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지푸라기를 잡는다고요?

그루터기에 앉아서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0. 6. 28. 12:11

본문

지푸라기를 잡는다고요?

말씀: 고전 15:20-34

          성경책, 그것도 신약성서에 실린 고린도 전서와 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글의 특성은 무엇보다 편지를 읽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수필이란 글이 마음 가는 대로 써 내려가는 자기 반추를 목적으로 한 글이기에 읽는 이는 자연스레 자기 삶을 반추하게 된다면, 소설은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여 현실과 환상이 교묘하고도 복잡하게 뒤섞여 있기 때문에 읽는 이 또한 자연스레 현실과 환상 사이를 바쁘게 오가게 됩니다. 수필과 소설과 달리 편지글은 그 글을 읽을 대상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논설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춘기 시절, 나름 정상적인 감성을 소유했다면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써봤을 연애편지를 생각해 보시죠. 감성을 사로잡는 촉촉함이 가득한 단어와 문장으로 완전히 무장한 게 연애편지죠? 그런데 이 연애 편지는 수필이나 소설과는 달리 전하고자 하는 바가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정교합니다. 고린도 전서와 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 공동체", 그러니까 개인 한 명 한 명이 아닌 개인이 모여 이룬 집단을 향해 쓴 편지글입니다. 특별한 이익을 위해 모인 이익 집단이 아닌, 탄압과 박해를 피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고린도 교회 예배 공동체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아침에 함께 읽은 고린도 전서 15장 20절에서 34절은 바울이 쓴 긴 편지글의 한 부분입니다. 누군가를 향해 쓰인 편지글 전체가 아닌 한 토막만 떼어 읽다 보면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읽은 편지글 내용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 예배 공동체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고린도 전서 15장을 통째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 예배 공동체 여러분, 전 매일 죽음과 마주치며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알고 계시나요?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 때문에 제가 매일 죽음과 마주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죠? 네,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매일 죽음과 마주치며 사는 진짜 이유는 우리네 삶은 이곳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죽은 이에게 베푸는 세례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 공동체가 시끄럽죠? 죽은 이에게 베푸는 세례가 올바른지를 두고 다툼과 분쟁이 한창이죠? 여러분의 다툼과 분쟁에 끼어들어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한 가지만 분명하게 밝히고 싶습니다. 죽음 후에는 부활의 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찾아옵니다. 우리 삶의 종착지인 죽음이 아담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그 종착지에 이르면 또 다른 삶이 시작합니다. 전 고리타분하게 그런 걸 따지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직계 제자만이 아닌 저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을 만남으로써, 그분에게 사로잡힘으로써 저는 부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한다는 걸 느꼈고, 깨달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인간 삶을 단순화시켰습니다. 인간이 만든 문명에 기약 없는 휴식기를 선언했습니다. 바쁘게만 달리는 우리 삶에 강제 멈춤 신호가 주어졌습니다. 항상 잠이 부족해 어느 정도의 신경증을 달고 사는 우리에게 제약 없는 수면 시간도 제공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늦은 밤 가족 몰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란 제목의 한국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10억, 현찰 5만 원짜리가 가득한 명품 가방 하나를 평택항 근처에 있는 이름 모를 공중목욕탕에서 시간 수당을 받으며 일하는 중년의 남자 한 명이 탈의실 사물함을 청소하다 발견했습니다. 현금 10억을 살아서 처음 본 그 남자의 눈은 그 순간 뒤집어졌죠.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일단 그 명품 가방을 목욕탕 보일러실 한 편에 마련된 분실물 보관함에 숨겼습니다.

          현찰 10억이 든 명품 가방은 원래 평택항 인근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 종업원 것이었죠. 하고많은 날 자기를 구타하는 남편과 갚아야 할 빚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자기가 일하는 술집 여사장의 조언에 힘입어 남편을 사고사로 위장하여 살해한 후 보험금 10억을 손에 넣었습니다. 자기에게 도움을 준 여사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중국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중국으로 떠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삶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술집 여사장이 건넨 샴페인 속에는 마취제가 들어있었던 걸 그녀는 몰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그날이 그녀의 인생 마지막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약속했던 10억 때문에 그녀는 속절없이 삶을 마감했습니다.

