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1-18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2)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일러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1
어린 시절부터 목사님들이 믿음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언제나 가장 좋은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경 속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주 짧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창세기 22:1)” 알다시피,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부터 시작한 여행 중에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변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아브람이란 이름은 존경받고 높여진 아버지란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많은 나라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었다는 말은 존경받는 아버지가 많은 나라의 아버지로, 그의 정체성이 변했다는 걸 뜻합니다. 이런 엄청난 정체성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건 아브람을 부른 하나님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아브람이 그 순간부터 만들어간 상호작용, 곧 사귐의 시간입니다.
2
솔직하게 말해서 제게 이 이야기는 항상 골칫거리였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나서 배웠던 목사님들은 보통 하나님을 향한 무조건적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바람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제가 배운 신앙 교육에 따를 때, 전 제 욕망을 포기하고 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제 욕망을 포기하는 건 하나님을 향한 제 믿음이 진실하다는 표시가 되겠죠.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류의 시험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결국에 가서 하나님은 제가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주시겠지만, 제가 포기한 것, 그러니까 제가 잃어버린 건 결코 제게 다시 돌아오질 않습니다. 제가 포기한 것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주어지겠죠. 하지만, 그건 똑같은 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천 번 이상 제가 들은 질문을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신앙을 시험하실 때, 여러분은 가장 소중한 걸 포기할 수 있습니까? 맞네요. 여러분께 이 정말로 어렵고 복잡한 질문을 하기 전에, 저 자신에게 그 질문을 먼저 건네야겠죠. 단도직입적으로 가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제 믿음을 시험하실 때, 전 제 아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참, 전 아들이 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 두 명 중 한 명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전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들 대신에 제 아내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 믿음을 시험하시더라도 전 제 아내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좀 이기적으로 들리지만, 전 하나님을 향한 제 믿음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말이 안되는 말이죠.
3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제 마음속에 찾아오는 또 다른 문제는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갈등했던 순간을 생각해 보시죠. 제 심리학적 지식이 여기서 약간 도움이 될 수 있는데요. 자존감을 안전하게 잘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당화와 합리화를 정말 잘하지만 보통 한 가지 원칙에 따라서 우리는 결정을 내립니다. 익숙한 걸 우리는 좋아하고 원합니다. 반대로 낯선 건 싫어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익숙한 건 안정감과 편안함을 건네줍니다. 낯선 건 불안과 두려움을 건네주죠. 여러분이 자신에게 충분히 솔직하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건 대부분 여러분에게 익숙한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건 대부분 여러분에게 낯선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방황하는 마음속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우리의 욕망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란 어렵습니다.
4
창세기 22장은 짧지만 아주 깊은 뜻이 담긴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제가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창 22:1)” 하나님은 아브람이 75세일 때 부르셨고, 아브람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가 떠난 여행의 목적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거였습니다. 우리처럼 처음에 그는 믿음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랑 비슷했습니다. 망설였고, 걱정했고, 두려워했고, 그래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의 삶을 향해 그가 내디딘 첫 번째 발자국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의 반응은, 그의 정체성을 바꾸었습니다. 믿으실지 안 믿으실지 아리송하지만, 이 교회에 오기로 한 여러분의 결정은 여러분의 정체성을 바꾸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제 새로운 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5
그렇지만, 이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책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하셨을까요?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아브라함의 믿음을 진짜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물어야 할 진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창세기 22장 1절의 첫 번째 부분에 집중해야 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난 후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죠. 우리가 알아야 할 건 그 얼마간의 시간 동안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창세기 21장은 아브라함에 일어난 일을 설명합니다. 간단하게 말해, 아브라함은 더 부자가 되었고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으로 인해 아내 사라가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들을 낳자 웃었습니다. 온몸으로 웃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렇게 태어난 아들에게 이삭이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삭, 웃음이란 뜻입니다.
6
그 누구도 이 긍정적인 웃음이 한 여자와 그녀의 아들에게 비극을 불러오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한 십 년 전 사라는 자신의 여종 하갈을 씨받이로 사용해서 아들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하갈을 자신의 남편과 잠자게 했고 하갈은 임신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사라는 아들을 낳았고, 아브라함은 그 아이에게 이스마엘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스마엘, 하나님은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비극은 사라의 큰 웃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낳은 아들을 가지게 되자, 사라는 이스마엘과 하갈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남편에게 이스마엘과 하갈을 험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두 사람을 떠나보내기로 합니다. 아브라함은 두 사람에게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떠나 광야에서 스스로 살라고 말했습니다. 광야 어디에선가 그냥 죽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은 브엘세바로 이동했고 그곳을 다스리는 아비멜렉과 피콜이란 사람과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모든 게 익숙하고 편안해졌을 때, 아브라함이 무엇을 했는지 아시나요?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그 곳에서 영원하신 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 아브라함은 불레셋 땅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창세기 21:33-34)
7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었다는 건 그가 유목민의 삶에서 농경민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는 걸 뜻합니다. 아브라함이 정착했습니다. 안정적인 삶을 찾으려고 했지만, 고향을 떠난 이유를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의 복이 아닌 하나님의 복을 찾아서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 여행을 그만두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고 느껴지자 더는 여행을 계속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고 난 뒤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8
오늘 함께 묵상한 성경 속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일이 갑자기 꼬이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그럴 때면, 첫 마음을, 첫 결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첫 번째 결심을 잊어버린 것도 모른 채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이야기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아브라함의 행동이 이상적인 믿음이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더욱 깊게, 우리의 첫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과 왜 우리가 그걸 항상 마음속에 새겨야 하는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일이 갑자기 꼬이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에 하나님 앞에서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우리가 잊은 게 무엇인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를 묻고, 조용히 들어야 합니다. 정말 힘겨운 망설임과 좌절 속에 다시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답하십니다. “좀 배고프게, 좀 멍청하게 살아라.”
새기는 기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오늘 당신의 임재로 우리를 이끌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여정을 뒤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이 왜 그리고 어떻게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는지를 묵상했습니다. 당신은 아브라함이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게 하려고 그를 시험하셨습니다. 당신은 아브라함이 당신의 복을 쫓겠다는 첫 번째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도록 돕기 위해 그를 시험하셨습니다. 이를 깨달아 힘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을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원에 관한 교육 (0) | 2017.09.18 |
---|---|
취미가 무엇인가요? (0) | 2017.09.11 |
준비하고, 준비, 또 준비하기 (0) | 2017.08.28 |
신앙, 여행일까? (0) | 2017.08.21 |
2017/08/20 주일 예배 안내지 (0) | 2017.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