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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2017)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8. 1. 17.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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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다Florida 주 키시미Kissimmee에는 허름한 모텔이 하나 있다. 매직 킹덤The Magic Kingdom이 이 모텔 이름이다. 디즈니 월드Disney World에 있는 네 가지 왕국 중 하나의 '이름만' 흉내냈다. 진짜가 아닌 가짜매직 킹덤. 영화 중반 무렵 프랑스에서 디즈니 월드로 여행 온 신혼부부가 인터넷 예약을 잘못해서 첫날 밤을 가짜매직 킹덤에서 보내는 장면이 있다. 새신랑은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새신부는 분노에 절은 목소리로 여기서는 잘 수 없다고 외친다이 신혼부부의 등장은 영화 전체 줄거리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가짜' 매직 킹덤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가고픈 휴향지, 플로리다에 살면서도 진짜가 아닌 '가짜'라고 무시받는 삶을 버텨나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가난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에. '가짜' 매직 킹덤에서 '가짜' 삶을 사는 사람들. 플로리다의 뜨거운 태양의 반대편 그늘 속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대체 누가 플로리다에서 진짜 삶을 살고 있을까? 관광객? 아니면 '가짜' 매직 킹덤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는 평범하지 못한, 정상적이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긴 여름 방학 중 무니Moonee의 일상은 장난질에서 시작해서 장난질로 끝난다. 특정한 직업도 없고,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의지도 없는 엄마 할리Halley는 손전화기로 하루를 시작해서 손전화기로 끝낸다. 무더운 여름 이 모녀가 해야 하는 일은 오늘이라는 하루 속에 가득한 무료함을 어떻게 떨쳐버리느냐다. 무니는 스쿠디Scooty디키Dicky잰시Jancey라는 친구와 함께 장난을 치며 하루를 보낸다. 할리는 스쿠디의 엄마 애쉴리Ashelly와 친구로 지내며, 애쉴리가 일하는 가게에서 몰래 빼돌린 음식을 무니와 스쿠디가 가서 가져오면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무척 덥지만, 모두가 바쁘게 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 참 바쁘게 달리는 플로리다에 갈 곳 없이 하루하루를 무료함과 씨름하는 이들이 있었다.


영화는 한여름 무니의 일상을 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주인공 무니라는 아이의 시선과 매직 킹덤 모텔을 관리하는 바비Bobby라는 어른의 시선, 무니도 아니고 바비도 아닌, 그러니까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할리의 시선. 영화는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시선이 끝없이 교차하면서 이어진다.


무니의 시선. 천진난만하다. 엄마 할리에게 배운 대로 무니는 행동한다. 짜증스러운 일은 피하고, 가능하면 즐겁고 신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친구 디키가 다른 곳으로 떠날 때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디키의 아빠가 자신에게 나누어준 디키의 장난감을 가지고 즐겁게 놀면 그걸로 족하다. 매직 킹덤 근처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서 불장난하다 집을 몽땅 태워버렸을 때도 잠깐 겁이 났을 뿐이다. 왜 스쿠디가 더는 자신과 놀지 못하는지, 왜 스쿠디의 엄마 애쉴리가 엄마랑 더는 가깝게 지내지 않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하루하루가 놀이터인 무니에게 삶이란 문제는 어떻게 하면 오늘을 재밌게 보낼 수 있느냐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할리의 시선. 일하기 싫다. 귀찮다. ? 필요하면 그때 잠깐 일해서 벌면 된다. 무슨 일로? 그냥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걸 해서 벌면 된다. 주로 하는 일? 박리다매 매장에 가서 헐값으로 가짜 향수를 사서 딸 무니를 앞세워 집 근처 호텔 주차장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플로리다로 온 여행객에게 갖은 아양과 거짓말로 향수를 팔면 된다. 그날 번 돈은 한 달 치 모텔비를 낼 것만 제하고는 마음대로 쓴다.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먹는다. 돈을 벌 수 없다면? 뭐 까짓거 몸을 팔면 된다. 무니랑 같이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논 후, 인터넷에 사진을 올려 남자를 구한다. 필요한 돈을 구하려고 몸을 파는 거,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 그런 거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하루 또 하루 되는대로 살면 된다.


바비의 시선. 살아야 한다. 내가 하는 일, 내 손에 주어진 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 이 모텔에 사는 사람들에게 잘하자. 동시에 모텔 주인이 시키는 일도 잘하자. 무니와 다른 아이들. 참 버릇없게 큰다. 그렇지만, 외딴 동네에서 이상한 남자가 잘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걸 보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할리의 매춘을 금지해야 한다. 동시에 할리와 무니도 보살펴야 한다. 산다는 거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모순투성이다. 모텔비를 낼 돈이 없는 이들은 쫓아내야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쫓겨나면 더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일,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아자차!


영화는 시종일관 비극적이다. 플로리다의 아름다운 자연을 계속해서 보여주지만, 플로리다의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무니와 할리의 삶은 비극이란 단어를 벗어나지 못해 마음속이 차갑고 쓸쓸해진다. 할리가 딸 무니를 건강하게 양육하지 못한다고 정부 기관은 무니를 데려가기 위해 경찰과 함께 매직 킹덤에 찾아왔다. 공권력이 무엇인지를 아는 할리는 분노하지만 달리 취할 방법이 없다. 바비 역시 그 광경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그역시 씁쓸함을 담배 연기에 날려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니는 달랐다. 자신을 데려가려는 정부 기관 사람의 손을 뿌리친 후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갔다. 마치 무언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경찰은 어깨에 찬 무전기로 주변에 있는 동료에게 아이 한 명이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했다.


무니는 한 명뿐인 친구 잰시 집에 찾아갔다. 자신이 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린 무니는 잰시에게 자신과 함께 어디론가 가주길 부탁한다. 망설이던 잰시는 동생이 엎지른 음식을 치우기 위해 바쁜 엄마를 확인한 후 무니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둘은 뛴다. 어디로 가려는지. 둘은 하염없이 뛴다. 그리고. 둘이 가려고 했던 곳이 디즈니 매직 킹덤이란 걸, 매직 킹덤에 있는 신데렐라 성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관람하는 이가 눈치챘을 때, 영화는 끝난다.


디즈니 매직 킹덤 옆에 있는 매직 킹덤모텔에 사는 무니는 매일 밤 매직 킹덤에서 일어나는 불꽃놀이를 멀리서 보며 자랐지만, 단 한 번도 매직 킹덤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디즈니 매직 킹덤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적이 있는 이라면 안다. 무니와 잰시가 얼마나 먼 거리를 달렸는지를.


       아마도 무니와 잰시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었을 거다. 둘은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그리고 어른인 우리도 가끔 하고 싶은, 상상의 세계로 도망갔을 거다. 어른인 우리가 술과 담배, 순간의 쾌락이 가득한 우리만의 디즈니 월드로 도망가듯이, 무니와 잰시는 그들이 꿈꿀 수 있는 도피 장소를 향해 달렸다. 꿈과 희망의 나라, 디즈니 월드? 영화의 제목은 그래서 플로리다 프로젝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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