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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은 장미 (2019) - 03/28/2020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20. 3. 3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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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은 장미 (2019)

토요일 밤은 왠지 모르게 그냥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 아빠! 우리 영화 봐요? 형아, 우리 영화 봐."
"진짜? 에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자막 없는 외국 영화는 종종 처를 꿈나라로 보내니 이번에는 한국 영화를 봐야 하는데, 초등학교 3학년 미누를 제외할 수는 없으니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어떤 게 있을까?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그대 이름은 장미>였다.

 

       한때 사춘기 소년이었던 내가 좋아했던 배우 유호정 씨가 나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추억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메울 수 있는 2시간을 안겨주는 영화였다.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는 홍장미(유호정)의 꿈은 가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종업원으로 일하는 술집에서 장미는 인생을 바꿔줄 두 사람을 만난다. 딸 홍현아(채수빈)의 아빠 유명환(박성웅)과 평생지기 기타 연주자 최순철(오정세). 소심한 유명환은 최순철과 홍현아 사이를 의심하여 망설였던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다. 장미 뱃속에 자신의 아기가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채. 최순철과 함께 가수로 활동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장미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망설임 없이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린다. 현아가 어렸을 때는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며 살았고, 현아가 자라나 사춘기 소녀가 되었을 때는 녹즙기 판매원으로 하루하루 버텨간다. 그런 그녀 옆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이가 최순철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의사가 된 유명환은 한국에 잠시 일하러 나오게 된다. 다시 '그러던 어느날' 자동차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미를 발견한다. 갑작스러운 유명환의 등장에 자극을 받은 장미는 아는 언니 소개로 투자 회사에 취직하여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아파트로 이사도 했지만, IMF로 인해 다시 모든 걸 다 잃는다. 자기를 믿고 돈을 투자했던 친구는 자살을 함으로써 떠나갔고, 짧은 기간 벌어 모았던 돈은 빚을 갚고 나니 사라졌다. 유명환을 통해 자기를 닮아 현아가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장미는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명환에게 현아를 미국에 데려가 공부시켜달라고 부탁했고, 자기는 사기죄로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살았다. 

 

       영화의 마지막은 연주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홍현아 작곡가가 행방불명된 엄마를 찾아 옛날 자신이 살던 산동네를 찾아갔다 그날 현아의 연주회를 멀리서 지켜본 후 딸 생각에 휩싸여 같은 곳을 방문한 장미를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관객에게 덤으로 안겨주는 재미는 현아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아파트 거실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눴던 이야기를 현실로 옮기는 장면이다. 해변가에 통나무로 지은 민박집에서 살아가는 두 모녀에게 '어느 날'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두 청년이 찾아와서 민박 가능 여부를 묻는다. 한 청년은 등에 기타를 매고 있었고, 다른 한 청년은 보기에도 공부를 아주 잘하게 보였다. 영원회귀永遠回歸. 니체의 철학이 한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엄마가 탔던 수레바퀴 같은 운명이 딸의 삶에서 다시 반복하는 걸까? 그렇게 영화는 끝났다.

 

       유호정은 여전히 이뻤다. 나이를 먹지 않는 얼굴. 얼굴에, 피부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현민이도 그럴 수 있는 형편을 제공할 수 있는 남편이 되고 싶은데.'라고 잠깐 생각했다. 한 가지 도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 영화는 여전히 미국을 성공을 향해 다녀와야 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유명환이 그랬고, 홍현아가 그랬다. 이제는 꿈같은 일이지만, 꿈과 환상은 현실에 기반한다는 걸 생각할 때, 무에서 유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틀린 말은 아니겠다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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