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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 (CODA: Child of Deaf Adults)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2. 3.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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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 (CODA: Child of Deaf Adult: 2021)

 

엄마(재키 Jackie)는 딸 루비(Ruby)가 태어났을 때, 아빠 프랭크(Frank)와 오빠 리오(Leo), 자기처럼 청각장애인이길 기도했다. 모두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정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딸이 생긴다는 건 그 아이와 연결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딸아이는 정상이었다.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루비 로시(Ruby Rossi)는 태어나 말을 하면서부터 로시 집안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영화는 청각장애인 부모의 비장애인 딸 루비가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여준다.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의 어촌 마을 글루체스터(Gloucester)에 사는 루비는 아빠랑 오빠 리오와 함께 새벽 3시에 일어나 바다로 나가 잡아온 물고기를 수산시장에 팔아서 번 돈으로 살아왔다. 새벽 3시에 자명종 시계 소리를 듣고 일어난 루비가 제일 먼저 하는 건 웅장한 저음이 주를 이루는 힙합(Hip-Hop)을 틀어서 소리의 울림으로 아빠를 깨우는 일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살이의 삶이 인생이란 걸 어릴 적부터 몸으로 익힌 루비는 남들과는 다른  삶이 싫었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는다. 새벽 바다에 던진 그물을 아침 햇살이 수평선을 찢어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하면 집어 올려 그물에 잡힌 물고기를 얼음통에 옮겨 담는다. 끝없이 밀려오는 바다가 배 철판을 때리면서 만드는 소음, 낡을 데로 낡은 배의 엔진이 토해내는 소음을 잊기 위해서였을까? 루비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일했다. 배가 바다로 나갈 수 있을 때면 어김없이 불렀던 노래. 루비의 노랫소리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루비의 노랫소리에는 표현하고 싶은 걸 모두 표현할 수 없는 한계에 대한 몸 시린 깨달음이 배어 있었다. 루비가 한국인이었다면 아름다우면서도 묘하게 한 서린 목소리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새벽 3시에 바다에 나가 잡은 물고기를 수산시장에 팔고 나면 루비는 "정상적인" 고등학교 3학년의 삶을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달려간 루비는 수업시간 졸기 일쑤다. 그 누가 알까? 수업 중 루비가 번번이 단잠에 빠지는 이유는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게 아니라 매일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느라 학교에 오면 이미 녹초가 되어 있다는 걸. 말하는 걸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한 루비를 사람들은 루비가 하는 말을 들는 순간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아이라고 정의했다. 음식점에서 5살짜리 소녀가 청각장애인 가족을 대신해서 술과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 루비는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혼자 지내기 시작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와 오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답답했다. 말할 수 있는 이와 말할 수 없는 이가 함께 살아가는 삶은 마음 한편에 밑 빠진 독을 하나 둔 채로 살아가는 일이다. 루비에게 밑 빠진 독을 잠시나마 메울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는 노래였다. 틈만 나면 노래를 들었고, 그렇게 알게 된 좋은 노래는 무작정 따라 불렀다.

 

그런 루비의 특징 있는 목소리를 단 번에 알아챈 사람이 나타났다. 루비가 다니는 고등학교 음악 선생 벌나르도 빌라로보스(Bernardo Villalobos)는 버클리 음악대학교(Berklee College of Music)를 89년에 졸업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남학생 마일즈(Miles)가 학교 합창단에 지원하는 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합창단에 지원한 루비는 연습 첫날 벌나르도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 앞에서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의 말투를 비웃었던 친구들이 자신이 부르는 노래 또한 비웃을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벌나르도 선생님은 루비의 특징 있는 목소리의 가치를 알아봤고 조금씩 조금씩 루비가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몸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버클리 음악대학교로 떠나는 루비가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루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빠 프랭크와 엄마 재키는 들리지 않는 루비의 노랫소리를 듣기 위해 애쓰듯이 서서히 청각장애인이란 자의식이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루비가 승선하지 않은 날 해양경찰에게 붙잡혀 박탈당한 어업 면허증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는 루비가 항시 배에 있어야 했다. 가족을 위해 루비는 버클리 음악대학교 지원자 실기 시험을 포기했다. 자기와는 달리 정상인으로 태어나 자란 루비의 미래를 생각한 프랭크는 실기 시험이 있는 날 아침 루비를 데리고 시험장으로 달려갔다. 재키와 리오 역시 동승했다. 시험장에 들어간 루비가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지가 궁금했던 세 사람은 주변 사람이 눈치채지 않게 조심하며 시험장으로 사용 중인 극장 2층 객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노래 부르기 시험은 루비를 주눅 들게 했다. 부를 노래의 악보도 가져오지 않았고,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벌나르도 선생님이 나타났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심사위원에게 소개하며 루비를 위해 피아노를 쳐도 되는지를 조심스레 물었다. 벌나르도 선생님의 연주에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연습한 대로 목소리라 터져 나오질 않는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일 때 2층 객석에 앉아 있는 아빠와 엄마, 오빠가 눈에 들어왔다.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이 자기가 부르는 노래를 듣기 위해 은밀하게 2층 객석으로 숨어든 거다. 그때 루비는 결심했다. 노래를 부를 거고, 그 노래를 가족을 위한 거고, 가족을 위해 가사를 수화로 표현해야 한다고. 아무런 수상경력도 없던 루비를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던 심사위원이 자세를 가다듬은 건 루비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부모님을 부끄럽게 생각한 경험이 있는 이는 루비의 마음에 순식간에 빨려 든다. 부모님을 부끄럽게 생각한 걸 후회한 경험이 있는 이는 루비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확인한 순간 부끄러워진다. 가족의 삶과 자기의 삶 사이에 갈등해 본 적이 있는 이는 버클리 음악대학을 향해 떠나는 루비의 모습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자기를 위함은 결국 가족의 위함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더 절실하게 끌려드는 운명의 거미줄. 가족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2022년 3월 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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