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오브라는 한 남자 A Man Called Ove (2015)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2. 2. 27. 02:28

본문

A Man Called Ove (2015)

 

오랜만에 영어 자막 처리된 영화를 봤다. 아들 지누랑 같이 봤다. 10살, 초등학교 4학년인 지누는 열심히 영화 장면과 장면 사이에 생략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빠, 왜 그런 거여요?"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그런 거지." "아하!" 감탄사 한 번 제대로 외친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 늙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일상은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하다. 왜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쩌다 저렇게 몹쓸 늙은이가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아내를 잃었기 때문인가? 매일 그는 아내의 묘소를 찾아가 대답할 수 없는 묘비를 향해 말한다.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은 한결같다. "잠깐만 기다려. 이것만 끝내고 당신한테 갈 테니까."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한다. 천장에 줄을 달아 목을 매어 죽으려 했다. 아쉽게도 줄이 그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해 끊어졌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차 안에 들어오도록 한 후 질식사를 꿈꾼다. 누군가 차고 문을 너무 힘차게 두들겨서 죽을 수 없었다. 엽총을 입안에 넣고 방아쇠를 담기려 했다. 역시나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겨 죽을 수 없었다. 참 죽기 힘들다. 그래서, 매일 아내에게 찾아가 하소연한다. 세상은 변해서 예전 같지 않고, 사람들 또한 점점 이상해져 간다고.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옛날 일이 생각났다. 소년 시절 일찍 어머니를 여읜 그에게 아버지는 참 큰 사람이었다. 철도청 직원이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제법 좋은 성적표를 기분 좋게 보여드린 날. 아버지는 성적표를 동료에게 부려주려다 달려오는 기차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세상은 외로웠고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 했다.

 

재개발 명령이 내린 지역에 있던 집은 관청 직원이 나와 철거 명령을 내렸다. 며칠 밤낮을 새워 집 외부를 현대식으로 바꿨다. 그런 후 얼마 못 가 이웃집에 불이 났고 바람에 날려온 불씨는 집을 잿더미만 남기고 다 태워버렸다. 집이 없어서 기차에서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깨고 나니 한 여인이 앞에 앉아 있었다. 승무원이 객실 문을 열고 기차표를 확인하려 했다. 기차표도 없었고, 기차표를 살 돈도 없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 여인이 기차표를 대신 내줬다. 몇 주를 기다려 그 여인에게 기차푯값을 돌려주려 했고, 둘은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는 여인의 말을 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오브 할아버지 마을에 한 가정이 새로 이사 왔다. 딸이 둘에 배 속에 아기가 있는 스웨덴 남성과 시리아 이민 여성이 꾸린 가정이다. 시리아 이민 여성은 오브 할아버지를 이전부터 알고 있던 할아버지처럼 대한다. 오브 할아버지는 짜증났다. 그런데, 그 짜증은 임신한 아내가 함께 떠났던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오던 길, 타고 있던 관광버스가 절벽으로 떨어져 죽은 날에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오브 할아버지. 기차를 다시 탈 수 없었다. 자신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자신'이란 동굴에서 나오라고 다가와 인사를 하거나, 도움을 구하거나, 아는 체하면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그런 그에게 시리아 난민 여성은 여전히 자신을 신경 쓰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오브 할아버지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이 만든 동굴에서 벗어났다. 죽기 전날 시리아 난민 여성의 첫째 딸을 자동차 조수석에 태우고 자동차로 나들이하던 중 오브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게 사는 거야." 그리고, 그날 밤 평균 이상인 할아버지의 심장은 움직임을 멈췄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스웨덴이란 나라에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운 영화였을까? 감독은 극적 요소를 적절하게 통제했고,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묘한 웃음과 해학을 끄집어냈다. 문득 오브 할아버지 속에서 나 자신을 봤다. 내 처 이현민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랑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영화 속에 있었다. 말수가 적었고, 묵묵했고, 조금은 차가웠지만, 따뜻한 마음과 속이 깊은 오브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 속에서 나를 보았고, 내 아버지를 보았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