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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가 열세 살 되던 날 (2020년 10월 27일 월요일)

삶, 사람, 사랑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0. 10.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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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7일

 

월요일 저녁 마지막 환자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미누는 생일 축하 준비로 집 거실을 여기저기 부산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커다란 풍선 안에 형에게 줄 50달러 지폐를 꼬깃꼬깃 접어 넣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50달러 지폐 한 장보다는 보기에도 좋으라도 10달러 세 장과 20달러 한 장을 마련했다. 아침, 점심, 저녁밥을 먹는 식탁은 어느새 지누의 열세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상으로 변해 있었다. 지누가 좋아하고 언젠가는 꼭 입고 싶어 하는 레알 마드리드 축구단의 경기용 축구복 상의 두 벌이 예쁘게 포장되어 식탁이 벽과 마주한 곳에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조그만 초콜릿 케이크가 숫자 13이 적힌 촛불을 머리에 붙이고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음악이 필요해요. 그래서 내가 앨렉사Alexa한테 음악을 틀어달라고 말해놨어요." 미누가 킨들Kindle을 집어 들며 말했다.

"미누야, 그럼 이걸 스피커에 연결할까? 소리가 좀 큰게 낫잖아."

"네, 그렇게 해주세요."

블루투스Blootooth 기능을 사용하여 미누 킨들과 거실 스피커를 연결했고, 모든 준비가 끝나 보였다.

"잠깐,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야지." 손전화기 카메라를 켜서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앉아 저녁 먹을 식탁을 화면에 담아 녹화 버튼을 누르며 내가 말했다. 거실 전등, 부엌 전등, 집안 전등은 모두 끈 후 미누가 안방으로 달려가 지누를 거실로 데려 나왔다.

 

"Happy birthday to you!"

익숙한 음악을 전자음악으로 새롭게 편곡한 생일 축하곡이 흘러나왔고 처, 미누와 난 거실을 방방 뛰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누의 입술이 양쪽으로 해맑게 벌어졌고,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듯 서있었다.

"자, 이거 어서 터트려봐." 준비한 풍선 세 개 중 한 개를 지누에게 건네며 미누가 말했다.

첫 번째 풍선에는 편지가, 두 번째 풍선에는 10달러 지폐가, 세 번째 20달러 지폐가 담겨 있었다.

"이거 너무 많은데."

"아니야, 이거 내가 형아에게 주는 선물이야. 하하하."

"자 이번엔 이거. 이건 엄마가 지누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처가 종이 가방 하나를 지누에게 건넸다. 레알 마드리드 19-20 원정 경기용 공식 축구복 상의가 들어 있었다. 지누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어?"

"네, 좋아요."

"자, 이번엔 아빠가 준비한 거다." 또 다른 종이 가방 하나를 지누에게 내가 건넸다. 레알 마드리드 19-20 공식 축구복 상의가 들어 있었다. 등 번호 7번 해자드Hazard 선수가 입는 축구복이었다.

"네가 최전방 공격수를 좋아해서 최전방 공격수 축구복을 샀는데... 그리 잘하질 못한다고 해서 조금 당황했지, 뭐. 그래도 네가 해 자드 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려무나."

"아... 그래서 아빠가 해자드가 잘하냐고 물었군요?"

"그렇지. 난 잘 모르니까."

 

우리 네 식구는 식탁에 앉아 처(현민)가 준비한 토마트 양념 스파게티와 마늘빵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지누야, 이제 13년을 살았는데. 어떠냐? 사는 게 재밌냐?"

"네, 그래요." 제법 단호하고 명쾌하게 지누가 내 질문에 답했다.

"그래, 앞으로도 계속 사는게 재밌었으면 좋겠다."

"참, 그럼 지난 13년 동안 살면서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였냐?"

"음..."

"저번에 축구 6대 0으로 이겼는데, 한 점도 못 만들었을 때?"

"플레이스테이션..." 미누가 작은 목소리로 형에게 말했다.

"음... 네, 아빠가 플레이스테이션 4를 부러뜨렸을 때?"

"아... 그랬구나."

"그럼, 지난 13년 동안 살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얹제였냐?"

"음... 제가 처음으로 축구 경기에서 골인했을 때요. 아, 그리고 레슬링에서 처음으로 이겼을 때도."

"계속 지다가 결국에 이겨서?"

"아니, 레슬링은 두 번째 시합에서 내가 이겼어요."

"아, 그랬구나." '자기 삶이니 저리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구나. 다행이다.'라고 난 속으로 생각했다.

"지누야, 넌 왜 기쁠 때 한껏 웃지를 않니? 쑥스러워?" 처가 지누에게 물었다.

"네, 조금 그래요."

"그래도 괜찮아. 기쁠 때는 크게 웃고, 슬플 때는 저번에 그랬듯이 마음껏 울어. 그래도 괜찮아. 알겠지?"

"넵."

생일. 세상으로 처음 떨어진 날. 천사는 하늘에서 타락하여 추락했다는데, 한 아이의 탄생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아닐까?

 

미누, 처, 난 지누에게 편지를 썼다.

 

미누: Dear Jinu, Pop the balloons and just like balloons. Super Monkey, you will find something! Sincerely, Minu, You rich boy!

 

엄마: 사랑하는 지누야, 13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엄마는 지누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참 좋아. 여전히 엄마 눈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로 보여. 키가 자라고 생각도 자라고 점점 멋진 남자가 되어가는 걸 보면 참 감사한 생각이야. 늘 얼굴에 웃음을 잃지 말고 자신감 있게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는 아들이 되길 기도한다. 때론 너에게 화내는 엄마지만, 그래도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걸 꼭 기억해. 너의 옆에서 늘 응원하고 기도하는 엄마가.

 

아빠: 지누에게,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다시 전합니다. 모든 게 안갯속에 숨겨져 있을 때, 지누 너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엄마랑 아빠에게 다가와 살아야 할 부인할 수 없는 이유가 되어 주었답니다. 엉엉 울기만 했던 네가 옹알이를 시작했고, 엄마, 아빠라고 우리를 불러주더니, 드류 드넓은 운동장을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더니만 어느덧 뉴저지 곳곳에 마련된 축구장을 바람처럼, 번개처럼 뛰어다닐 만큼 자랐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자기를 소중하게 감싸고 남을 품을 수 있는 넓고 깊은 마음을 잘 가꾸면서, 계속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응원하며 지누의 인생을 지켜보며 앞으로도 행복하겠습니다. 아빠가.

 

그렇게 지누의 열세 번째 생일날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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