는 담담하게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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