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다.
미국에서 1세대 이민자로 10년째 사는 나에게 영화 미씽은 시작부터 무거웠다. 의사 남편과 이혼 후 딸아이 양육권을 두고 법정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바쁘다. 아이 양육과 회사 일을 동시에 해야 하기에 어느 하나에도 소홀할 수 없는 한국 이혼녀의 고달픈 마음속 상처는 딸아이에게조차 무관심한 전남편과 손녀를 데려가기 위해 차근차근 법정 단계를 밟는 전시어머니로 인해 점점 곪아 간다. 게다가 회사 사장은 딸아이 양육 문제로 회사 일에 소홀할 거 같은 엄마가 언제나 못마땅하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한 여자가 딸아이 보모로 일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중국 조선족인 그녀는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왔다. 시어머니는 그녀가 한글을 배우는 것도 싫어했다. 괜히 한글을 배우면 버릇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지적 장애를 지닌 남편은 시어머니의 뜻대로 중국 조선족 아내를 장난감 가지고 놀듯 대했다. 임신하여 딸아이를 낳았더니 아들이 아니라고 손녀를 인간으로 바라봐 주지도 않았다. 아이에게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희소병을 앓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아니기에 병원비를 아까워 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도망갔다.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퇴폐안마시술소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버는 돈으로는 아이의 병원비를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다. 장기를 팔았지만, 병원비를 제때 내지 못해 아이는 강제 퇴원 조처가 내려졌고 얼마 후 아이는 삶을 마감했다. 삶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채 마감했다.
아이에게 강제 퇴원 조처가 내려지고 아이가 누워있던 침대가 순식간에 새롭게 단장된 후 한 엄마가 딸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웃음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보다 눈부셨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그 이 아이의 보모가 되었다. 안마시술소에서 알게 된 남자를 통해 한국인 남편을 살해한 후 그 남자도 속였다. 아이를 데리고 잠적했다.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 아이와 함께 살고 싶었다.
죽은 아이는 죽지 않았다. 김치 냉장고에 넣어 둔 자신의 진짜 아기는 죽지 않았다. 보모가 되어 돌보는 아기가 자신의 딸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실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후 사람은 죽은 아이를 새로 태어난 아이로 대체한다. 죽은 아이에게 쏟은 정신적 힘(애착 관계)을 다시금 마음속으로 가져오는 것보다는 다른 대체물로 맞바꾸는 게 더 견디기 쉽기 때문이다.
진짜 엄마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에 아이와 애착 관계를 제대로 형성할 수 없었다. 보모 없이는 엄마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영화 소제목 '사라진 여자'는 진짜 엄마의 부재 상태를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그런 엄마에게 정말 엄마가 되고 싶지만 엄마가 될 수 있는 자격과 권리가 거주하는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이민자이기에 자연스레 박탈당한 죽은 아이의 엄마가 찾아왔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당했지만, 몸속에서 키워 세상 밖으로 데려온 아이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던 엄마. 그런 엄마의 딸이 죽었다. 엄마가 될 수 없는 엄마는 결국 엄마가 되기 위해 사라짐을 택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한국형 모성애를 다시 한번 미화한다. 그래서 슬프다. 그 한순간의 모성애는 또다시 살아가야 할 일상에 의해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렇게, 딱 그 순간에 끝났다. 슬프고도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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