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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여행일까?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8. 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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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서다.

 

창세기 12:1~5

(1)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것이다. (3)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덕을 입을 것이다."

 

 

 

1

가지 간단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해야 할지를 놓고 극심하게 걱정해 있으세요? 먹는 , 입는 , 마시는 거에 대한 걱정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며칠 밤낮으로 망설이며 괴로워한 순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갈림길에 다다랐다는 알았습니다. 한쪽 길을, 삶을 바꾸게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되고 두려워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가 있으셨죠?

 

2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은 2005 겨울입니다. 2004 2월에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생은 일반적으로 졸업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거나 안수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담임 전도사로 교회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당시에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목사는 그리 좋은 결정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평범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 우리 모두의 삶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특별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목사가 지켜야 윤리적 책임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이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자존감은 작아졌습니다.

 

3

어느 친구 명이 제가 존경했던 신학대학교 교수님 분이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했습니다. 교수님께 연락한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교수님께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지는 분명합니다. 첫째, 교수님 앞에서 엄청나게 우울한 마음을 끝없이 말했습니다. 둘째, 신세 한탄을 단칼에 끊으신 교수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광유야, 소중한 자네 삶의 시간을 망설이느라 헛되게 버리지 말게. 문제가 생기면 보통 우리는 가지 중에서 가지를 선택하지. 해결하느냐 아니면 도망가느냐. 그런데 말이야. 가지를 선택할 있어. 망설이는 거지. 망설이는 연기하는 거로 보이기도 . 그런데, 그게 아니야. 망설이는 제일 나쁜, 제일 비생산적인 선택이야. 자네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

 

4

바로 순간까지 번도 외국 유학에 대해 생각해 적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대답했습니다. “ 번도 그런 제가 있다고 생각해 적이 없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죠. “아니야, 그건 아니야. 일단 시작하면 그걸로 반을 하는 거야. 그냥 시작해. 그런 후에 그다음에는 할지 있을 거야.” 그렇습니다. 교수님은 삶의 구원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교수님께 유학 가라는 말을 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학생 명에 불과했습니다. 어쨌거나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변했습니다. 이제 알고 있습니다. 결코 2007 이전의 이광유로 돌아갈 없다는 .

 

5

오늘 우리는 창세기 12장을 읽었습니다. 분명하게 말하면, 어떻게 아브람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 여행을 시작했는지에 대해 읽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했듯이, 하나님은 아브람이 75세가 되었을 부르셨습니다. 내년에 부모님은 75세가 됩니다. 분은 이미 저와 , 저희 아들 둘을 만나러 미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를 읽는데,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내년에 분도 아브람이 여행을 하실 있을까? 모국을 떠나 다른 나라, 아마도 미국이겠죠, 미국에 오셔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였습니다. 아들로서, 분이 한국에 머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훨씬 낫다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아브람을 비교했더니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다시금 돌아갈 없는 여행을 떠났을까?

 

4

어떠한 사전예고도 없이 어느 하나님은 갑자기 아브람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덕을 입을 것이다. (창세기 12:1~3)” 성경책에는 이런 뜬금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람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새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그런 새롭게 시작한 삶을 아브람은 어떻게 일구어 갔는지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책에는 간략하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브람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함께 떠났다. 하란을 떠날 , 아브람의 나이는 칠십오 세였다. (창세기 12:4)”

 

5

다시 한번 삶을 뒤돌아보면,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삶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깨달을 있습니다. 확고한 경제력에 무척 집착했지만, 사실 신학 석사 증명서 말고는 가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을 시작할 있는 튼튼한 기반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았지만, 삶이 비참하다고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과 그것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상관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연구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95%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망상이라는 밝혀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라는 교수님의 충고는 뒤통수를 때렸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스스로 만든 상상력이란 감옥 속에서 끌어낸 제가 시도할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깨닫게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벼랑 끝에 있는 밀어 버렸습니다.

 

6

정말 자주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행복하게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글쎄요. 성경책을 차분하게 읽으면, 하나님을 믿는 몸의 목마름이 아닌 영혼의 목마름을 느낄 때라는 알게 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국의 문예 비평가는 말했습니다. “이성이 한계를 만난 지점에서 종교는 시작한다.”. 우리의 이성이 한계를 만나면 우린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어나는지 없게 됩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을 , 그는 극심한 정체성 혼란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인지 아니면 이집트인인지,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수가 없었습니다. 극심한 혼란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을 ,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있습니다.

 

7

아브람이 죽은 2,000년이 지났을 , 히브리서에서 사도 바울은 아브람은 75세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란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불러 장차 그의 몫으로 물려주실 땅을 향하여 떠나라고 하실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것입니다. (히브리서11:8)”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자신의 과거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바울은 믿음에 관해 자신이 생각한 정의도 히브리서에 기록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히브리서11: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보증해 주고 없는 것을 확증해 주는 마음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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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시면, 여러분이 삶의 모든 위해 무작정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분명하게 밝히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삶에 진지하다는 뜻합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는 상대적이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우리가 괜찮다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서, 우리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우리는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신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해야 하나님의 부르심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망설임과 갈등을 가라앉게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벼랑 끝에 있는 여러분을 밀어버립니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힘들고 멍청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생에서 길을 잃어 방황할 ,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있기를 바랍니다.

 

 

새기는 기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오늘도 당신께 나와 예배드릴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브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브람은 75세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지를 곱씹었습니다. 당신을 믿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한다는 알았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 우리가 아브람입니다. 우리 각자 삶의 위에서 방황하고 망설이고 의심하는 이가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이끌고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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