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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시간에 Darkest Hour (2017)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8. 4. 21.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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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심리학self-psychology을 만든 하인츠 코헛Heinz Kohut은 한 책에서 건강한 자기구조cohesive self-structure와 그렇지 않은 자기구조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봤다. 코헛은 아돌프 히틀러를 건강하지 못한 자기구조를 가진 사람을 대표한다고 생각했고, 윈스턴 처칠을 그 반대로 생각했다. 어린 시절 공감적 반응emphatic response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건강한 자기구조로 인해 살면서 부닥치는 위기 순간을 잘 헤쳐나간다. 또한 자존감이 높아서 쉽게 화를 내지 않고, 불안한 순간에도 마음속 항상성psychological homeostasis을 잘 유지한다.

     ⌜가장 힘든 시간에Darkest Hours⌟에서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처칠의 실제 모습은 코헛이 책에서 그린 모습과 사뭇 달랐다. 처칠은 독단적이고, 이기적이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영국 왕이 수상직을 임명한 후 돌아오는 주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요일과 시간을 정할 때, 국왕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보통 그때는 낮잠을 자기 때문이었다. 잦은 연설을 위해 고용한 타자수 중 오랫동안 처질 밑에서 일한 사람은 없었다. 독단적인 그의 성격은 타자수의 인내심을 하루 만에 산산조각낼 수 있었다.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화 먼저 냈다. 코헛은 처칠이 어떤 사람인지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던 거 같다. 어쩌면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 전쟁 피난민으로 영국에 머물 때 대중매체를 통해 만난 처칠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결핍을 보충할 수 있는 이상적 대상을 발견한 게 아닐까?

     코헛의 말과는 달리 자기구조가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던 처칠은 어떻게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전 유럽을 점령하려는 야망에 불탄 독일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을까? 그의 아내와의 관계에 눈이 갔다. 독단적이고, 이기적이고, 다혈질인 처칠을 온순한 한 마리 양으로 변하게 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였다. 주변 정치인들의 반대와 압력으로 금이 간 처칠의 마음을 사랑과 따뜻한 격려로 한순간에 고쳐주는 마법사가 처칠 옆에 있었다. 또한, 그의 독단성, 이기성, 다혈성 속에는 보석이 하나 숨어 있었다. 자기가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는 용기, 재치, 익살이 그 보석이다. 사회적 가면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는 순수함 때문에 그는 다른 이의 협박과 압력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독일과 합의하기로 결의하는 날 아침 사무실로 출근하던 처칠은 갑자기 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에서 소시민과 나눈 대화 속에서 처칠은 자신의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독일의 위협이 상상을 넘어선 이 시점에 합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시민에게 물었더니 모두가 대답했다. “그건 안 돼요.” 그때 당찬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 안 돼요!” 처칠의 얼굴에 생긋 미소가 번졌고, 이내 그 미소는 그의 눈 속으로 옮겨져 단호한 결의로 변했다.

     누구도 수상이 되고 싶지 않았던 순간에 수상이 되어 누구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일을 자기 확신과 믿음으로 이루어낸 사람. 코헛이 설명한 건강한 자기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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