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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밖으로 Inside Out (2015)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2. 2. 27.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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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밖으로 Inside Out (2015)

 

"아빠, 이번 금요일에는 <인사이드 아웃> 보는 거 맞죠?" 둘째 아들 미누가 물었다.

"그럼, 이번 금요일에는 <인사이드 아웃> 다 같이 재밌게 보자. 아빠는 아직 못 봤는데, 엄마랑 너네가 두 번 봐도 좋다고 하니, 재밌게 한 번 보자."

 

작년부터 매주 금요일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 앉아 맛있는 과자랑 과일, 어린이 음료와 어른 전용 음료를 다과상에 차려 놓고 먹고 마시며 즐겁게 볼 만한 영화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급기야 처와 난 지금까지 우리가 인상 깊게 봤기에 보관해둔 영화를 하나 둘 꺼내 아들 둘과 함께 다시 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안에서 밖으로 Inside Out>란 영화가 그 첫 번째 영화였다. 흥행한 영화였지만 영문을 알 수 없게도 나는 보지 않았고, 큰 누나와 우리 두 아들, 아내가 극찬했던 영화.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 Yuval Noah Harari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교훈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2018)>이란 제목의 책 서두에서 21세기 새로운 인간상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들었던 만화영화가 <안에서 밖으로>였다.

 

인간이 만든 모든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다. 의식의 흐름이란 기법으로 소설을 쓴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도 인간의 무의식을 주인공으로 삼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In Search of Lost Time (1913)>란 도무지 제정신으로는 끝까지 읽기 힘든 장편 소설을 썼다. 만화영화 <안에서 밖으로>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내 머릿속에 맴돈 질문이다.

 

미네소타 Minnesota에서 태어나 11살까지 자랐지만 아빠의 새직장으로 인해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로 이사 간 소녀 릴리 Riley일까? 언뜻 봐서는 당연히 릴리가 주인공이다. 모든 게 익숙했던 미네소타에서 모든 게 낯선 샌 프란시스코로 이사한 후 릴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정신적, 신체적 충격은 릴리에게서 낯선 자기를 대면하게 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내적 변화 과정을 이끄는 건 묘하게도 릴리가 아니다. 릴리의 말과 행동, 감정은 릴리의 뇌 속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 neurotransmitters이 수많은 뇌세포를 연결하여 상호작용을 유발할 때 발생하는 결과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만화영화 속 주인공은 릴리가 아니라 릴리라는 아이를 만든 릴리의 뇌 속 감정 체계란 말인가?

 

릴리의 감정 체계가 주인공이라고 가정하면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난다. 릴리의 감정 체계는 기쁨(포흘러 Poehler), 슬픔(스미스 Smith), 공포(헤이더 Hader), 분노(블랙 Black), 혐오(캘링 Kalling)라는 인간의 다섯 가지 고유한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릴리의 감정 체계가 <안에서 밖으로>의 주인공이라면 다섯 가지 감정 모두가 주인공일까? 그중의 한 감정이 주인공이고 나머지 네 가지 감정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들러리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기쁨이 포흘러가 주인공 같다. 네 가지 다른 감정을 전두 지휘하는 이가 포흘러이고, 네 가지 다른 감정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도 제일 먼저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또한 포흘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을 기쁨 되게 하는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과 공포, 분노, 혐오의 연합 작용이다. 그렇다면 릴리의 뇌 속 감정체계가 주인공이다. 기쁨과 슬픔, 공포와 분노, 혐오, 이 다섯 가지 감정의 연합관계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옆으로 제치기가 쉽지 않다.

 

다섯 가지 감정의 연합 작용이 릴리의 감정, 말과 행동을 통제하고 조정하지만, 이 다섯 가지 감정은 릴리가 11년간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기억과 그 기억이 릴리의 몸과 마음에 남긴 인상 위에서만 살아 움직인다. 기억 소실은 감정 소실로 이어지고, 감정 소실은 릴리의 정체성 붕괴 현상으로 다시 이어진다. 그렇다면, <안에서 밖으로>의 진짜 주인공은 릴리의 기억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릴리의 기억은 핵심 기억을 중심으로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누어진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핵심" 요점 정리에 총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몸과 마음에 가득한 나에게는 릴리의 핵심 기억이 주인공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릴리의 핵심 기억은 릴리의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경험이 릴리의 몸과 마음에 남긴 인상, 릴리의 몸과 마음에 남긴 인상이 릴리의 마음에 일으킨 다섯 가지 감정의 상호작용에 따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이 남긴 인상과 자극이 사라진 기억을 다시 자극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세워지거나 새로운 기억을 덧붙이는 확장 공사도 순식간에 이루어 낸다. 그렇다면 도대체 만화영화 <안에서 밖으로>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영화가 <안에서 밖으로>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당당하게 지구를 장난감 가지고 놀듯 만지작거리는 우리는 아직 하루살이의 뇌 구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살이의 뇌 구조 중 우리가 제대로 파악한 양은 0.1%에도 못 미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간은 인간에 관해 알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 델포이 아폴론 신전 앞마당에 새겨져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철학 명제 “너 자신을 알라.”는 오늘도 풀리지 않은 숙제로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우리는 정녕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먼지바람에 불구한 존재일까? <안에서 밖으로>로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냐는 무척이나 무거운 철학적 명제에 21세기 최첨단 뇌과학을 사용하여 대답해 보려고 무척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만화영화이다.

 

2022년 2월 26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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