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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주일 예배 말씀 나누기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7. 3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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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8주: 녹색)




말씀: 창세기46:26~34 (이광유 목사)


(33) 이렇게 말씀 드려둘 터이니 파라오께서 부르시어 생업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거든 (34) '선조 대대로 저희는 어려서부터 가축을 치는 목자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십시오. 이렇게 말해야 고센 땅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도대체 목자라면 꺼려서 가까이하지도 않습니다."

 

제목: 선견지명(先見之明)


눈 깜짝할 새란 말 아시죠? 무언가를 하느라 시간이 순식간에 휙 하고 지나갔을 때,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형용사구입니다. 지난주가 제겐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습니다. 예배 안내지에도 적었지만, 장모님과 처의 언니 식구가 한국에서 우리 집에 왔습니다. 미국으로 날아오는 비행기 표를 마련하기 위해 온 가족은 한국에서 허리띠를 조르며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장모님은 막내딸을 5년 만에 보기 위해, 처의 언니와 형부는 장모님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조카 두 명은 텔레비전에서 보기만 했던 미국이란 나라를 실제로 보고 느끼기 위해 홍콩을 거쳐 뉴저지에 도착하는 18시간 비행을 참으며 뉴저지 뉴어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처와 저는 넉 달 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미국 어디로 여행을 갈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저희가 내린 결론은 미국 동북부 지역 해안가 중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곳을 찾아 다니는 여행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 때 함께 나눈 출出일상이란 제목의 설교는 지난 주 월요일 새벽부터 금요일 밤까지 이어진 가족 여행을 염두에 둔 채 준비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제 마음은 조금 무거웠습니다. 한국에 사는 가족과 언제 다시 이렇게 함께 미국에서 여행을 떠날지 알 수 없었기에 처와 함께 짠 가족 여행 계획은 빡빡했습니다. 보통 우리 가족끼리 여행가면 처와 번갈아 운전했지만, 이번 여행은 처의 언니와 매형을 급히 운전사로 공수했습니다. 사박 오일  일정에 다섯 개 주를 오가는 여행이었기에 처와 저가 닷새 동안 쉬지 않고 운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씩 미국에 온 적은 있지만, 국제운전면허증을 가지고 미국에서 차를 운전해 본 적은 없는 두 분이 운전한다는 사실이 염려스러웠습니다. 미국에서 고속도로로 한 주에서 다른 주로 옮겨가 본 이는 모두 한국보다 오십 배 큰 나라, 미국의 땅덩이가 얼마나 넓고 광활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메인 주의 아카디아 국립공원. 매세츄세스의 하버드 대학교와 캐이프 카드. 로드 아일랜드의 뉴포트. 이 모든 곳을 사박 오일에 들르기 위해서는 첫째 날 무조건 아카디아 국립공원 근처까지 차로 열 두 시간 달려 올라가야했습니다. 그게 또 절 긴장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모두가 안전하게 돌아와야 한다는 압박감이 제 마음을 눌렀습니다.


사실 이런 압박감은 즐거운 압박감입니다. 가족과 함께 좋은 곳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껏 떠들고 웃을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죠. 여행을 위해 제 마음 한편에 밀어둔 진짜 염려는 조만간에 저 가정에 찾아올 변화였습니다. 지난 오 년간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며 일했던 한 장로교회에서의 일을 오늘 끝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교회 내 재정난이 계속해서 제 마음을 힘들게 했거든요. 매 주일 주보에 기재된 지난 주일 헌금을 머릿속으로 간단하게 계산하면 교회 운영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올 초에 담임 목사님께 인제 그만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교회에 이롭겠냐고 물었더니 목사님은 아직은 함께 갈 수 있으니 함께 가자고 말씀하셨죠. 육 개월 간의 갈등 후 사임 의사를 밝혔고, 오늘 정들었던 아이들과 성도님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영어 목회 담당 부목사로 한 미국연합감리교회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장로교회에서의 사임과 미국연합감리교회에로의 부임을 결정하는 과정에 그루터기교회 설립을 도와주셨던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제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 교회 관리 업무에 대해 조언해 주셨습니다. , 맞습니다. 그루터기 감리교회의 존속 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설립 후 사 년이 지났지만, 자체 교회의 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루터기교회 존립 여부에 대해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목사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사박 오일 일정의 여행을 소화하는 중에 성경책을 꺼내 읽을 시간은 없었습니다. 저녁에 숙소에 도착하면 여행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간 햇반과 컵라면, 몇 가지 통조림으로 간단하지만 풍성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모두 한 방에 모여 맛있게 먹은 후 다시 각자의 숙소로 흩어져 잠자리에 들기 바빴습니다. 하염없이 앞과 뒤로만 뻗어있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를 운전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오 년간 함께 생활했던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설교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렇게 변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때에 이번 주일 그루터기 감리교회 예배 설교는 어떤 게 좋을까?’ 전 진중하고 차분하게 집중한 생각은 기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 진심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집중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기도하는 이에 대해, 우리가 피하고 싶은 것에 대해 집중합니다.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떠드는 기도 소리에서 열정을 들을 수는 있지만,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게 이 집중력의 결여 때문이 아닐까 하고 전 생각합니다.


