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학기가 끝나고. 울쩍했다. 직장 생활이 순탄하지 않음에 서러웠고, 서러움은 역시나 내 자존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작아지는 자신감은 날 내 마음속 동굴 속으로 몰아갔다. 어느 월요일 아침. 아이들은 학교로, 처는 일하러 집을 나갔다. 집에 혼자 남은 나. '영화나 한 편 볼까?'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켠 후 아마존에 접속했다. 아마존 프라임은 보물창고와 같다. 재밌는 영화와 드라마가 잔뜩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 '뭘 볼까?' 이것저것을 열심히 검색하는데, 영화 포스터 하나가 딱 나타났다. 세상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데, 왜 세상으로 들어가는 모습일까? 재생 버튼을 부른 후 안락의자에 앉았다.
에모리Emory 대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한 한 청년은 직장을 구한다거나 더 나은 직장을 위해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다. 그 순간까지 자신이 이룬 모든 걸 쓰레기통에 버린 후 여행을 떠났다. 문명사회를 벗어나 야생으로 들어갔다. 왜? 영화는 본능적으로 마음속에 떠오른 이 '왜?'라는 질문에 대해 차분하게 대답한다.
부모님을 싫어했다. 자신의 어머니 외에 다른 여자와 먼저 결혼했고, 자식까지 두고 있는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가 원하는 건 모두 다 싫어했다. 아버지가 사준다는 차도 싫었고, 아버지가 추천한 대학원도 싫었다. 돈과 명예, 지위. 아버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 모든 게 싫었다. 그래서 그는 문명을 벗어나 야생으로 들어갔다.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채로.
자기 자신이 싫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감독 역시 왜 그러했는지에 관한 분명한 해답을 찾지 못한 거 같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자신이 싫었고, 어머니를 싫어하는 자신이 싫었고, 두 분의 빈번한 싸움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분위기가 자기 정체성 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남긴 걸까? 영화는 그 이유를 파헤치지 않는다. 짐작 뿐이다.
현실로부터 어설프게 도망쳤다. 문명 밖으로 나갔지만, 여전히 문명 속에서 살았다. 문명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명이 남긴 야생에서의 삶을 위한 길잡이 책을 구해서 문명 밖으로 나갔다. 문명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될 수 없었다. 문명이 남긴 문자를 사용해서 기록한 책을 읽었고, 그 문자로 야생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를 기록했다. 죽기 전 그는 읽고 있던 책의 한쪽에 짧은 글귀를 적어 넣었다. "행복은 함께 나눌 때만 진짜일 수 있다."
문명을 벗어나 야생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야생에서 그는 자유를 얻었고 문명이 남긴 족쇄를 벗어 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야생의 삶은, 자연에 안긴 삶은 문명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한 번의 실수로 그는 죽었다. 문명이 남긴 야생에서의 삶 길라잡이 책을 잘못 읽어서 독성이 든 풀을 먹었다. 몸에 퍼진 독성은 소화장애를 유발했고, 몸과 마음은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다. 몸속으로 퍼지는 독성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그런후 야생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씁쓸했다. 영화를 관람하는 시종일관. 왜냐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문명 속에 거할 때 이야기다. 문명 밖으로 나간 인간은 세상에서 제일 약한 동물이다. 추운 겨울 몸을 따뜻하게 보호할 털조차 모자란다. 역설적이지만, 문명은 이렇게 중요한 털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는지를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여름이면 그런 상품은 불이 나게 많이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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