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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자체 Life Itself (2018)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9. 1. 29.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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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tself (2018)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인생은 무대고 인간은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라고. 보통 배우에게는 역할과 각본이 주어진다. 그런데, 「삶 그 자체Life Itself」라는 영화에는 한 가지 조건이 더해져 있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기할 배우에게 각본도 역할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각본과 역할은 바뀔 수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다. 삶은 매 순간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역할을 강요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래서 선택이다. 끝없는 선택. 하지만, 선택만으로 삶을 지속할 수는 없다. 삶 곳곳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잠복근무 중이니까. 

       만삭 중인 아내와 함께 정겹게 인도를 따라 걷던 한 남자 눈앞에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아내는 뒷걸음질 치며 차도로 걸어들어갔는데, 그 순간 달려오던 버스가 아내를 친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서 아내는 숨을 거두고 배 속에 있던 딸만 살아남는다. 자동차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는 정신적 외상 장애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고, 딸아이는 남자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운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 상담을 받던 딸아이의 아빠는 어느 날 의사 앞에서 권총을 꺼내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다. 자살하기 전에 정신과 의사에게 했던 이야기는 죽은 아내의 어린 시절 삶이었다.

       엄마, 아빠가 다 학교 선생이었던 아내의 어린 시절은 행복감이 가득했다. 불의의 사고가 그녀를 세상에 홀로 남길 때까지. 어느 날 가족 나들이 중 아빠가 몰던 차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과 충돌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엄마와 아빠는 죽는다. 아빠가 몰던 차 속에 갇힌 소녀는 사고로 목이 잘린 아빠의 시체를 침묵 속에서 40분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정신적 외상 장애. 소녀는 고아로 자라났고, 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에서 남편을 만났다.

 

       차도로 뒷걸음치며 들어온 만삭인 여인을 친 버스 안에는 스페인에서 뉴욕으로 여행 온 한 가족이 타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 미국을 처음 방문한 소년이 흥에 겨워 버스 안 승객 모두에게 인사를 나눈 후 버스 운전사에게로 다가갔다. 인사를 건넸고, 소년의 인사에 흥겹게 대답하던 운전사는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갑작스레 뒷걸음질로 차도로 들어온 만삭의 여인을 볼 수 없었다. 소년은 그 자리에 서서 차에 치여 도로에 쓰러진 여인과 여인 옆에서 절규하는 남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적 외상 장애. 스페인으로 돌아간 소년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주인의 포도 농장 총책임자로 일하던 아빠는 주인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리고 도움의 대가로 주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신의 가정을 주인에게 넘겨준 후 집을 떠났다.

자동차 사고로 죽은 엄마의 뱃속에서 의사로 도움으로 세상에 나온 소녀는 할아버지 품 안에서 자라나 어른이 되었다. 소녀의 삶을 가득 메운 상실감과 절망감은 소녀의 마음속에 공격성과 분노로 자라났다. 밤이면 록 음악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친구랑 싸운 후 길거리에 설치된 한 의자에 하염없이 앉아있다 울기 시작했다.

포도 농장 주인의 도움으로 정신치료를 받은 소년의 건강은 좋아졌고, 어느 날부터 달리기로 자신을 스스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건강하게 잘 자라나 미국으로 유학갔다. 미국 대학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년은 그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질 못하여 여자 친구에게 결별 선언을 한 후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날 밤 혼자서 뉴욕시 도로를 하염없이 달린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숨을 고를 때, 옆에 설치된 의자에 앉은 한 여인이 하염없이 울고 있는 걸 발견한다. “저기, 괜찮으세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소년과 소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자라나 자기 삶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소설을 써서 출판한 후 한 기념식에서 소감을 나누는 모습이다. 삶 그 자체가 어쩌면 이세상 최고의 감독이자 동시에 배우이며, 또한 관객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처음 세상을 향해 선언한 이는 자신이 아닌 엄마라는 사실 또한 밝힌다.

 

정신적 외상 장애. 사랑. 우연과 필연. 삶. 삶에 관해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건네는 처음에는 무섭고, 중간부터는 궁금하고, 마지막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다. 

2019년 1월 28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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