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에 파묻힌 비범함: 분열과 통합의 반복
한국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가 한국인이 20세기를 살면서 경험했던 엄청난 사건들로 인해 다른 어느 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질문에서 시작한 내 박사 학위 논문은 10년간 미국에서 학문하며 단련한 내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나의 객관적 시선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렸다. 한국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은 급속하게 흘러갔던 한국의 근대사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었다. “한국기독교,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 어떤 관점에서 이 문장을 해석하는지에 따라 수긍의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인의 마음에 정착한 서구 기독교의 세계관과 그로 인해 발생한 생활방식이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걸 아니라고 막무가내로 우길 수는 없다.
‘어쩜 이리도 비슷할까!’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국 경제 발전의 일등 공신 대기업의 성장과 한국 기독교의 간판스타 대형 교회의 성장은 시작부터 비슷했다. 인맥을 활용하여 적산(敵產: 자국이나 점령지 내에 있는 적의 재산) 매각, 정부의 관심과 보호. 배재학당을 설립한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에 배움을 위해 찾아오는 학생 중 상당수가 영어를 배워 사회에서 빨리 출세하려는 욕망에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정착한 기독교는 시작부터 정치와 얽혔다. 첫 단추를 제대로 잘 끼워야 그다음 단추도 잘 끼울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에서 오늘날 한국기독교가 욕을 먹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성급한 오류일까?
어쨌거나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6·25전쟁을 경험했던 박완서 선생님은 소설을 쓰며 조각나고 찢어진 당신의 삶을 정리했다. 소설 쓰기를 ‘치유’라고 믿으면서. 알라딘 US에서 주문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가 집에 배달된 지 한 이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그 책이 손에 잡혔다. 대학교 시절 독일 유학을 준비하는 한 형의 집 이사를 도와준 적이 있다. 책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하고 빽빽하게 꽂힌 내 키만 한 높이의 책장 앞에서 형수는 책 한 권을 꺼내 선물이라며 내게 건넸다. “지금 안 읽어도 돼요. 언젠가 책이 광유 씨를 부를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손에 잡힐 때 읽으면 돼요.” 심리학자 칼 융은 이런 현상을 ‘동시성’이라고 불렀다. 무의식이, 의식을 넘어선 또 다른 의식이, 우리에게 찾아와 말을 거는데, 어떤 식으로 찾아올지 예측할 수 없지만, 책이 나를 부른다는 말은 그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랬다. 한국 근대사가 평범한 사람에게 남긴 정신적 상처가 어땠을까를 두고 고민하던 나에게 어느 날 박완서 선생님은 당신의 경험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들려주셨다.
문학평론가 깁병익 선생님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담긴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를 ‘돈암동 집’이라고 말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박완서는 이야기 한 꼭지가 끝날 때면 어김없이 ‘돈암동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첫 번째 꼭지에서, 서울을 수복한 인민군은 얼마 못 가 북쪽으로 후퇴했다. 젊다는 이유로 올케언니와 함께 인민군에 이끌려 북으로 후퇴하던 박완서는 가까스로 두만강을 건너지 않은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 후 ‘귀가’한다. 두 번째 꼭지에서 박완서는 가출하여 가족과 떨어져 채 향토방위대대원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 갔다가 서울이 재수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한다. 세 번째 꼭지에서 박완서는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했던 시절 미군정사령부에서 운영했던 PX에 기생하며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리고 이 출타는 영원한 출타, 결혼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마지막은 결혼으로 출타한 완서가 엄마를 보러 잠시 귀가하여 엉엉 우는 장면이다.
김병익 선생은 ‘귀가’라는 상징체계를 사용하여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성장소설로 규정한다. 조셉 캠벨의 영웅 신화 도식에 따르면 분명히 그렇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김병익 선생은 한 가지를 놓쳤다. 그때 그 시절, 박완서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없었다. 캠벨의 영웅 도식은 영웅이 일상에서 비 일상성으로 들어가 일상에 사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걸 경험하여 깨달으면 일상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로써 평범한 사람이 일군 일상은 한 단계 진보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전쟁 중 박완서의 피난과 숨어 살기는 영웅적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죽느냐 사느냐라는 두 가지 길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건 분명 영웅적 행위다. 하지만, 빈집에 들어가 먹거리를 찾는 건 불안감으로 가득한 상황에 어떻게든 적응하여 살아남겠다는 한 인간 본성이 씁쓸하게 드러나는 행동일 뿐이다. 살아야겠다는 본능과 어떻게라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박완서의 내면이 이 소설의 주제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삶의 종착역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삶의 황혼기에 박완서 선생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런 후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울었다. 그리고. 한바탕 시원하게 울음을 쏟은 후 시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박완서의 뒷모습에 관한 상상은 읽는 이의 일이 된다.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누구도 영웅이 될 수 없었던 시절. 살기 위해서는 이중성과 허례 의식으로 완전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박완서 선생님은 일상 속 인물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이중성에도, 허례 의식에도 노예가 되지 않은 채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과 그래야만 하는 자신 사이의 분열을 과감하게 얼싸안을 수 있었던 이는 재벌이나 정치가가 아니었다. 오늘을 눈물로 살아가는 자. ‘이 산을 또 어떻게 넘을까?’란 생각에 사로잡혀 도망가기 급급한 평범한 이가 결국에는 또 산을 하나 넘어 그다음 자리에서 살아있는 이를 기다리는 산과 만날 뿐이다.