문득 요셉을 만나기 위해 이집트로 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난 야곱이 생각났습니다. 젊은 시절 더 큰 집을 가지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소유하기 위해, 더 좋은 차를 타기 위해,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야망에 휩싸인 채 아버지와 어머니, 형을 속인 후 집을 떠난 배짱 두둑한 야곱은 늙어서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음속에 품은 야망과 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 장모님도 그러셨습니다. 십 년 전 가족들이 조촐하게 마련한 생신 잔치에 초대받은 제가 처음 만난 장모님은 초롱초롱한 눈에 근엄한 인상을 준 중년의 아름다운 여인이셨습니다. 십 년이 지나 미국에서 다시 만난 장모님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꼿꼿한 등뼈는 그대로셨지만 제 처를 낳았을 때, 시댁 식구들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고, 장모님은 불편한 맘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 부족한 산후조리 때문에 약해진 장모님의 왼쪽 무릎은 세월과 함께 악화하여 장모님의 힘찬 걸음을 빼앗아갔습니다.


로드 아일랜드 뉴포트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출발하여 코네티컷을 지나는데 마침 일몰 때가 되었습니다. 한 다리를 지나는데, 눈앞에서 입이 쩍 벌어지는 일몰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한 시간 후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을 걸어가는데 장모님이 그 반짝이는 눈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서방 덕분에 난 이번 여행이 너무 즐거웠네. 네 칠십 평생에 오늘 같은 그런 일몰은 처음 봤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귀염둥이 아들 요셉을, 그것도 이집트 국무총리가 되어 자신을 이집트로 초대한 요셉을 직접 만난 야곱이 말했습니다. “마침내 네 얼굴을 이렇게 보다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네가 살아 있었구나!” 몸은 늙었지만, 야곱의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한 해 한 해 몸이 달라지지만 제 장모님의 마음은 십 년 전과 같았습니다. 요셉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동생 베냐민을 직접 본 후 솟구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방 안에 들어가 엉엉 울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요셉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었죠. 마찬가지로 어느덧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인이 된 아버지 야곱을 다시 만난 요셉은 한참을 붙잡고 운 후 평정심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아버지와 형제들의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계획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올라가 파라오께 이렇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던 형제와 아버지 집안 식구들이 왔습니다. 본디 가축을 치던 목자들이어서 소와 양과 모든 재산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려둘 터이니 파라오께서 부르시어 생업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거든 '선조 대대로 저희는 어려서부터 가축을 치는 목자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십시오. 이렇게 말해야 고센 땅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도대체 목자라면 꺼려서 가까이하지도 않습니다. (창세기 46:31~34) "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찾아 떠나는 신앙 여행을 복을 찾는 여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복은 돈과 명예, 권력이었죠. 이 세 가지를 모두 다 손에 움켜쥐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명한 땅이 어디인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돈과 명예,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게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맺은 관계에서 만드는 화해와 평화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의 아들 야곱은 신앙 여행은 마음속 욕망과 갈등을 비우고 또 비워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가득 차게 하는 훈련이란 걸 한평생에 거쳐 깨달았습니다. 그의 아들 요셉은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신앙 여행은 우리의 삶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에게로 계속해서 이어져가야 한다고. 요셉은 자신이 살아가야만 하는 세계, 이집트 문명의 한계를 자각했기에 아버지와 형제, 그들의 후손이 그때까지 지켜온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유지해 갈 수 있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일을, 내년을, 십 년 후를, 백 년 후를 계획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신앙 여정에 오른 우리 또한 내일을, 내년을, 십 년 후를, 백 년 후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고맙습니다. 돈과 명예, 권력이 좋고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맛보다는 화해와 평화란 걸, 그보다 더 소중한 게 우리 맘속을 가득 채운 욕망을 비우고 또 비워 얻어내는 평안함이란 걸, 그보다 더 소중한 게 이 평안함이 대대손손 이어져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거란 걸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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