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했다. 2020년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작. 그래서 참고 봤다.
"여보, 재밌어요?" 아내가 물었다.
"네, 나름 재밌는데요. 그리고 갈수록 더 그런데." 거짓말했다. 아카데미상 10개 후보작이란 수식어를 떠올렸다.
"난 무슨 이야기인지 좀 컨퓨징confusing해요." 지누는 지누답게 솔직하게 말했다. 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처에게 재밌다고 거짓말한 지 1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지누의 솔직한 대답에 휘둘려 나 역시 대체 무슨 일이 영화속에서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걸 시인할 수 없었다.
"이 영화 진짜 길다." 아내는 전화기를 꺼내 뭔가를 찾아서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와! 3시간 29분?"
다음 팟플레이어 전체 화면에서 재생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마우스 화살표를 화면 아래로 옮겼다. 3시간 29분. 지루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냉동 고기를 정육점으로 운반하는 트럭을 운전하며 살던 프랭크 쉬란Frank Sheeran(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는 조금 나은 삶은 남보다 조금 더 빨리 이루고 싶었던 거 같다. 펜실베이니아 동북부 이탈리아 범죄 가족The Northeastern Pennsylvania Crime Family 두목 러셀 버팔리노Russell Bufalino (조 페스키Joe Pesci)눈에 띈 프랭크는 러셀의 개인 청부 살인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암흑가에서 나름대로 능력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프랭크를 신뢰하게 된 러셀은 팀스터 국제 형제단체The 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s 총재로 일하는 지미 호파Jimmy Hoffa(알 파치노Al Pacino)에게 프랭크를 소개했다. 러셀은 어두운 세계에서 지미는 밝은 세계에서 일했지만 둘은 한배를 타고 있었다. 러셀은 다양한 범죄 활동으로 돈을 모았고 이 돈을 정치 자금으로 사용하는 지미는 정치가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러셀과 러셀이 하는 일을 표나지 않게 보호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 한 구절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지미의 정치력 배후에는 암흑의 세력이 보태는 정치 자금이 있음을 알고 있는 검찰은 끈덕지게 그 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지미는 러셀의 범죄 단체와 자신이 일군 정치 단체를 모두 보호하기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고 교도소로 향했다. 그동안 지미의 경호원으로 일하며 특별한 동지애를 키웠던 프랭크는 다시 러셀의 전속 청부 살인자로 돌아갔다.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지미는 서둘러 자기가 일군 정치 공화국을 발판으로 이전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노력했고,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러셀과 범죄 집단 두목은 프랭크에게 지미를 죽여 없애라는 지시를 내린다. 러셀은 두목의 지시를 실천에 옮겼다.
"인생유전(人生流轉)"이라고 했다. 보기 싫은 이를 먼저 죽여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있지만 늙어가는 자신을,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이는 없다. 러셀도, 프랭크도, 그 밖의 범죄 집단 가족 구성원도 하나둘 늙어서 죽거나, 다른 범죄 집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교도소에서 함께 수감 중이던 러셀을 죽음으로 먼저 떠나보낸 프랭크는 형기를 마친 후 요양소로 옮겨졌다.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딸들은 아빠를 피하거나, 더는 상종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요양원에 러셀을 만나러 찾아오는 유일한 방문자는 시체를 완전히 소각했기에 세상에서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지미의 실종이 러셀이 이끌었던 범죄 집단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 형사 두 명과 젊은 남자 신부 한 명이었다. 아직도 지미를 애타게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을 위해서라도 지미에 관해 아는 바를 알려달라는 형사 두 명에게 프랭크는 "그 부분에 관해서는 도울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영화는 어느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프랭크를 찾아온 신부와 짤막한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끝난다. 성탄절 이후 다시 찾아오겠다며 입고 온 외투를 챙기는 신부에게 프랭크가 물었다.
"성탄절인가요?"
"네, 며칠 있으면 성탄절이에요."
"아, 그렇군요."
"성탄절이 지난 후에 다시 찾아올게요. 그럼, 편히 주무세요."
"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나가실 때, 문을 다 닫지 말고 조금만 열어주세요. 전 문을 다 닫는 게 싫거든요."
"네, 그럴게요."
젊은 신부는 주의해서 프랭크가 머무는 방 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 늦은 저녁에 홀로 남은 프랭크는 닫혔지만 열려있고, 열렸지만 닫혀있는, 방문 틈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지만 찾아올 이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문을 닫자니 홀로 있다는 고립감은 그동안 살면서 저지른 수많은 청부 살인에 관한 기억만 몰고 올 게 뻔했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던 사람.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이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 한평생 그는 혼자였다. 그 주변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함께 있었지만 살인 청부업자로 살아가는 그의 실체를 아는 이는 그 누구도 그와 가깝게 지낼 수 없었다. 사람과 이룬 뜻깊은 관계에서, 또 한 사람을 살해해야만 하는 장소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는, 그래서 묘한 망설임이 깊게 배여 있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을 남들에게 들키면 안되는 게 살인 청부업자의 필수 자격 요건이다. 로버트 드 니로는 다중성이 중첩하는 프랭크의 내면을 놀라우리만치 생생하게 표정으로 살려냈다. 진짜 살인 청부업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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