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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6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8. 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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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9주: 녹색)




말씀: 출애굽기12:21~36


(31) 파라오는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너도 이스라엘 백성도 어서 내 백성에게서 떠나가거라. 너희가 말하던 대로 가서 야훼를 예배하여라. (32) 너희가 요구한 대로 양도 소도 모두 끌고 가거라. 그리고 나를 위하여 복을 빌어다오."


 

제목: 인정하기 (이광유 목사)


오 년 전 둘째 아들 미누가 태어날 때,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미국에 오셨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아들과 며느리, 첫째 손자 지누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둘째 손자가 태어나면 며느리 산후조리를 위해서 미국에 오셨습니다. 오 년이란 시간적 공백은 길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얼굴에 늘어난 주름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너비는 줄었고, 등뼈는 제법 굽어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왜 오 년 만에 다시 만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밉고 싫은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주가 지난 후 아버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한 달가량 머물며 처와 첫째 아들 지누를 보살펴주셨습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방바닥을 닦고 있는 어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무릎으로 기며 방을 닦던 어머니는 이제 엉덩이로 바닥을 기며 바닥을 닦고 계셨습니다. 시간의 무게는 어머니의 어깨와 등뼈뿐만 아니라 무릎도 짓눌렀던 게 틀림없습니다. 누가 언제 방 청소를 하라고 했냐며 짜증을 부렸습니다. 시간은 이런 제 마음과는 상관없이 유유히 흘렀고 얼마 후 어머니도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를 공항까지 배웅한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제가 어쩜 그렇게 비겁하고 못마땅하게 보이던지요.


제 부모님은 작년에 한 번 더 미국에 오셨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미주특별(현재는 자치)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 절 직접 보고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목사 안수 교육으로 전 연회가 시작하기 이틀 전에 연회가 열리는 볼티모어로 갔고, 안수식 전날 처는 7인승 차를 한 대 빌려 부모님과 아들 둘을 데리고 해당 장소로 찾아왔습니다. 안수식이 끝났고, 함께 목사 안수를 받은 전도사님 가족들이 몰려나와 가족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로운지 아니면 다행인지 함께 목사 안수를 받은 전도사님 중 한 분은 목회자 가족으로 뼈대가 굵기로 유명한 집안 아들이었습니다. 미주특별연회를 인도하고 목사 안수식을 진행한 감독님이 그의 작은 아버지였고 그의 아버지는 한국의 한 중대형 교회 담임 목사님이셨죠. 당연히 안수식을 축하하기 위해 손님도 많이 왔습니다. 모두가 함께 강단에 올라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처가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도 부모님과 함께 사진 찍어요.” 제 부모님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서른 중반이 넘은 나이에 목사가 된 아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우셨는지 싱긋이 웃으며 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왁자지껄한 연회 장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중요한 건 아들의 목사 안수식과 안수복을 입고 있는 목사된 아들뿐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집트 파라오 왕이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이집트에 불어닥친 아홉 가지 재앙에 흔들리긴 했지만, 끝끝내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던 파라오 왕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전 항상 궁금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왜 열 가지 재앙으로, 그것도 계획대로 차근차근히 한 가지씩 실행하여, 이집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망가뜨렸을까?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기에 그려진 하나님은 살벌하고 냉정합니다. 눈 밖에 난 이집트 파라오 왕의 마음을 꺾는데 있어서 눈곱만치의 동정심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한 민족, 이집트 민족은 나쁜 민족이라는 선과 악 이분법적 구도 또한 제 마음을 거북하게 만듭니다. 지난 주일 예배 시간에 함께 생각했듯이 요셉은 아버지 야곱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살아갈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고센이란 땅에서 유목민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더 살기 좋은 이집트 문명 속으로 들어갔고 급속하게 이집트 민족에 동화했습니다.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죠. 오늘의 양식을 안정적으로 얻게 되자 내일, 내년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확실성을 붙잡으려는 이스라엘 민족의 노력은 노예살이로 끝났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 획득의 정당성을 경제 발전으로 확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독재 정치 수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민의 삶과 의식을 완벽하게 개혁하려고 노력했죠. 우리가 기억하는 새마을운동은 그런 개혁 정책 중 하나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끝나면 마음껏 뛰놀던 집 주변 골목길에 아스팔트가 깔리던 때가 생각납니다. 비가 오면 진흙탕으로 변하던 길이 아주 깨끗해졌죠. 그런데, 이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일터를 잃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으신가요? 한국 전통문화는 서구문화에 대한 찬양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재래식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삶의 기반은 기계식 생산 방식의 도입으로 인해 산산히 부셔졌습니다. 살길을 찾아서 살 곳을 찾아서, 확실성을 찾아서,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갔습니다. 급속한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시간 헐값에 일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는 넘쳐났기 때문이죠.


