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준비하고, 준비, 또 준비하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8. 28. 10:47

본문

 

아브람, 조카 롯을 구하러 달려가다.

 

 

창세기 14:11~16

(12) 소돔에 살고 있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끌고 가면서 그의 재물도 빼앗았다. (13) 한 사람이 도망쳐 나와서 히브리인 아브람에게 이 일을 알렸다. 아브람은 그 때 아모리인 마므레의 상수리나무가 무성한 곳에 살고 있었다. 마므레는 에스골과 아넬과 동기간으로서, 이들은 아브람과 계약을 맺은 사이였다. (14) 아브람은 자기 골육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러낸 사병 삼백십팔 명을 소집하여 단까지 쫓아갔다.

 

 

1

지난 주일에는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브람은 75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올려오는 깨달음 혹은 바람일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갈림길에 이르면, 우리는 존경하거나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합니다. 그런데, 조언을 들으면서 우리가 깨닫는 건 우리가 듣고 싶었던 조언은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한 확증이라는 사실이죠. 점점 더 많은 조언을 들을수록 우리는 더 빨리 무언가를 결정해서 더는 뒤처지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런 순간은 끝나지 않을 거처럼 오래갑니다.

 

2

기독교인이란 말은 예수님이 택한 삶의 방식을 따르겠다고 결정한 후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정의에서 마지막 부분인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를 우린 지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택한 삶의 방식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결정한 삶의 방식을 확고하게 따르면 사람들은 우리를 꽉 막힌 광신도라 부릅니다. 이런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참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전 우리가 예수님이 택한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생을 얻게 해 주는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에 대해 생각하면 단어 하나가 금방 떠오릅니다. 사랑.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길 좋아합니다. 그걸 듣기도 좋아합니다. 신기한 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사랑의 참된 의미는 쉽게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 신앙이란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최소한 참는 법과 온화해지는 법, 겸손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3

예수님은 당신을 희생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보면 우린 기쁘고 다시 한번 더 예수님의 희생적 삶을 본받아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두 생각과 행동 사이에는 거대한 공백이 있다는 걸 압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아내와 남편 혹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지를 생각해 보시죠. 사랑을 희생과 동일시하고 싶으시죠? 사랑하려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려면 보호하고, 소망하고, 인내함도 필요합니다. 불의와 잘못을 미워하기 또한 필요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이 희생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희생은 사랑의 다양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4

하나님에 대한 신앙 혹은 믿음도 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하나님을 향한 맹목적 복종으로 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복종을 요구한다는 말에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오늘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을 향한 맹목적 복종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다양한 의미 중 하나라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14장을 읽었습니다. 창세기 14장은 아브람이 살던 시대에 부족 왕들 사이에서 일어난 한 전쟁에 대한 아주 복잡한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한 무리의 왕들이 다른 무리의 왕을 무찔렀습니다. 이 전쟁 이야기가 성경책에 담긴 이유는 아브람의 조카 롯이 전쟁이 일어난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이긴 왕들이 전리품을 챙길 때, 그들은 롯과 그의 소유물도 챙겼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롯의 하인 한 명이 탈출하여 아브람에게 왔습니다.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다는 말을 들은 아브람은 즉시 자기 집안에서 태어났고 훈련한 용사 318명을 소집하여 왕들을 쫓아갔습니다. 왕들이 눈에 들어오자 아브람은 전략적으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적절한 시간이 다가오자 아브람은 318명의 용사를 둘로 나누어 그 왕들에게 기습공격을 퍼부어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5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면, 우리는 가지고 있는 걸 포기한 후 망설임 없이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의 포기가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신실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람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와 그가 나이 75세에 떠난 여행을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곱씹으면 다른 이야기를 하나 찾을 수 있습니다.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은 자신 전 재산만 챙긴 게 아니라 용사 318명을 데려갔습니다. 더군다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아브람은 용사들을 훈련시키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유목민의 삶은 지금 우리 시대의 삶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지켜야 할 법도 없었고 사고가 나면 연락할 경찰도 없었죠. 아브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현실 감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고, 이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을 불확실성이란 여행에 던졌습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해야 할 게 무엇인지를 알았고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5

아브람은 영리했습니다. 아닙니다. 교활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가뭄을 피해 이집트로 갔을 때, 그는 아내 사라에게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라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런 속임수로 아브람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습니다. 아내의 미모를 이용하여 자신과 가족을 안전하게 지켰고 더불어 어마어마한 재산도 축적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윤리적 잣대로 볼 때, 아내를 팔아 생명을 보존했고 아내와 재산을 바꾼 아브람의 행동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 속에 담긴 아브람의 현실 감각이 정말 뛰어나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6

아브람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 여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걸 알려줍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확실한 삶의 상황으로 던지시면 아브람처럼 용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이런 불확실한 순간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만치 영리해야 합니다. 역설같이 들린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내일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는 걸 무척 걱정하셨습니다. 고심 끝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건네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 한다. (10:16)” 아브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순결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슬기로웠습니다. 신앙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맹목적인 신앙은 영리함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새기는 기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당신을 예배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여기에 나와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를 차분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하란을 떠난 후 아브람이 살아낸 삶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브람은 무모하게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불확실한 여행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아브람을 도우셨던 것처럼, 하나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루터기에 앉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취미가 무엇인가요?  (0) 2017.09.11
갑자기 일이 묘하게 꼬이면  (0) 2017.09.04
신앙, 여행일까?  (0) 2017.08.21
2017/08/20 주일 예배 안내지  (0) 2017.08.19
2017/08/13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0) 2017.08.1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