김병익 선생님은 ‘불혹에 문단에 등단한 박완서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한평생 할 수 있을까?’로 고민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박완서 선생님은 특별한 인간이었다였다. 글쎄······. 난 다르게 생각한다. 아픔과 회한의 한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아픔과 회한에 사로잡혀서 살 수도 없었다면. 그래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곪을 대로 곪아 썩은 내가 진동한 상처로부터 적당하게 떨어져 살 수 있다면.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떻게든 스스로 이해할 만한 답을 만들어야만 했다면. 그럴 수 있었을 거다. 난 그 끝을 알 수 없는 아픔과 회한이 박완서 선생님이 끊임없이 글을 쓰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박완서 선생님의 마음속 이야기를 몇 마디 들어보자.
민족의 분단/마음의 분단
“몸은 비록 인민공화국의 하늘 아래 있지만 마음은 일편단심 대한민국에게 밉보이는 짓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하고 있었다. (27)”
민족과 전쟁
“욕먹을 소리지만 이런저런 세상 다 겪어보고 나니 차라리 일제시대가 나았다 싶을 적이 다 있다니까요. 아무리 압박과 무시를 당했다지만 그래도 그때는 우리 민족, 내 식구끼리는 얼마나 잘 뭉치고 감쌌어요. 그러던 우리끼리 지금 이게 뭡니까. 이런 놈의 전쟁이 세상에 어딨겠어요. 같은 민족끼리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형제간에 총질하고, 부부간에 이별하고, 모자간에 웬수지고, 이웃끼리 고발하고, 한 핏줄을 산산이 흩뜨려 척을 지게 만들어놓았으니······. (78∼79)”
오빠의 죽음과 가족의 해체
“제대로 예를 안 갖춘 장례의 후유증은 이렇듯 우리 식구 안에서 부란의 부란을 거듭했다. 만약 어린 두 조카가 우리 세 사람 사이에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가족으로서의 외형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뜻으로도 엄마와 나 사이에 찬이가 눕고, 나하고 올케 사이에 현이가 눕도록 자리를 까는 것은 상징적이었다. 자는 동안도 완충지대가 필요할 만큼 우리는 서로 치 떨리게 징그러워하고 있었다. (193)”
PX
“PX 물건 하면 곧 고급의 사치품을 의미했다. 럭키 스트라이크와 카멜 담배, 밀키 웨이 초콜릿, 럭스 비누, 나비스코 비스킷, 참스 캔디, 폰즈 크림, 콜게이트 치약. 그런 미제 물건들이 좌판에 반짝반짝하고 알록달록하게 모여 있는 것만 봐도 즐거운 눈요기가 되었고,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구질구질한 시장 속의 난데없는 꽃밭 같은 이 작은 좌판들이 곧 미국의 부화 문화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여북해야 점잖은 척하는 신사도 어쩌다 럭키 스트라이크를 한 갑 사서 피우고 나서는, 그 맛보다는 그것으로 인하여 과시할 수 있는 품위를 잊지 못하여 그 갑에다 국산 담배를 넣어 가지고 다니겠는가. 이렇게 껍질조차 아까워서 못버리는 미제를 통틀어 PX 물건이라고 칭하지 않던가. (202∼203)”
열등감 투사
“그 누구하가도 동류의식을 못 가졌기 때문에 아무도 개별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청소부는 모조리 여름에도 겨울 메리야스 내복을 입고 미제 물건을 차고 어기적어기적 걸어나가는 족속이었고, 점원들은 블랙마켓과 갈보짓을 동시에 함으로써 블랙리스트에 올라도 미제 물건 아쉽지 않게 만반의 대비를 한 족속이었고, 노무자들은 박스 떼기, 트럭 떼기로 일확천금을 할 꿈으로 동작은 꿈뜨고 시선은 쥐새끼처럼 교활한 집단이었다. (279∼280)”
울음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온몸을 내던진 울음은 앞으로 부드럽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의례, 자신에게 가하는 무두질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하고 나하고 만날 수만 있었다면 둘 다 우리 않았을 것이다. 따로따로니까, 서로 안 보니까 울 수 있는 울음이었다. 그날 엄마가 정릉으로 빨래를 간 건, 참 잘한 일이었다.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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