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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0. 12. 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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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oram, King of Judah

역대하 21:12-15

이때 예언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버지 여호사밧이나 유다의 아사 왕을 본받지 않고 이스라엘 왕들의 악한 행실을 본받아 아합의 집안 사람들처럼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에게 우상을 섬기게 하였으며 또 너보다 선한 너의 동생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제 네 백성과 네 처자들과 네가 소유한 모든 것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겠다. 그리고 너는 창자에 고질병이 생겨 고생할 것이며 그 병은 악화되어 결국 네 창자가 빠져나오고 말 것이다.'"

 

 

1
오늘 이 새벽에 함께 읽은 역대하 21장 12-15절은 선지자 엘리야가 유다 왕국의 다섯 번째 왕이었던 여호람에게 한 저주입니다. 여호람 왕은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주민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도록 유혹했을 뿐만 형제를 모두 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를 가만히 둘 수 없게 되어 여호람 왕의 가족을 모두 죽게 하고, 여호람 왕은 창자에 병이 들어 창자가 몸에서 빠져나오는 고통을 느끼며 죽게 될 거라고 선지자 엘리야가 예언했습니다.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격언에 기대면 여호람 왕에게 떨어진 하나님의 저주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지만, 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한 왕의 삶이 이리도 처참하게 끝이 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2
성경책이 오묘한 책이라는 사실은 모두 다 잘 알고 계시죠? 그럼, 제가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왜 성경책을 오묘한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엇이 성경책을 다른 책과 구별되게 만들까요? 그건 바로 역사를, 곧 인간 삶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에 성경책은 오묘한 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감정에 따라 여기저기 편 가리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되는 인간의 편협함을 어떻게든 넘어서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썼기 때문에 성경책은 오묘한 책이 되었습니다. 수천 년 간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하고자 하신 말씀을 제한된 공간에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 옮기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쓴 글이라고 고백합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성경책을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관한, 우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성경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실패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역대기는 가장 많은 이의 실패를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 왕국의 왕들이 범한 실패를 있는 그대로 적어 놓았습니다. 

  

3
은감불원(殷鑑不遠)이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은나라의 거울은 먼데 있지 않다는 말인데요. 옛날 중국 대륙의 한 나라였던 은나라의 주왕은 원래 현명하고 사리가 밝은 왕이었지만, 유소씨 정벌 직후 얻게 된 미인 달기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어 노는 데만 신경 썼고, 이를 걱정하는 신하가 간하면 인정사정없이 그를 극형에 처했지요. 주왕을 향해 간하는 신하가 사라진 후 얼마 못가 은나라 또한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타인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삶을 잘 꾸려나가야 한다는 사자성어 은감불원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역대기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의 잘못을 차분하게 곱씹어서, 살다면서 어차피 할 수밖에 없는 후회를 최소화하면서 살아가자가 역대기를 쓰고, 수정하고, 보완한 수많은 기자의 바람일 겁니다. 

  

4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은 첫째 아들인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지만, 여호람의 남동생 6명에게는 두둑한 재물과 함께 견고한 성읍을 물려주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첫째 아들에게는 왕위를 물려주면서 다른 아들에게는 군사 요새를 물려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여호람이 왕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행한 일에서 알 수 있습니다. 왕이 된 여호람은 남동생 여섯 명과 고위급 관료를 숙청했습니다. 여호람이 왕이 되었을 때 나이가 32세인데요. 한 남자의 인생 주기를 생각할 때, 32세는 삶에서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모함만이 아니라 지략 또한 필요하다는 걸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형제와 아버지 여호사밧에게 충성했던 신하를 숙청한 여호람에게서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왕으로 머물고 싶은 그의 욕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절대 왕권을 확립한 여호람 왕이 이제 견제해야 할 상대는 같은 민족이지만 원수지간으로 지내는 이스라엘 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왕국의 일곱 번째 왕이었던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이스라엘 왕국과 정략결혼을 맺습니다. 역대기를 한 번이라도 차분하게 읽어보신 분은 아합이란 이름을 기억할 겁니다. 다른 왕의 이름은 잊을 수 있더라도 아합이란 이름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이스라엘 왕국에 처음으로 바알 신을 소개한 이가 아합 왕이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역대기를 쓴 기자는 왕의 잘못된 행적을 "아무기 왕의 삶은 아합 왕의 삶을 따랐더라."고 간단하게 요약하기 때문입니다. 아합 왕의 딸이 여호람 왕에게 올 때는 당연히 그동안 살았던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가지고 옵니다. 이로써 여호람 왕은 자연스레 바알을 신으로 모시는 이방 종교에 노출됩니다. 힘과 패기와 안정까지 갖춘 왕이 그다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세력 확장입니다. 여호람 왕은 이삭의 쌍둥이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 에서의 후손이 독립을 선언한 후 세운 에돔이란 나라에 쳐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흘러가질 않았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남의 집은 자기 뜻대로 휘어잡을 수 없었던 거죠. 늦은 밤 기습 공격을 감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에돔 민족에게 쫓겨 가까스로 살아남아 집으로 도망쳐 오게 됩니다.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해왔던 여호람 왕에게는 아마도 난생처음 경험한 진짜 세상이었지요. 하지만, 여호람 왕은 난생처음 경험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 한 걸음 더 내딛기를 거부했습니다. 대신 유다 산악 지대 곳곳에 산당을 세워 유다 왕국에 사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닌 바알 신을 숭배하도록 유도했고, 자기 또한 바알 신을 예배했습니다.  

