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넉 달 전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미국에 상륙했을 때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이 뉴욕과 뉴저지다. 뉴욕과 뉴저지 주는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거주민이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 안에 머물며 주변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라고 주 정부 특별법을 실행했다. 드류 대학교는 이 주 만에 국제 학생을 제외하면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곳으로 변했다. 국제 학생도 각자 나라로 돌아가야 할 거 같은 분위기가 잠깐 조성되었지만 각자 나라로 돌아가는 과정 또한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지 텅 빈 교정 속 가족 기숙사에 사는 스무 가정은 숨죽인 채 코로나 사태를 맞이했다. 3학년과 6학년인 미누와 지누를 데리고 오후가 되면 학교 운동장에 나가 축구 연습을 시작한 게 그때 즈음이었다. 끝없는 체력, 하루라도 땀을 흘리지 않으면 그날 밤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다행히 둘은 축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아빠가 하자는 말에 흔쾌히 응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 국가 대표 선수단을 이끌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부분이 체력 강화였다. 전후반 90분을 쉬지 않고 뛰면서도 상대편보다 덜 지쳐야 득점을 낼 확률이 높은 이기는 축구를 한국 선수에게 가르치기 위해 히딩크 감독은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 히딩크 감독이 생각났고, 두 아들과 함께 하는 축구 연습의 첫 30분은 무조건 달리기였다. 축구장 하나와 야구장 두 개가 합쳐져 있는 드넓은 잔디 구장을 두 아들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 바퀴.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에 힘이 없다느니 왜 축구를 해야 하는데 달리기만 하느냐는 불평, 불만이 쏟아졌다. 무작정 달리는 걸 해 본 적이 없는 두 아들에게는 특별히 힘든 순간이었다. 난 아무 말 하지 않고 뛰었다. 처음 세 바퀴를 다 돌고 나니 두 아들은 잔디에 쓰러졌다.
"일어나. 이제 시작인데 벌써 바닥에 누우면 안 돼." 단호하게 내가 말했다.
체력 강화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은 내가 선택한 두 번째 운동은 몸만들기였다. 유도와 주짓수는 아빠와 함께, 레슬링은 두 형제가 함께해오고 있었기에 튼튼한 두 다리뿐만 아니라 단단한 가슴 근육과 배 근육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마침 운동장에 누군가 놔둔 오렌지색 꽃깔 모양의 식별대 세 개를 한쪽에 다른 세 개를 열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놓아둔 후 한쪽에서 다른 쪽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동안 해야 할 몇 가지 공 가지고 달리는 법을 알려줬다. 공 가지고 달리는 한 가지 방법으로 한 쪽 식별대에 도착하면 클루이베르트가 개발한 방향 바꾸는 법으로 돌아서 다시 반대편 식별대로 돌아오면 팔 굽혀 펴기를 십 회, 윗몸 일으키기를 삼십 회 하기로 했다. 이 과정을 열 번 반복하기로 약속했다.
다음으로 식별대 일 곱 개를 지그재그형으로 놓아둔 후 클루이베르트가 개발한 방향 바꾸기를 반복해서 첫 번째 식별대에서 일곱 번째 식별대를 통과한 후 출발점에서 반대편으로 갈 때는 왼발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갈 때는 오른발로 공을 차서 골대 안에 넣기로 했다. 클루이베르트 방향 바꾸기로 다섯 번, 터널 드리블로 다섯 번, 호나우두 방향 바꾸기로 다섯 번, 총 열다섯 번을 실시하며 오른발과 왼발 각각 열다섯 번 공을 차서 골대에 넣는 연습을 병행했다. 달리기, 몸만들기, 다양한 방식으로 공 몰고 가서 멀리서 공을 차서 골대 안에 넣기까지가 기본 연습이었다. 보통 여기까지 연습을 끝내려면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아주 잠깐 쉬는 시간을 준 후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 안정감있게 잡아서 슛하기, 안정감있게 공을 주고 받기, 안정감있게 공을 하늘로 계속 차올리기, 등 두 아들의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훈련을 일주일 엿새 동안 계속했다.
두 아들의 적응력은 놀라웠다. 세 바퀴는 네 바퀴가 되었고, 네 바퀴는 다시 여섯 바퀴, 여섯 바퀴는 다시 여덟 바퀴가 되었다. 어설프게만 보이던 두 아이가 공을 발로 만지는 감각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두 달이 지난 때가 되자 두 녀석은 집 거실 벽에 붙은 거울 앞에 웃옷을 벗고 서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기 눈에도 날이 갈수록 커다랗게 변하는 가슴 근육과 배 근육이 신기했나보다.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다. 스스로 열심히만 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축구를 아빠 때문에 점점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엄마에게 말하는 두 아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가 한 건 이거 연습하라고 말한 거 밖에 없잖아. 그걸 참고 해낸 건 너네들이니까. 너네들 스스로가 축구 실력을 키운거지."
