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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얼굴 앞에서 (2021)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2. 1. 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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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얼굴 앞에서 (2021)

고층 아파트 창문 아래로 지극히 평범한 도시의 한 자락을 차지한 도로가 보인다. 차가 달려가고 건물에 들어 있는 상점 간판도 눈에 들어온다. 잠시 후 카메라가 고개를 들자 정면에 위엄 있게 서 있는 거대한 고층 아파트가 한순간 숨소리를 고르게 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싶지만 촘촘하게 창문을 가득 메운 아파트는 파란 하늘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카메라는 창문으로부터 한 발짝 두 발짝 물러나 아파트 건물 한 벽에 매달린 한 집의 방 하나를 드려다 본다. 한 여인이 다른 여인이 잠든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다. 말없이 잠든 여인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 여인은 한 숨을 내쉬며 안락의자에 기댄다. 잠든 여인을 숨죽이고 바라보던 여인이 거실로 나왔나 보다. 카메라는 거실 의자에 누운 그녀를 드려다 본다. 양손을 아랫배에 깍지 낀 채 얹은 후 그녀는 고요히 눈을 감고 마음으로 무언가를 읊조린다.

 

"내 얼굴 앞 모든 것이 다 은총입니다. 내일은 없습니다.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고 다만 지금, 이 순간만이 천국입니다.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상옥(이혜영)은 길어봤자 6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후 불쑥 동생 정옥(조윤희)을 찾아왔다. 미국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연예인으로 생활할 때 남긴 작품을 본 영화감독 한 명이 상옥을 꼭 만나고 싶다는 소식을 전했기에 그 감독도 한 번 만나볼 계획이었다. 상옥이 왜 불현듯 한국에 나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상옥의 낯설면서 이상하지만, 괜히 아련함을 자아내는 그녀의 대사와 몸짓과 표정을 차분하게 지켜봐야 한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났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상옥과 정옥. 그래도 둘은 같은 살과 피를 나눈 자매였기에 두서없는 대화를 서로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이 편안함과... 고통을 주지 않으셔서.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잘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감독을 만나기로 한 날 아침 정옥은 언니를 데리고 강과 산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 절경을 상품화한 야외 커피 가게로 데려간다. 임박한 죽음을 하루하루 주시하며 사는 상옥이 한국을 찾았을 때는 봄이 겨울로부터 독립하는 시기였다.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 지어진 삶을 받아들이기 위한 한국 여행에서 마주친 세상은 냉정하면서도 매섭게 아름다웠다. 삶의 모든 요소가 얼어붙어가는 겨울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상옥 주변에는 초록빛만 가득했고, 언니의 갑작스러운 한국 방문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정옥은 언니에게 한국에 나와 같이 살자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정옥은 언니가 자기보다는 훨씬 경제적으로 나은 삶을 살아왔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동생에게 상옥은 고단하고 고독한 미국살이를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었고 한 번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하면 어디로 어디까지 흘러가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류 구멍가게를 했다고 말했지만, 동생은 술집으로 오해한다. 이를 수정해 주고 싶었지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술병을 파는 가게나 술을 파는 가게나 한국 사람의 선입견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자기가 살아온 삶은, 잊고 싶은 삶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얼마나 지속할지 알 수 없는 지금. 지금에만 매달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상옥이 다른 이를 대할 때 보여주는 한 박자 혹은 두 박자 늦은 반응은 현실에,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집중하려는 그녀의 다짐과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무슨 말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래도 지금에만 집중하고 싶은 그녀만의 발악이었다. 

 

"감사합니다. 이 지갑을 가져다준 그 마음을 곱게 받습니다. 언제나 그런 마음을 받을 자격이 있는 마음이게 하소서. 그리고 그 만남에 가서도 항상 깨어있게 하소서. 그리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카가 선물로 준 지갑. 상옥은 그리 기뻐하는 거 같지 않다. 지갑이란 돈을 넣어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지만 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선물이다. 상옥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영화감독의 일방적인 약속 장소와 시간 변경에도 상옥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새롭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 있었던 이태원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소녀의 이름과 나이를 물은 후 상옥은 이내 양손을 벌려 어린아이를 안아준다. 그녀가 그 집에 살았을 때가 아마 여섯 살 소녀와 비슷한 나이였을까? 아마도... 상옥은 여섯 살 소녀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을 거 같다. 자기가 택한 삶의 궤적을 따라 살 수 있는 아이가 되게 해 주소서. 아마도 그렇게 바라고 기도했을 거 같다.

 

"맘 속의 기억들이 너무 무겁습니다.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전 이렇게 안 살 겁니다. 이젠 제 얼굴 앞을 보게 하소서. 제 얼굴 앞을..."

상옥이 한국을 방문한 진짜 이유를 이야기 한 이는 동생 정옥이 아니라 처음 만나 술자리를 나눈 몇 살 남짓 어려 보이는 영화감독이었다. 인간은 이방인에게 더욱 솔직할 수밖에 없다. 관계란 우리 삶과 다른 이의 삶이 얽히고설킴에서 만들어지기에 얽히고설키기 위해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 우리의 말과 행동, 생각을 수정해야 한다. 수정은 관계를 위한 희생적 행위이지만 희생적 행위는 어느 정도의 거짓과 기만 없이는 가능할 수 없다. 철저한 타자였던 영화감독은 자기가 어린 시절부터 흠모했던 여인의 마음을 잠깐이나마 따뜻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에 그 여인의 속절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삶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타인이었기에 누릴 수 있는 특혜와 선물이었다. 특혜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그가 꺼내 든 건 몇 시간 동안 마신 술기운이 강화시킨 성욕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내놓은 단편 영화 촬영 제안이었다. 하루가 지난 후 제정신을 되찾은 그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꼬리'를 감추고 상옥에게서 사라진다.

 

일상 속에 숨겨진 비일상을 가능한 모든 미사와 수식어구를 제거한 채 영상에 담아내는 홍상수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 날카롭게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몇 사람 되지 않는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주인공임을 영화는 가능한 한 드러내길 원했다. 길 가다 스쳐 지나가는 행인이 건네는 어색한 대사는 이제 그만 끝내고 화면 밖으로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자아내지만 관객은 영화 속 주인공이 대화를 끝내고 자기가 선택한 길을 찾아 걸어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상옥에게 지갑을 선물하고 서둘러 떡볶이 가게로 돌아가는 조카 정원이가 길모퉁이를 돌아 화면 밖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홍상수 감독은 정원이를 향한 시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또한 그의 인생에서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 얼굴 앞에서>란 제목을 달았을까? 두려움과 외로움, 고독함으로 가득한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공임을 알 수 있는 순간은 우리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다른 이가 우리를 바라봐 줄 때다. 다른 이의 눈에 비친 우리, 다른 이가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 우리를 지켜볼 때만 다른 이에게 은총일 수가 있다. 비록 스쳐 지나가는 만남일지라도 우리네 삶을 삶으로 채색하는 만남 하나하나가 은총일 수 있기를. 그 은총이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기를. 

 

그런데, 상옥은 대체 누구를 향해 기도했을까?

 

2022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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