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같지만 서로 다른 아버지를 둔 두 남자가 만났다. 형은 권투로 동양 챔피언까지 올랐지만,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해 권투계를 떠나야 했다. 전단을 돌리고, 권투장 연습 상대로 뛰며 돈을 벌어 하루 또 하루 살아간다. 동생은 자폐증을 앓고 있다. 전자오락과 피아노 소리에만 집중하며 살아간다. 어머니는 첫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 한강 다리에서 떨어져 죽으려 했다. 죽으려는 자신을 구해준 남자와 함께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그사이에서 남자 아이가 한 명 태어났다.
영화는 ‘정상’이라는 잣대에서 볼 때 ‘비정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관계와 연대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엄마, 동네 양아치도 못된 전 권투 동양 챔피언, 전자오락과 피아노 말고는 다른 데 관심이 없는 자폐증 청소년. 그리고 이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 매일 찾아와 나름 감초 역할을 맡아준 아랫층 주인집 청소년 딸.
에디슨이었나?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탄생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누군가는 겸손의 극치라고 칭찬하겠지만 난 이 말속에서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본다. 천재라고 불리기까지 자신이 한 일 말고는 다른 걸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가 끝없이 노력할 때, 옆에서 밥해 먹이고 빨래해 주고 필요한 것 나가서 다 사다 준 사람의 노력과 땀, 영감은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천재가 한 명 탄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사람의 무한한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자폐증을 앓는 피아노 ‘천재’는 언뜻 보면 우연 속에서 탄생한 거 같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엄마의 사랑, 갑작스러운 형의 등장, 형과 엄마와의 마찰, 그 마찰을 이기지 못해 어디론가 또다시 도망가려는 형의 꼼수, 주인집 딸의 따뜻한 마음씨, 한국 최고 피아노 연주자의 개입이 없었다면 피아노 천재는 천재가 될 수 없었다. 특별히 회장님이라고 불리는 피아노 연주자 어머니의 콧김은 아주 큰 구실을 했다. 천재가 잉태되어 자라는 연대와 관계 속에서 전 권투 동양 챔피언과 전 한국 최고 피아노 연주자도 자극을 받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 장례식장에서 사라진 동생은 길거리에 설치해 놓은 피아노에 앉아 또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형은 그런 동생을 지긋이 바라본다. 연주가 끝난 동생을 데리고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은 찻길이 무섭다는 것도 모르는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잡는다. 횡단보도에 이르자 둘은 손을 꼭 잡고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린다. 초록색 불이 들어오자 둘은 횡단보도를 건넌다. 손을 잡고서. 이 두 사람 앞에는 이제 진짜 영화같이 멋진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둘은 그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넜을 뿐이다. 또 다른 길로 걸어가야만 하는 우리네 삶을 영화는 ‘연대’와 ‘관계’로 살며시 바라볼 뿐이다.
당갈 Dangal (2017) (0) | 2018.05.11 |
---|---|
우리는 썰매를 탄다 (2014, 2018) (0) | 2018.04.29 |
V. I. P. 아주 중요한 사람 (2017) (1) | 2018.04.22 |
가장 힘든 시간에 Darkest Hour (2017) (0) | 2018.04.21 |
라라랜드 La La Land (2016) (0) | 2018.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