"하지만, 아빠가 없었다면 그런 걸 말해 줄 사람도 없었잖아요."
"뭐 그렇긴 하네."
"그래도 너네들이 열심히 잘 하니까 아빠도 계속 다른 걸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있었지. 그러니까 너네들이 한 거야."
"아니예요. 우리가 다 같이 한 거예요."
1대 1대 1 축구 시합을 마지막 연습 종목으로 택한 날은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네 시간 가량 축구했다. 그래도 축구는 너무 재밌다는 두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시린 무릎에 힘을 주며 계속 뛰었다. 무언가를 하나 붙잡았으면 꾸준하고 검질기게 해나가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몸만들기 과정에서 틈을 내 쉬는 두 녀석을 뒤로 하고 힘차게 공을 차며 앞으로 나갔다. 피곤해서 입안은 다 헐었지만 아픈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에게 조금만 아파도 아프다고 내색하고 싶은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런 내 마음을 두 녀석은 알았을까?
어느날 여름 학기로 학교 기숙사에 사는 대학생 대여섯 명이 우리가 축구를 연습하는 잔디 구장 다른 한 쪽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형들과 축구를 해보겠냐고 두 녀석에게 물었더니 동생 미누는 하겠다고, 형 지누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안 하는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처음 해보는 일에 적잖게 머뭇거리는 지누 성격을 알기에 일단 미누와 함께 대학생 아이들 축구 시합에 합류했다. 두 달 정도 연습했던 다양한 축구 기술이 3학년 미누 몸에 그렇게 깊게 배여 있는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첫 시합 후 대학생 아이들은 미누를 메시라 부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이 녀석을 축구 선수로 만들까란 생각을 해보았고 처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함께 내린 결론은 두고보자였다. 한 주 후 지누도 축구 시합에 합류했고, 그 이후로 두 녀석은 대학생 형들이 운동장에 나타나는 날만 기다리며 지낸다. 미누는 하루가 다르게 연습한 걸 실전에 뽐내는 재미로 축구 시합을 하고 있고, 지누는 조금씩 조금씩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거 같다. 머뭇거림에서 벗어나려하고, 생각을 빨리 하고, 영리하게 공을 주고 받고, 나갈 때와 멈출 때는 구별하려고 노력한다.
오늘 지누와 난 함께 하늘에서 뚜벅뚜벅 떨어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왼발로만 공을 차며 운동장을 열 바퀴 돌았다. 미누는 한 바퀴를 채 다 돌지 못했을 때, 배가 아프다고 주저 않더니 결국 연습을 계속 하지 못했다. 아홉 바퀴를 돌 때 지누가 물었다.
"아빠, 다리 안 아파요?"
"왜? 난 조금 아픈데."
"저도요."
말 없이 지누와 난 계속 함께 달렸고 10바퀴를 돌고 난 후에도 지누는 바닥에 주저앉지 않았고, 얼굴에 힘들다는 내색도 비치지 않았다. 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바로 다음 연습으로 옮겨 가려는데 지누가 말했다.
"아빠, 조금만 쉬었다가 해요."
"그래, 조금 쉬자. 아빠도 힘드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가 말했다.
"지누야, 이제 시작하자."
"네." 지누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몸만들기 마지막 열 번째 과정을 마친 후 자리에 일어서니 지누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고개를 돌리는 나보다 먼저 열 번째 과정을 마친 지누는 식별대를 바닥에서 줍고 있었다. 이틀 후 있을 매디슨 유소년 축구 대표 선수를 선출하기 위한 시범 경기에서 지누가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드리블 할 수 있길 바라면서 오늘은 지누와 함께 발재간으로 수비수를 속이며 공을 치고 나가는 방법을 했다. 연습 도중 지누가 다시 잠깐 쉬자고 말했다.
"지누야, 이 좋은 잔디 구장도 이제 딱 일 년만 더 사용하면 어디론가 떠나야 하네."
"일 년 더 있으면, 우리는 진짜 오래 여기에서 사는 거네요."
"그래, 네가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지금 네가 12살이냐?"
"열세 살."
"그럼, 열네 살에 엄마가 졸업하면 이사를 해야겠네."
"실제로 내가 여기서 태어나지는 않았잖아요."
"그래, 모리스타운 병원에서 태어났지."
드류 교정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드넓은 잔디 구장에서 지누와 난 잠깐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난 지누와 함께 이곳에서 열심히 운동했다는 기억을 조금 더 생생하게 마음속에 담으려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태양은 다시 구름 사이를 헤집고 살며시 얼굴을 우리 둘을 향해 들이밀고 있었다. 지평선 아래로 사라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더 조바심이 났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조바심은 태양이 아닌 내 마음속에 숨어있는지도 몰랐다. 이 아이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언젠가 이 아이가 삶의 모든 희망이 처절하게 찢어져 홀로 한 공원 잔디에 앉았을 때, 저 멀리서 빗속을 뚫고 나란히 왼발로만 공을 차며 달려오는 아빠와 자기를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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