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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연어 (1996)」

책장 속에 끼어 있는 삶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12. 2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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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작가인 안도현은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에서 연어의 귀소본능을 인간의 근원적 본능이라고 말했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후손을 창조한 후 삶을 마감하는 연어를 통해 사람이 문명 속에 살면서, 그만 그곳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잊어버린 게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 희망? 이상? 미래?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은빛연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통해 인간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건 후손을 향한 배려와 사랑 실제로 실천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소행성 B612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 왕자는 어느 날 지구로 여행을 떠난다. 지구로 오는 길에 다른 소행성에 들러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 자신과는 다르게 삶에 관해 배운다.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난생 처음 사귐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친구도 만든다. 여행의 끝은 어린 왕자의 죽음이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가 고향인 소행성 B612로 다시 돌아갔을 거라 믿었다. 태어남, 자라남, 여행,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인생, 뭐 그리 대단한 거 같아 보이는데, 어린 왕자를 통해 생텍쥐페리는 삶의 맨살을 보여준다.

 

     안동현의 동화 연어 어린 왕자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먼저 두 소설은 시간을 다르게 이해한다. 어린 왕자에게 시간은 직선처럼 시작에서 끝으로 달려간다면, 은빛연어에게 시간은 원형적이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쓰인 어린 왕자의 삶이 하늘에서 와서 하늘로 돌아가는 데 비해, 연어는 기독교가 한국에 전해지기 이전 한국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세계관에 근거한다. 고향, 곧 강으로 돌아온 연어는 자손을 위해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연어를 읽는 한국 사람은 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는 끝날지라도 우리는 우리 후손을 통해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문화적 진실을.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와 함께 하나가 되어 (어린 왕자의 용어로 바꾸면 친구가 되어) 현재 속에다 미래를 완성했다. 세대유전世代流傳.

 

     두 번째로 생텍쥐페리는 인간 삶의 목적을 비움'이라고 생각했다. 싯다르타를 소설로 써야 했던 그의 정신세계를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안도현은 인간 삶의 목적을 극복이라 생각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다. 폭포. 세대유전이란 사자성어를 한 번 더 떠올리자. 안도현이 말하는 극복은 자아실현을 위한 자기극복이 아니다. 자기 극복은 공동체의 미래와 연결될 때만 진짜 극복이 될 수 있다. 현실로 여행을 떠난 어린 왕자는 마지막 순간 속세와의 인연을 모두 끊고 해탈과 열반으로 날아갔다. 집착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했다. 은빛연어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갔다. 자기를 극복했다. 자기를 두려움과 머뭇거림, 습관과 타성으로부터 구원했다. 그런 후에 눈맑은연어와 함께 후손을 창조했다. 전설은 이무기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된다고 말했다.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는 용이 되지 않았다. 둘은 하나가 되어 세대유전 일부가 되었다.


     인간.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만들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사람이다. 사이적 존재를 사이적 존재로 유지하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1996년에 안도현은 한국 사람에게 물었다. 개인과 공동체. 현재와 미래. 자아실현과 사랑 실현. 어느 것에 더 많은 가치를 쏟으며 살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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