  

5
여기에서 한 가지 신기한 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 신을 섬긴 여호람 왕과 이스라엘 민족의 행동을 역대기 기자는 음행(淫行, fornication)이라고 정의했다는 사실입니다. '음행'이란 단어는 '음란한 짓을 하다.'라는 말인데,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행동을 '음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가진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고, 음행보다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행동인 매음(賣淫)이 이 맥락에서 더 적절한 단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매음 혹은 매춘하는 이의 성품이 폄하하여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제대로 살지는 않고, 귀한 몸을 망치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갈까? 하지만, 역대기 기자가 매음(賣淫)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걸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귀한 몸까지 함부로 팔아 버리는 욕망의 극단적 현상을 염두에 두고 역대기 기자는 매음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호람 왕은 자기가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에돔 민족을 쟁취하기 위해, 한 번의 실패를 하나님의 실패로 폄하한 후 바알 신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런 그를 향한 선지자 엘리야의 저주는 그래서 무섭습니다. 창자가 몸밖으로 빠져나오는 고통을 겪으며 죽게 될 거다. 문제가 생긴 장기는 조금씩 계속해서 부어올라 결국 몸에 나있는 구멍을 통해 몸 밖으로 터져 나왔고, 이 모든 과정을 여호람 왕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6
여호람왕의 비참한 죽음은 그가 아버지 여호사밧의 후계자로 왕위를 계승하는 순간에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왕과 제사장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지명하여 선택하는 직업군이었습니다. 초대 왕 사울이 그랬고,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다윗 또한 하나님이 지명하고 선택했기에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 왕 후손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윗이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동생 여섯 명을 제치고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여호람 왕은 자기에게 주어진 왕권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란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쟁취했기 때문에 왕권을 어떻게 해서든 오래오래 지키고 유지해야 할 물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지명했기 때문에 자기가 왕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를 왕으로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동생 여섯 명과 아버지 여호사밧 왕을 가까이서 섬겼던 신하 숙청 작업이었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이를 제거함으로써 왕권 강화를 꾀했던 여호람 왕이 왕위에 머문 기간은 8년이었고, 그는 자신의 몸을 자기를 파괴하는 일련의 과정을 목격하며 처절하게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7
여호람왕의 행적을 기록한 역대기 기자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누리는 삶은 우리가 쟁취했다기보다는 우리 이전에 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가 우리에게 건넨 '선물'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서있는 삶의 자리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우리 이전에 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준 '거처'이다. 한 성인 남자가 청년에서 남편으로 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여인의 전폭적인 지지와 인정입니다. 이렇게 만나 결혼하여 부부가 된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부모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아이의 탄생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여호람 왕의 행적을 통해 관계론적 삶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관계론적 삶이란 우리의 우리 됨이 우리 스스로 이룬 게 아니라 다른 이의 지명을 통해, 다른 이의 인정을 통해, 다른 이의 지지를 통해, 다른 이의 도움을 통해 지금 그리고 여기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음을 기억하는 삶입니다. 이제 잠깐 눈을 감고 이아침에 함께 묵상한 하나님 말씀에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새기는 기도
하나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우리에게 건넨 비일상적 일상은 이제 9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아이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9개월 전 우리 마음에 불현듯 떠오른 질문입니다.  9개월이 지난 오늘 역대기 기자가 쓴 여호람 왕 일대기를 묵상하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까지 안전하게 살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다른 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이 실은 다른 이의 땀과 노력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호람 왕 일대기를 통해 깨닫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이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이때에 오늘에 감사하고 오늘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우리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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