          여종업원을 살해한 후 10억이 든 돈 가방을 손에 넣은 술집 여사장은 곧바로 죽은 여종업원의 이름으로 여권을 위조하며 중국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녀 또한 사채업자에게 진 빚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평택항 이민국 직원으로 일하는 남자 친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위조여권으로 무사히 평택항을 떠날 수 있게 도와줄 거라 믿었던 남자 친구가 프라이팬으로 자기 뒤통수를 때려 기절시킨 후 10억이 든 돈 가방을 들고 도망가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죠.

          10억이 든 돈 가방을 손에 넣은 평택항 인근 술집 여사장의 남자 친구가 사람들을 피해 숨은 곳이 바로 영화의 첫장면에 나왔던 공중목욕탕이었습니다. 탈의실 사물함에 10억이 든 가방을 구겨 넣은 후 그는 담배 한 갑 사러 밖으로 나갔는데, 다시 돌아오질 못했습니다. 그를 쫓던 사채업자 일당을 길거리에서 만났고 이들을 피해 달아나다 청소 차량에 치어 그자리에서 야속하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짐승들>이란 영화는 현찰 10억이 든 돈 가방을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줍니다. 등장인물은 한결같이 10억만 있으면 새로운 삶을 맛볼 수 있으리라 믿지만 10억이 든 돈 가방이 눈앞에서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가는 걸 지켜보며 삶을 마감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이룬 예배 공동체를 향해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살면서 누구의 마음을 닮고 싶습니까? 모든 걸 가졌지만 조금 더 가지려다, 충분히 좋은 상황에서 살고 있지만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다, 그만 나락으로 떨어진 아담의 마음인가요? 아니면 버릴 것, 끝까지 버리려고 애쓰다 결국 자기 자신조차 십자가에서 버린 예수,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어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가요? 아담의 마음이 욕망에 사로잡힌 마음이라면, 예수님의 마음은  욕망과 싸우는 마음이고, 그리스도의 마음은 욕망을 이겨낸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속에 모시고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이의 마음은 욕망과 싸우고 또 싸워 결국에는 욕망을 이기는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이는 사도 바울이 "나는 매일매일 죽음과 대면하며 살아갑니다."라고 한 말속에 담은 참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삶의 총합이라면, 우리가 이곳에서의 삶을 마무리 짓는 날 우리 모습은 우리가 살아낸 삶의 총합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삶의 마지막 날은 그순간까지 우리가 빚어온 삶의 총합을 가지고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매일매일 죽음을 대하며 살았던 사도 바울은 오늘 하루를 삶의 마지막으로 받아들이며 소중하게 가꾸며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정신적 공황 속에서, 2020년 6월 26일, 오늘 하루를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가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과하지 않게 넉넉하길 기도합니다. 이제 잠깐 눈을 감고 함께 묵상한 사도 바울이  편지 속에 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닫는 기도

하나님, 고린도 전서 15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편지를 함께 읽고 묵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아침에 우리를 향해 물었습니다. 삶의 기준을 어디에 세우고 있습니까? 살면서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꼭 붙잡고 살아가는게 무엇입니까? 오늘 이 아침 이 순간까지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빚어오셨습니까?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망설이는 우리를 향해 사도 바울이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죽음 후에도 영원하다고 믿는다면,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오늘 하루에 충실해지셔야 합니다." 삶의 많은 요소가 정지된 이 시점에 하루를 어떻게 가꾸어 가는지는  우리가 당면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풀기 힘든 숙제입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알 수 없는 바람을 잡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다른 이를 밀치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붙잡겠습니다. 잡을 수 업는 오늘 하루를 붙잡기 위해서 우리 옆자리에 있는 이의 손을 꼭 붙잡아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