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영화 <The Reader>가 생각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몇 년 전 독일 어느 한 마을에서 일어났던 사건. 의기소침하여 친구로부터 놀림당하며 살던 한 청소년에게 한 여인이 찾아왔다. 글을 읽을 수 없었던 그녀는 버스 승무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며 허름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다. 어느 날 허약한 소년이 길거리에 꿇어 앉아 구토하는 걸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그녀는 소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돌봐주고 구토로 더럽혀진 소년의 몸을 씻겨 집으로 보낸다. 건강을 되찾은 소년은 다시 여인을 찾아갔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여인 또한 한 참 어린 나이의 소년을 귀엽게 대하지만 예기치 않은 손님의 등장을 처음과는 달리 점점 더 좋아하게 된다. 소년은 여자가 필요했다. 글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여인에게 소년의 문자 해독 능력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그로 인해 소년과 여인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만들었다. 소년은 여인에게 책을 읽어줬고 여인은 소년에게 여자의 육체를 탐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독서와 성교가 묘하게 공존했지만, 그 공존을 유지하며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일본 소설이 좋아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기로 한 후 무작정 일본으로 유학 온 한국인 청년이 있다. 유학살이는 만만치가 않았다. 일 년 동안 다양한 일을 하며 학비를 마련하여 일 년간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나면, 그다음 해에는 다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하고 일해야 했다. 일 년은 음식점에서, 일 년은 학교에서. 그렇게 생활하길 반복했다.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빠듯한 삶에 대한 환멸. 그 순간부터 청년은 번 돈을 노름에 부어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을 향한 그만의 복수처럼.
자기에게 문학을 가르친 스승을 사랑하여 결혼한 한 여인이 있었다.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 그녀가 해야 할 건 사랑하는 스승으로부터 떠나기였다. 이혼 후 조금씩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만들어가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앓았던 루게릭병이 자신의 몸속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넉넉잡아 삼 년. 자신의 작품 속에 숨어 살던 그녀는 세상 밖으로 나가기로 했고, 친구가 문학 교수로 있는 한 대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들린 한 음식점에 한평생 작품을 창조할 때 사용했던 만년필을 잃어버리는데.
그녀가 만년필을 잃어버린 음식점에서 일하던 한 종업원이 만년필을 찾아서 그녀의 집으로 찾아온다. 한국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 온 청년이 그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만년필을 넘겨받은 작가는 청년에게 자신이 키우는 개를 데리고 산책 다녀와달라고 부탁한다. 이로 인해 청년은 작가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와 개를 데리고 산책 다니는 일을 시작한다. 둘의 사이는 조금씩 자연스레 조금씩 가까워졌고 작가는 소년에게 개인 서재 책을 새롭게 정리하는 일도 부탁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정리해온 서재가 싫증이 났다. 모든 게 계산되어 있고 계획대로 정리되어 있던 서재를 우연성이 가득한 서재로 만들어달라고 청년에게 부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청년에게 자신이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히며 마지막 소설을 쓰는 동안 자기 집에 머물며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청년은 작가 집에 들어와 살게 되고 둘 사이는 스승과 제자, 주인과 하인, 아내와 남편, 고용인과 피고용이, 연인이라는 묘한 관계로 발전한다.
작품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작가가 제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작가 친구 대학교수는 작가에게 하루빨리 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정리하라고 요구한다. 서서히 루게릭병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잠식해 오는 걸 인지한 작가는 전남편의 도움으로 죽을 때까지 머물 요양원으로 삶의 거처를 옮기려 한다. 요양원으로 가기 전 작가는 유학생을 냉정하게 내보낸다. 공부를 마무리할 수 있는 돈을 봉투에 담아 주려 했지만 유학생은 그럴 받지 않은 채 작가 집을 나와 예전에 머물며 일했던 음식점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작가의 전남편이 음식점에 찾아왔다. 머뭇거리던 그는 안주머니에서 작가가 남긴 선물이라며 작가의 만년필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것만은 받아줄 거라는 작가의 말을 전하면서. 며칠 후 청년은 작가 집에 찾아가고, 그곳에서 더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작가가 남편 차에 올라 요양원으로 떠나는 걸 지켜본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청년은 작가가 선물로 준 만년필을 꺼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일본어가 아닌 한글로. 작가가 유학생에게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도무지 적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청년은 작가와의 시간을 소설이란 매개체를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둘의 만남은 영원한 흔적이 되었다.
한글로 자신과 작가 사이의 관계를 소설에 담아낸 유학생은 작가가 되었다. 자신이 쓴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 출간 계약을 맺기 위해 작가가 된 유학생은 일본으로 돌아온다. 친구가 건네준 자신이 직접 일본어로 기록했던 작가의 소설을 읽던 유학생은 자기가 지속해서 반복했던 오타가 수정되지 않은 채 소설 속에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물었더니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알려줬다. 언젠가 작가가 자신에게 말했었다. 작가 속에는 유학생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언젠가 그걸 찾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작가가 된 유학생은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준 루게릭병에 잠식당한 작가를 찾아간다. 작가는 유학생을 기억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아직은 건강했을 때, 작가는 유학생에게 음성 편지를 하나 써서 늘 몸에 품고 있었다. 작가가 전해준 휴대용 녹음기를 재생하여 작가가 자신에게 남긴 말을 들은 유학생은 무릎 꿇고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작가의 무릎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하염없이 운다. 작가는 녹음기를 통해 말했다. “기억할 수 없겠지만 기억할 거야.”
왜 <나비잠>을 보는데, <The Reader>가 갑자기 생각났을까? 따뜻한 어머니상을 어릴 때부터 그리워했던 내가 방황하는 청소년 혹은 청년이 되어 나를 이끌어줄 것 같은 여인을 만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까? 아니면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 이야기가 이 두 영화의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머니’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따뜻함과 평안함이라는 보편적 감정이 두 영화의 중요한 소재이기 때문일까?
아마도 우연과 흔적의 묘한 관계 때문이리라. 우연성. 예상을 넘어 갑자기 발생하는 일 속에 담긴 속성이 우연성이다. 우연성 속에는 언제나 필연성이 숨어있다. 그런데, 우연성이 필연성과 만나면 흔적이 된다. 흔적을 곱씹을 때, 우리는 필연성 속에 숨겨진 우연성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설렘은 덤이다. 그러할 때가 어쩌면 한 아이의 나비잠 속 세상이 아닐까?
2019년 1월 5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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