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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갈 Dangal (2017)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8. 5. 1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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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었다. 레슬링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그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럴만한 사회 풍토가 조성되지 않은 시절에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 꿈을 잊을 수 없었다. 아들을 간절히 바랐지만, 바람이 현실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온갖 민간요법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아들을 낳고 싶었지만, 자식 세 명은 모두 딸이었다. 결국, 잊을 수 없는 꿈을 잊기로 했다. 집안 한쪽 벽에 걸어 놓은 선수 시절 획득한 메달과 상장을 떼 상자에 담았다. 한 가정을 이끌고 보살피며 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둘째 딸이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아이 한 명을 흠씬 두들겨 팼다. 남자아이 부모가 집으로 찾아와 대체 딸 아이를 어떻게 키웠길래 이렇게 남자 아이를 때려눕힐 수 있냐며 따졌다. 믿을 수 없었다. 남자아이 부모에게 사과해서 돌려보낸 후 딸 아이에게 어떻게 때렸냐고 물었다. 두 딸은 가르쳐 주지도 않는 레슬링 기술로 남자아이를 눕힌 후 혼쭐을 냈다는 걸 몸동작으로 알려줬다. 사라졌던 꿈이 다시 돌아왔다. 여자도 레슬링을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날부터 딱 일 년 동안 두 딸에게 레슬링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에 성과가 시원찮고 아이들이 레슬링을 계속하길 원치 않으면 그만하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어느 날 고된 레슬링 훈련에 지친 두 딸은 14살 친구의 결혼식장에 두 딸이 놀러 갔다. 맛있는 걸 잔뜩 먹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축제가 끝난 후 신부 옷을 예쁘게 입은 친구랑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던 둘은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딸을 레슬링 선수로 만들려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빠라며 슬퍼했다. “그래도 너의 아빠는 너희를 한 명의 인간으로 생각하잖아. 난 뭐야. 14살이 되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고. 이제 애를 낳아 키우다 그렇게 죽어야 하잖아. 적어도 너희 아빠는 너희 미래를 걱정하잖아!” 


       그다음 날 아침부터 두 딸은 아버지의 강도 높은 훈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레슬링 정규 매트를 구하기가 힘들기에 모래사장에서 연습했다. 아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레슬링 기술을 두 딸에게 전수했다. 여자 레슬링 선수가 없었기에 남자들과 시합했다. 두 딸은 승승장구했다. 동네 레슬링 시합에서 우승을 시작으로, 지역 대회에서 우승했고, 결국 레슬링 국가 대표 선수가 되었다.


       세 시간가량 되는 영화에 지누와 난 몰입했다. 외골수인 아빠의 레슬링을 향한 열정과 소신에 감동했고, 레슬링을 통해 여자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다른 이에게 없는 길은 만들면 된다는 단순한 진실을 삶으로 보여주는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을 숨죽인 채 지켜봤다. 아빠는 딸아이의 모든 레슬링 시합을 사진첩에 기록하여 보관했다. 딸들이 기술보다는 ‘기본’에 충실하고, 레슬링을 잘 하는 선수가 아닌 레슬링을 진지하게 대하는 선수가 되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결국에는 ‘둔재’가 천재를 이긴다는 안정효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두 딸은 인류 역사가 기록할 위대한 레슬링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는 점에서는 그 누구보다 위대한 한 명의 인간이다.


       “와! 아빠, 진짜 재밌네요. 너무 재밌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어요.”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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