천재지변(天災地變)과 각종 전염병에도 변하지 않던 이집트 파라오 왕의 마음을 끝내 뒤흔들어 꺾은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에 대한 자각입니다. 오염된 물도, 오염된 땅도, 메뚜기 떼의 습격도, 가축 돌림병도, 악성 피부병도, 우박도, 흑암도 아주 잠깐 이집트 파라오 왕의 마음을 흔들 수는 있었지만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고통의 가장 극심한 순간 돌연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이내 원래의 마음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파라오 왕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첫째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왕의 첫째 아들에서부터 교도소에 잡혀 있는 죄수의 첫째 아들까지. 이집트 사람 중 그 누구도 이 죽음의 공포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주 전 장모님과 제 처의 언니 식구가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닷새 간 떠난 미국 동북부 해안가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제 옆에 누운 처는 잠을 자지 못해 뒤척이다 제게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도 어머니, 아버지 왔을 때 이렇게 마음이 쓰라렸어요?” 약간의 침묵이 지난 후 제가 대답했습니다. “, 마음이 참 많이 아팠죠. 꼭 뭔가가 제 마음 한쪽 편을 칼로 잘라내는 거처럼 아팠어요.” 그날 낮에 처는 장모님께 화를 냈습니다.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여 유지하는 능력이 저보다 훨씬 좋은 처를 잘 알고 있는 터라 그 일에 대해 들었을 때, 처도 제가 몇 년 전 경험했던 그 슬픔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여보, 어머니가 너무 많이 늙어버려서 슬프죠? 그건 슬픈 건데, 참 슬픈 건데난 화가 났어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려니 화가 나더라고요.” 그러다 처와 전 한동안 끌어 앉고 엉엉 울었습니다. 늙어가는 제 부모님이 생각나서 전 울었고, 제 처는 늙어버린 장모님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울었습니다.


신앙인의 마음에는 상반된 두 자아가 항상 함께 살아갑니다. 삶이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진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는 이스라엘 민족이 첫 번째 자아라면,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붙잡기 위해 손에 잡히는 건 뭐든 놓치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이집트 민족은 두 번째 자아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거의 이집트 민족입니다. 손에 잡히는 게 마음속에서 꿈꾸는 것보다 더 안정적이고 확실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확실성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확실성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오늘 함께 읽은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월급쟁이는 안정적입니다. 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월급쟁이가 되는 순간 우리는 꿈과 모험심을 접어야 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삶이 시작합니다.


안전과 확실성으로 가득해 보이는 이집트에서의 삶에 균열을 가한 게 죽음입니다. 제 처와 저도 갑자기 늙어버린 부모님 앞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숙명을 대면했습니다. 영원할 거 같았던 우리 삶에 종착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을 대면해야 했고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기에는 과학기술을 무기 삼아 온 세상을 지배했다고 자부하는 우리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다시 한번 진중하게 생각하라는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우리 삶을 주관한다고 주장할지라도 그건 삶의 반쪽일 뿐이라는 걸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삶의 종착지 앞에서 파라오 왕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우리가 파라오 왕입니다. 죽음, 우리의 능력 너머에 있는 이 문제 앞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 파라오 왕은 모세와 아론을 불러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떠남. 이집트 삶으로부터의 떠남입니다. 안정과 확실성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불안정 속에서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를 이끄는 하나님의 섭리를 순간순간 맛보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가 불확실한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기에서 참살이를 위해서는 안전과 확실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열 가지 재앙 전에 당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당신께서 지시한 땅으로 걸어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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