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2016)

영화 속에 담긴 현실

by 느긋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2017. 3. 30. 08:41

본문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


     영화가 시작할 때, 이윤혁 군은 스물여섯이다. 희소암 말기. 다섯 개의 장기를 모두 잘라냈다. 죽기 전 살아있음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었던 그는 꿈을 꾼다. 세계 최고 자전거 대회 뚜르드 프랑스완주하기. 경기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 전문 선수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린 거리를 똑같이 달리기다. 선수들이 하루에 달린 길을 이틀에 달려야 하니 대략 50일 안에 3,500km를 달린다는 계산이 떨어진다. 윤혁 군은 암 투병 중 암을 딛고 일어나 자전거 시합에서 전설이 된 선수를 닮고 싶었다.


     어쩌면 죽기 전에 마지막 남은 삶을 불태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가 생각났다. 죽는 게 싫어서 다양한 꾀로 저승에서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 시시포스. 그런 그에게 내려진 벌은 커다란 돌덩이를 가파른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일. 이게 말처럼 간단한 벌이 아니란 걸 시시포스는 돌덩이를 언덕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을 때 깨달았다. 돌덩이는 지금까지 힘겹게 걸어온 언덕길 반대로 굴러서 내려갔다. 반대편 언덕을 내려가 다시 돌덩이를 언덕 꼭대기까지 밀어 올린다. 다시 돌덩이는 반대편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간다. 영원토록 돌덩이를 언덕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 누군가는 시시포스의 성서판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라고 말했다. 영원토록 돌덩이를 언덕 꼭대기까지 굴려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는 인간 곧 우리다. 마음속 시시포스는 지금도 그 무거운 돌덩이를 굴리고 있다.


     윤혁 군은 시시포스가 되고 싶었다. 살아있는 게 무엇인지를 살아있는 사람 그리고 살아갈 사람에게 알려주고 죽고 싶었다. 죽어가는 그가 산 사람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뜨겁게 살다가 재가 되어 사라지기였다. 윤혁 군은 뜨겁게 불타는 자신의 삶 속에서 불사조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었을까?


     다섯 개의 장기를 잘라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튼실한 몸 (자전거를 타고 산악지대를 달릴 때 윤혁 군의 벅지를 생각하자!)을 보니 4,300km를 완주하고 나면 윤혁 군이 암을 극복할 거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자전거 타기 전문 선수들도 탈진하여 죽었다는 험난한 길을 검질기게 버텨내며 윤혁 군은 끝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 돌렸다. 자전거 바퀴는 돌아가면서 포기하지 마! 열심히, 진짜 열심히 살아야 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은 영화를 처음부터 지켜보며 묘한 기대감을 마음속에 품어 자라나게 한 사람의 마음을 참담하게 만든다.


     앙상하게 마른 채 병실에 누워 있던 윤혁 군은 프랑스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던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형님께 안겨 미안하다고 소리지르며 펑펑 울었다. “살아야 하는데. 미안해요. 진짜살아야 하는데.죄송해요.” 관장님은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날아왔다.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 시사회장은 윤혁이가 입원해 있던 병원.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화 속 윤혁이와 환자복 속 윤혁이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에. 얼마 후 윤혁 군은 삶의 마감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윤혁이는 영화를 남겼다. 영화 속 윤혁 군은 시시포스다. 끝없이 불어나는 암덩어리가 가득한 몸을 자전거에 실고 끝없게 보이는 언덕을 넘고 또 넘었다. 어느날 밤 윤혁 군은 자전거 위에서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삶을 마감하는 걸 지켜보고 싶다며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께 죄송하다며 하염없이 울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 있는 상황이 축복이란 걸 그때 알았다.

 

     무모해서 너무나 뜨거운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윤혁 군은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었을까? 다섯 개의 장기를 잘라내야 했던 암을 극복하여 이겨냈을까? 그럴 수 있었다면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이란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한 인간의 뜨거운 삶과 죽음이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난 어떻게 하지?’란 무거운 질문이 된다.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해야 할 거 같은 묘한 기분이다.


2017329일 수요일

드류 대학교 도서관에서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