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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공터에서 (2017)」

책장 속에 끼어 있는 삶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12. 2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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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수, 마장세, 마차세. 소설 「공터에서」는 이 세 남자의 기구한 운명이 어떻게 반복되고 중첩되며 그러면서도 끝없이 이어져 가는지를 그린다. 소설가 김훈의 필체를 처음 맛보았다. “남성미가 느껴진다”, “상남자다”, “거침없다”, “소설을 쓸 수 없는 문체로 소설을 쓴다.” 다 맞는 말이었다. 여기에다 내가 받은 인상을 하나 더 추가하면 세심하고 분석적이다를 쓰고 싶다. 마동수의 죽음과 그의 차남 마차세 상병의 휴가. 마차세의 어머니 이도순의 무릎 부상. 마장세의 미크로네시아 어느 섬으로의 출장. 박상희의 등장. 누구도 자신만의 안전지대를 소유할 수 없다. 모두가 다 공터를 서성일 뿐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살아온 삶은 세심하게 엮여 있고, 한 사람의 삶 속에 반영된 다른 이의 삶이 계속해서 내비친다. 거침없는 남성미가 뿜어져 나오는 글 속에서 소설가 김훈은 세심했고 분석적이었다.


     20세기 한국 기독교 역사에 대한 역사 심리학 분석 논문을 준비하다 이 소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말처럼 한국에서 근대사에 관한 완성도 있는 책을 찾기는 힘들다. 신변잡기 서술은 많지만, 육하원칙에 근거해 일어난 일에 관한 기록과 그 기록을 바탕으로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분석은 1980년대가 시작할 때까지 그리 많지 않았다. 설령 힘들게 미국으로 공수해서 읽은 책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지만, 자료출처가 불분명한 게 대부분이라 논문에 참고자료로 사용하기는 망설여졌다. 그래서 소설로 눈을 돌렸다.


     마동수는 1910년에 태어나 일제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 군부독재를 헤쳐나가며 살다 1979년에 삶을 마감했다. 그는 어딘가에 정착하는 걸 잘 하지 못했다. 그가 살아온 삶이 정착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할 때 군복을 빨아서 납품하는 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는데, 어느 날 빨래터에서 함흥에서 피난 온 이도순을 만난다. 외로움과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종족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본능 때문이었을까? 둘은 함께 살게 되었고, 그러다 태어난 남자아이가 마장세와 마차세다. 그렇지만, 마동수는 이도순과 함께 꾸린 집에 머물지 못했다. 그는 그가 살아온 삶을 벗어나지 못한 채, 어쩌면 끝없이 헤쳐나가면서, 죽는 순간까지 떠돌았다. 함흥 피난민 이도순은 그런 마동수를 미워하고 증오했지만, 연민을 거둘 수는 없었다. 그때 그 시절 삶은 연민으로 가득했다. 화도 분노도 무용지물로 만든 세월의 속절없음과 씁쓸함은 결국 그녀의 정신력을 훔쳐갔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만 남겨놓고서.


     마장세는 살인자다. 아니, 살인으로 전쟁 영웅이 된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이 낳은 한 생명체다. 아버지 마동수처럼 그는 그가 살아온 삶이 싫었다. 한국에다 뿌리를 내린 삶이 싫었다.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베트남 전쟁 참전 중 제대하자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태평양 섬 괌으로 갔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는 없었지만, 한국을 벗어난 삶은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운명은 역시나 야속했다. 그렇게도 거부했던 운명은 결국 그를 다시 한국으로 불러와 두 번 다시 도망가지 못할 곳에 다시 뿌리를 내리도록 만들었다. 베트남 국가 ‘영웅’은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들어갔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수레바퀴.


     마차세는 평범하다. 길을 가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치는 길 위의 사람이 마차세다. 그는 살면서 무언가를 제대로 의지적으로 용기롭게 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운명의 물결이 그를 이끄는 대로 그렇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는 관찰했고, 궁금했고, 알고 싶어 했다. 그 대상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몰랐지만. 그렇지만, 물러나지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묵묵히 다가오는 운명의 손짓과 몸짓에 순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게 운명이 그에게 내린 삶이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일까? 그의 삶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삶에는 마동수, 마장세, 이도순, 그리고 박상희와 딸 아이가 다 함께 아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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