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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Coco (2017): 기억 속에 있는 영원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8. 1. 15.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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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밤이면 지누와 함께, 가끔씩은 처도 함께, 영화를 본다. 어젯밤(2018 1 12)에는 막내 미누도 함께 영화를 봤다. 금요일 밤 영화 보는 걸 우리는 불금이라고 부른다. 금요일 저녁 한글학교에서 일하는 엄마를 따라가서 한글 몇 자를 배우고 집에 돌아온 지누가 나에게 건네는 진심어린 첫마디는 아빠, 오늘도 불금해요?. 어젯밤에는 미누도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찾다가 코코Coco를 봤다. 영화가 끝난 후 지누랑 미누에게 물었다. 영화, 재밌게 잘 봤니? , 그런데, 진짜 재밌지는 않았어요. 지누가 대답했다. 왜 그랬을까? 아빠는 엄청 재밌게 봤는데!

 

            그 이유는 이야기 속에 담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철학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서 처와 안락의자에 앉아서 점원을 기다리는데, 처가 물었다. 어제 본 영화 코코 어땠어요? , 아주 재밌게 봤어요. 무슨 내용인데? 어 그게...... 횡설수설하다 말문을 닫았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서. 간단한 줄거리였다. 한 아이가 저승에 가서 조상을 만난 후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면 영화는 끝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왜 저승에 가야 했고, 저승에서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게 되는지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모두 영원하길 꿈꾼다. 죽음에 관해 처음으로 깨달은 아이들은 죽는 게 무섭다고 말한다. 30대 끝자락에 이른 난 가끔 잠이 안 오는 밤 홀로 (아이들 방) 침대에 누워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을 생각하다 죽음이란 단어가 눈앞에 나타나면, 누군가가 내 심장에 들어와 심실 벽을 힘껏 쿵하고 때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는 말의 참뜻을 알기 때문이다. 내 이름도, 내 얼굴도, 내 몸도, 내가 시간과 정성을 쏟아 관계를 맺은 사람과 사물도 사라진다. 이렇게 속절없이 망각 속으로 떨어질 내 존재에 영원성을 달아주는 신비가 있는데, 그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는 일이다. 내가 더 이상 날숨과 들숨 사이에 거할 수 없게 될 때, 내가 더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맛볼 수 없게 될 때, 무럭무럭 자라나는 지누와 미누를 더는 옆에서 지켜볼 수 없게 될 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세월의 압력 속에서 담백하게 무르익어가는 처 현민이를 더는 옆에서 지켜줄 수 없게 될 때, 난 사라진다. 영원히.


이렇게 심장을 압박하는 죽음이란 단어에 기겁한 나에게 영화 코코는 말했다. 내 삶은 내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내 아이들이 날 기억한다면, 내 친구들이 날 기억한다면, 내 학생들이 날 기억한다면, 내가 소중하게 가꾼 물건들이 내 채취를 기억한다면, 죽음이 날 데려갈지라도 난 기억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코코는 저승에서 자기 가족의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았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았다. 그렇게 해서 영원하게 살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삶에 영원성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가 살아온 삶에 관해 들었고, 공감하며 분노하고 슬퍼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은 코코는 이승으로 돌아와 삶과 죽음의 문지방을 서성이는 증조 할머니의 기억에 영원이란 날개를 달아준다.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난 두 분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지누와 미누가 생각났다. 이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나 날 어떻게 기억할까? 난 지금 내 삶에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고는 있나? 내가 남기고 갈 발자국 사진을 잘 찍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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